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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수 Aug 02. 2022

꼰대 vs. 멘토

멘토에 대한 내 생각과 고집

안팎의 답답함 때문에 분출하게 된 선심의 분풀이가 멘토링 활동의 솔직한 이유이자 계기였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누군가로부터 멘토라 불리는 기회가 잦아지고, 스스로도 이름 앞뒤에 멘토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근데 나 멘토 자격이 있긴 한가?' '멘토라고 해도 되나?' 등의 자문을 여러 번 던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멘토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기에 이른다.


생각의 과정은 이렇다. 물론 멘토에 대해 이것저것 공부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해야 할 대처 방안은 내가 궁리하지 않고서는 어디서도 답을 구할 수 없다고 느꼈다.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기 위해 택한 방법은, 가장 대비된다고 생각하는 개념과의 끊임없는 비교였다.




기준: '우리'에 대한 개념 차이


'잇다'에서 1:1 질의응답이 점차 늘어나다 보니 어느 단계부터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도 받을 수 있었다. 상황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잘 대답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더욱이 어렵사리 전달한 답변이 과연 실제 질문자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보니, 작성은 물론 보내고 난 뒤에도 쉽게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좋은 멘토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내가 혹시 꼰대 같았을까?' 여러모로 조심하게 되었는데, 너무 조심만 해서는 자신 있게 조언을 할 수가 없다 보니 어느 정도 수준으로 마인드 세팅을 해야 할지 기준과 판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게 참 어려웠다. 이거야 말로 배운 적은커녕 물어볼 사람도 없었기에 말이다. 또한 내가 꼰대인지 아닌지는 사실 내가 아니라 타인이 나를 인지하는 것에 달렸기에 혼자서는 근본적으로 풀 수가 없었다.


꼰대라는 대상을 그저 나를 멸시하거나 괴롭히는 이로 확대해서 보면 정의가 무색할 수밖에 없었다. 실용적인 정의를 위해 내가 세웠던 꼰대의 기준은, 그가 '우리'의 개념을 어떻게 갖고 있는지에 달린 것으로 보고자 했다. 그 '우리'를 바라보는 방향, '우리'를 대하는 태도로부터 그가 무엇을 왜 알려주고 싶은지, 모든 것들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란


(나와 네가 '우리'니까) 너도 그래야 돼 (내가 본위)
 

지속성이 길든 짧든 그와 내가 '우리'로 엮이지 않으면 그는 나에게 꼰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삼았다. 소위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나올 수 있으려면 최소한 '우리'라는 모종의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 예컨대, 외국에서 자란 외국인한테 느닷없이 '라떼는 말이야'라고 한다면 왜 어색할까? 그 발언으로 그에게 어떤 행동의 변화도 촉구할 수 없는 이유는, 문화적으로나 관계적으로 상호 간의 공통분모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그저 화자의 과거 무용담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무관한 것이다.


반면 그런 외국인일지라도 그가 직장 동료나 어떠한 이해관계자로서 '우리'에 편입되면, 그때는 '라떼는 말이야'를 말할 명분이 있다.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동료이기 때문에 같은 조직의 일원이라면 모름지기 어때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 자체를 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 선험자로서 말이다. 이를 사회 연결망 이론에서 말하는 강한 연대(Strong tie)와 연관 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강한 '우리'가 성립됐으면 그다음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관건이다. 이러한 밀접 관계 속에서 내부자의 시선은 새로운 개인보다는 기존 조직을 우위에 두기 마련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우리'가 더 중요하면 그 기준 또한 '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우리'의 일원이자 선험자로서의 '나' 또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렇듯 내가 기준이 되면 내가 했던 과정을 함께 거침으로써 이제 '우리'가 완성된다고 보게 된다. 그 결과 개인은 조직에 동화될 대상이 될 뿐이다.


이를 토대로 본 꼰대의 핵심은, 좋든 싫든 악습이든 전통이든 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했으면 너도 해야 해 왜? 우리니까'라고 봤다. 사실 누군가가 나를 공동체 일원으로 생각해 준다는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닐 것이다. 때문에 꼰대질에는 다소 간의 '환대'도 포함된다. 하지만 지나친 집단주의와 획일주의로 개인을 바라보면 모난 돌은 정으로 내려칠 수밖에 없다.



