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 버티는 거야 vs. 무슨 소리 이직이 답이야
내가 어디에 노출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끔씩 커피챗 요청이 갑자기 몰리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곤 한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큰 회사의 공채 시즌이 있던데, 당시에는 그런 정황도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 당시 받았던 릴레이 커피챗의 주요 주제가 모두 '이직'이었다는 것이다.
공통적으로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나 인턴들이, 남아서 더 지켜볼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지에 대한 질문을 했다. 질문을 인식하는 순간,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배가 기울고 있을 때, 서둘러 탈출해야 할지 아니면 내 신념을 지켜야 할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로 질문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현재로 돌아와 지금의 나로서는, 당시의 질문들이 그 시점에만 해당되는 것이었음을 금방 깨닫게 된다.
올바른 판단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화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이 있다면, 판단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특히 이직이 커리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이직 자체를 중요시 여길 심산이 크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그러한 판단을 내렸는지에 있다. 이는 보이지 않는 커리어 이야기를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이직은 단순히 회사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취하는 복잡한 이슈다. 따라서, 이직의 기준은 단순히 현재 회사를 떠날 기준만을 의미하지 않다. 새롭게 받아들일 회사를 위한 기준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이직의 기준은 '떠나야만 하는 기준'과 '맞이하고 싶은 기준'의 결합이다. 떠나야만 하는 이유에는 단점만 있을 수 없고, 맞이하고 싶은 이유에도 장점만 있을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정답이 없기에 나는 그저 나만의 기준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직의 기준 = 떠나야만 하는 기준 + 맞이하고 싶은 기준
평소에 나는 불만이나 의사를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수동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중요한 순간에 제 의사를 표현할 때 그 발언에 강한 힘이 실린다. 일이 너무 괴롭거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나는 그 소중한 발언권을 신중하게 써본다. 마치 필살기처럼.
경험상 발언권을 필살기처럼 활용할 줄 알면 거의 100%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 당연히 손에 꼽힐 만큼 적은 순간들이다. 다만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다음의 두 가지 상황을 공감하기 어려웠다.
첫째, 불만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퇴사나 이직을 고민하는 경우다. 이들은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의외로 말을 하지 않아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둘째, 반대로 불만을 자주 표현하여 자신의 발언권이 더 이상 필살기가 되지 않는 경우다. 이들은 자신의 발언권의 힘을 컨트롤하지 않고 조직의 문화나 상대방을 탓한다. 어차피 쌍방의 잘못일 것이다. 차라리 발언권 관리를 잘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걸 처신이라고 부른다.
두 가지 상황 모두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때문에 자신의 인내심 한계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돌이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떠나고 싶은 이유는 무수히 많을 수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몇 가지에 불과하다. 회사의 일은 파도처럼 일정한 루틴을 따르는 것 같으면서도, 길게 보면 변화무쌍하다. 때로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경우도 많다.
개인적인 기준은 '사람'과의 트러블 여부와 '비즈니스 위기'를 고려한다. '사람'과의 문제는 웬만해서는 피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잘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발생하더라도, 대부분은 내 잘못이었고, 따라서 내가 잘하면 해결 가능한 문제였다. 반면 '비즈니스 위기'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이직을 고려하는 이유 중 하나는 취준생 시절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그 시기를 건너뛰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어려워 고용 불안이 있다면, 취업으로 얻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기반이 흔들리는 처사다.
물론 '비즈니스 위기' 또한 출렁이는 바다와 같아서 그 태풍이 지나가면 괜찮아질 수도 있다. 이 경우, 객관적인 신호로 파악하기 위해 나는 퇴사자의 숫자와 그 텀을 기준으로 삼았다. 모 회사 재직 당시, 한날한시에 퇴사한 동기가 무려 10명 정도였다. 임직원 전체가 40명 정도 수준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그 회사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떠날 이유는 작은 불만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이직을 위해서는 새로운 회사가 기존과는 다른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맞이하고 싶은 기준'을 높게 만든다. 사실 이는 반대로 되어야 하는 것이 나는 좀 더 현명하다고 보는 입장이긴 하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비즈니스 위기가 이직의 배경이 되었을 때, 그저 날 불러주는 곳이라면 일단 받아들였다. 이는 일장일단이 있는 선택이며, 스스로 취준생 시절의 자신을 용납하기 힘든 스타일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러한 기준을 세우게 되었다. 여러분도 각자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본인의 이모저모를 잘 파악하길 바란다.
비즈니스 위기가 아닌 경우, 내 커리어의 미래 비전을 염두했다. 돈을 많이 주거나, 남들이 인정하는 뜨는 곳, 평판이 좋은 회사는 내 기준이 아녔다. 내 관심사는 오로지 '미래'와 관련이 있었다. 이는 취준생 시절의 수많은 오판과 후회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학 시절, 인터넷과 웹디자인이 디자이너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완전히 놓친 것이다. 또 스마트폰 혁명 역시 알아채지 못하다가 운 좋게 빠르게 달리는 열차에 간신히 올라탈 수 있었다. 그렇게 깨달았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다음 패러다임의 변화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커리어 여정 중 한 번은 남들보다 미리 가있어서 기다리고 있는 포지션이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런 내게 전장 사업부로의 전환 배치 제안이 들어왔을 때, 이를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있었을까? 이렇듯 자기 기준이 있으면 판단이 쉽고 빠르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리 중요한 기준이 되지도 않았다.
입사하자마자 이직이 고픈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로 적합한지 잘 모르겠다. 우선적으로 발언권 관리를 하기에 충분치 않은 시간이란 점에 대해 생각해 보고 한 번도 문제를 도마 위에 올려본 적이 없다면 과감하게 발언권을 행사해 보길 권한다. 그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또한 본인의 특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취준생 시절을 힘들게 보낸 이들이라면 그 시절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결국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어야 하는데 내 기준에서는 그 외 따지는 기준이 너무 많다. 또한 불과 몇 개월 혹은 1년이 내 커리어를 망치지 않는다. 10년 차가 되었을 시점 커리어 초반부 챕터는 아무렇지 않게 잘라내 버릴 수도 있는 법이다. 아직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해 본 적이 없지 않을까? 성장할 수 없을 것 같아 성장할 수 있는 곳을 희망한다고 하는데, 모진 환경이야말로 영양분이 가득한 곳이다. 이 글이 본인만의 의미 있는 기준 설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디스워크에서 제 글을 보시고 게시 제안을 주셨고, 이를 수락해 아래와 같이 취업토크 게시판에 게재되기도 했다.
Photo by Susan Q Yi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