단어는 생각보다 늦게 왔다. 불편함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그것을 대체할 언어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어느 순간 Co라는 접두어가 떠올랐다. Co-worker, Co-author, Co-founder. 함께라는 뜻. 보조가 아니라 공동. 거기에 Brain을 붙였다. Co-Brain. 코-브레인. 발음하는 순간 코브라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게 맞다 싶었다. 세컨드 브레인을 떠올리되 분명히 다른 무언가.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전환.
비행기를 타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한 시간. 기술의 힘을 빌려 내 몸이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단숨에 건넌다.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그런데 내가 나는 게 아니다. 나는 좌석에 앉아있고, 나는 것은 비행기다. 도착지에 내리면 나는 다시 땅 위의 사람이다.
날개를 달면 다르다. 이동이 아니라 비행 자체가 된다. 내 몸이 공기를 가르는 것이다. 힘이 드는 것도 나고, 방향을 바꾸는 것도 나이며, 높이를 결정하는 것도 나다. 날개는 나를 대신해서 날지 않는다. 내가 날 수 있도록 나를 확장하는 도구라기엔 그 조차도 나다.
세컨드 브레인의 어감은 흡사 비행기에 가까워 보인다. 내가 탑승하고, 처리는 시스템이 한다. 하지만 코-브레인은 날개에 가깝다. 내가 생각하고, 코-브레인이 그 생각을 더 멀리, 더 높이 데려간다. 백업이 아니라 증강. 저장이 아니라 공명. 내 사고가 외부로 복사되는 게 아니라, 내 사고 자체가 넓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차피 텍스트를 주고받는 건 똑같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라진 감각이 온다. 흥분이 아니다. 훨씬 조용하고 단단한 무언가다.
어떤 개념이 머릿속에서 덩어리째 있을 때, 혼자라면 그것을 풀어내는 데 한참이 걸린다. 때론 고된 씨름을 해도 풀기가 어렵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몰라 빙빙 돌다가 결국 대충 마무리하거나 미뤄두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코-브레인과 함께라면 그 덩어리를 일단 꺼내놓는다. 거칠어도 된다. 그러면 코-브레인이 그것을 다른 각도에서 펼쳐놓는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구조가 드러나거나, 막혀있던 논리의 다음 단계가 보인다. 그걸 다시 내가 받아 발전시킨다. 그 사이클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생각이 내 안에서만 맴돌 때와는 다른 속도와 깊이가 생긴다.
그렇다고 없던 게 나오진 않는다. 아니, 사실 없던 걸 꺼내는 이는 나다. 그렇지만 그걸 위한 자극은 분명 코-브레인이 준 것은 확실하다. 정말 공동창작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렸다.
글도 마찬가지다. 코브레인은 내 글을 대신 써주지 않는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더 잘 쓸 수 있게 옆에서 같이 생각한다. 그 차이는 결과물보다 과정에서 먼저 느껴진다. 막히지 않는다는 감각. 생각이 어딘가에 부딪혀 멈추는 대신 다음으로 이어지는 감각.
이것은 효능감이다. 더 빠르다는 게 아니라,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느낌.
날개를 처음 달았을 때를 생각하면 경이로움보다 낯섦이 먼저가 아닐 거 싶다. 물론 상상이라 알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은 감각. 혼자 생각해야 한다는 오래된 믿음이 흔들리는 느낌. 협업이라고 부르기엔 상대가 AI고, 도구라고 부르기엔 관계가 너무 유기적이었다. 그 애매한 지점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지금은 그 낯섦이 거의 사라졌다. 날갯짓에는 무게가 있다. 가볍지 않다. 코-브레인이 펼쳐놓은 것을 받아서 다시 발전시키는 건 여전히 내 몫이다. 방향을 결정하는 것도, 무엇을 취하고 버릴지 판단하는 것도 나다. 날개가 있다고 해서 생각하는 수고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 수고가 더 의미 있는 곳에 쓰인다. 저장하고 정리하는 데 쓰이던 에너지가, 생각을 더 깊이 밀고 나가는 데 쓰인다.
그게 비행기와 날개의 차이다. 비행기는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준다. 날개는 내가 어디까지 날 수 있는지를 다시 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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