꼰대와 멘토 사이에서


꼰대를 면하되 어떻게 해야 좋은 멘토로 다가갈 수 있을까?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면 자칫 꼰대처럼 보이기 십상 같았다. 그렇다고 안전하게 그냥 좋은 게 좋은 얘기만 해서는 전혀 엣지가 없었다. 실제로 별반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디서도 들을 법한 이야기를 나 또한 재생산한다면, 그것은 정말 모두에게 낭비가 아닌가. 꼰대 같진 않지만 필요한 이야기를 잘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계속 고민했다. 이는 사격과 활쏘기 명중률을 높이는 노력과 동일했다.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멘토이기 이전에 스스로 꼰대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내가 취했던 노력은 사실 한 끗 차이다. 질문과 관련된 과거 내 무용담이 아니라 흑역사를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같은 사건이 질문자에게 반복될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시키고자 했다. 그 목적은 내 커리어의 치부를 통해 질문자가 과거의 나보다 훨씬 나은 상태에 이미 있거나 혹은 더 나은 상태가 얼마든지 될 수 있음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의 '우리'는 질문자가 지향하는 직업군 즉, UX 분야이다 보니 광범위하다. 때문에 이렇게 형성된 '우리'라는 관계는 사회 연결망 이론에서 말하는 약한 연대(Weak tie)에 대응될 수 있다. '잇다'와 같은 외부 플랫폼에서의 멘토링 활동이 같은 조직 내에서의 멘토링 활동과 결이 달라지는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약한 연대의 지원에 힘입으면 적당한 익명성과 거리감으로 인해 업계의 고질적 병폐에 대한 진솔한 대화는 가능하되, 세부 조직 단위의 레거시까지는 직접 건드리지 않아도 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마치 잘 모르는 사람에게 오히려 속내를 털어놓기 좋은 것처럼 말이다. 부가적으로 회사의 눈치를 많이 봐야 했던 내겐 이를 통해 회사와의 거리도 둘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한편, 멘토링 활동이 점점 쌓이면서 이러한 접근이 마냥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 없는 방향임을 곧 깨닫게 된다. 본질적으로 자기 방어적 멘토링은 나의 안위로 인해 그 본위가 온전히 질문자를 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꼰대가 아니기만 하면 다 멘토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앞서 언급했듯 판별의 기준은 화자가 아니라 청자에게 있다. 청자 입장에서는 막말로 뭘 자랑이라고 못난 과거 얘길 꺼내나 의아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감에 의존해 이래라저래라 했다간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결국 이도 저도 안될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멘토란


(나와 네가 '우리'니까) 나로서 족해 (남이 본위)

또다시 기준이 관건인 가운데, 결국 질문자를 기준으로 놓아야 했다. 질문이 부실하면 발전시켜 질문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과정을 선행해, 최대한 맞춤 답변을 시도했다. 하지만 노력을 해도 질문자가 처한 상황이나 생각의 기저를 모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론 본인조차도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다 보니 한계 또한 있었다.


결론적으로 답변을 작성할 때는 질문자를 향하되 가치판단을 내려주지 않기로 한다. 무슨 말이냐면, 정답이 아니라 문제 푸는 방법을 알려주기로 한 것이다.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통째로 가르쳐 주는 것, 나의 멘토 컨셉은 그렇게 '퍼주기'로 설정하게 된다. 이로써 양과 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노렸다.


애써 무엇이 옳거나 좋은지를 첨예하게 다루려 무리하지 않았다. 즉, 불확실한 성공에 대해서 논하기보다는 확실한 실패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강조했다. 진로와 취업 관련 모든 질문은 사실상 두려움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자신감과 긍정성을 심어 주려면 그 두려움이 별개 아님을 잘 설명하면 된다고 믿었다. 단순히 나의 실패라는 흑역사를 소개하는 것은 어쩌면 실패를 종용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따라서 현재의 나를 담보로 내가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를 명확히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어떻게 보면 청자에 대한 존중이기도 했다.


이로써 도출해 낸 나라는 멘토의 본질은, 이 분야로 진출하려거든 '나처럼 헤매지 마 왜? 계속 그렇게 되면 우리(UX 업계)에게는 발전이란 게 없게 되니까'라고 봤다. 좀 더 거시적으로 분야에 발을 디딜지 말지부터 시작해서 그가 고민하는 화두 자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원거리에서 볼 기회부터 주려 했다. 때문에 멘토링은 그 목적상 분야로의 맹목적인 환대는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꼰대와는 결이 다른 또 한 점이다. 그렇게 여과 없이 장단점을 모두 노출하고, 아는 한도 내에서 현실의 큰 그림을 펼쳐 선보이는 안내자 역할에 주력하게 된다.




어쩌면 참 민감한 내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스스로 멘토라는 자의식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하게 설명해 봤다. 초창기에는 그저 꼰대를 면하려 노력했던 겁쟁이였다. 희한하게도 계속 소비가 되는 통에 그 본위가 훨씬 더 질문자를 향해야 한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된다. 결국 정답 찾기 보다도 프레임 자체를 말 그대로 퍼주듯이 전하는 것을 나름의 스타일로 정립해 낸다. 이 과정에만 3-4년은 소요된 것 같다.


척박한 분야의 현실과 진입의 경험에서 비롯한 내외면의 측은지심은 그렇게 거시적인 '우리'를 위한 밑거름으로 사용된다. 이 '우리'에 대한 해석 차이가 발생하면 힘이 없는 위치에서는 그 우리가 몹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를 거부하면 그 결과 개인주의가 되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있어 멘토란, 마치 인공위성처럼 UX 분야라는 테두리 안에서 멘티와 나 사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선회하고 있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를 향하되 그와 멀어지진 않으면서 내가 지향하는 '우리'를 가꾸기 위해 힘쓰는 역할이다.


Photo by Camylla Battani on Unsplash



Cover Photo by Oliver Roo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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