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민수 Jul 29. 2022

멘토링의 이유와 계기

내외면 측은지심의 입체적 대폭발

집필을 위해 멘토에서 저자로, 출간 후에는 브런치 모드가 되어 보다 솔직한 이야기들을 해보기로 마음 잡았다. 여러 화두 중에서도 책에서는 거의 건드리지 못했던 '멘토'에 관한 주관적 생각부터 먼저 꺼내보려 한다.




멘토링을 하게 된 이유


어떻게 하다가 멘토링을 하게 됐어요?

사실 지금까지 멘토링 활동을 하면서는 막상 받아보지 못했던 질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서는 나의 활동 자체를 잘 모르기도 했고, 멘티들 입장에서도 어찌 보면 사적인 질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질문 자체가 나올 수 없었다. 그러다 출간으로 인해 스텔스 모드가 해제되자, 비로소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 질문을 받아 뒤늦게 뭔가 해명(?)하듯 답을 해야 했다.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보은'이다.


우여곡절의 커리어 여정을 거치며 다른 이들로부터 받았던 크고 작은 도움이 많았고 결정적이었다. 당시에는 고마운 마음만 가질 수 있을 뿐 무엇하나 그들에게 되갚을 수가 없었다. 형편이 여의치 않은데 아닌 척 호기롭게 뭔가 하려 하면 더 안쓰러워 보이는 것처럼, 갚겠다는 의도와는 다르게 오히려 괜히 더 신경을 쓰게 만든다는 것을 눈치채자 이내 갚는 걸 체념하게 되더라. 오히려 보란 듯이 내가 우뚝 서는 것만이 그들에게 진짜 갚는 것이라는 명제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아주 적절한 계기와 조우한다.



멘토링을 하게 된 계기


시간이 흘러 어둡기만 했던 커리어 상황이 어느 정도 밝아지자 이제는 뭔가 제대로 갚아도 되겠지, 이젠 서서히 갚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용솟음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오래 참아온 만큼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한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다시 그저 마음만 가질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와중에, 무심코 검색하다 '잇다'라는 한 현직자 멘토링 플랫폼을 발견하게 된다.


되갚아야 한다는 욕구 때문에 이 멘토링 플랫폼이 눈에 걸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단편적이다. 아직도 '잇다' 홈페이지를 둘러볼 당시 나의 상황과 심리상태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순간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내적인 촉발


하나는, '과거의 나 자신에 대한 측은지심'이었다. 당시에는 비디오 멘토링 없이 오로지 텍스트를 통한 1:1 질의응답을 주력 서비스로 제공했다. 편리한 비대면 방식, 또 멘티 입장에서 어느 정도 익명성도 보장이 되며, 게다가 1:1 개별 멘토링을 심지어 무료로 받을 수 있다니... 경계심과 수줍음이 많은 나라도 질문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야말로 기뻤다!


하지만 이런 플랫폼의 존재를 알아버렸다는 기쁨도 잠시... 과거 이런 플랫폼이 취준 시절 나에게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니, 당시 헤매기 바빴던 자신을 더 연민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과거의 나를 이제 와서 구원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러자, 어쩌면 이런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임한다면 '지금, 과거의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분명 뭐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상당히 의미 있는 차선책으로 급부상해버리는 것이었다. 즉, '하고 싶다'가 '해야겠다'로 바뀌면서 갚는다는 행위와 대상을 재정의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뒤돌아 볼 여력이 생겼을 즈음 ‘나의 이런저런 경험이 혹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시작한 것이 멘토링이었다. 
(중략)
영미권에는 ‘Pay it forward’라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선배 혹은 동료로부터 받은 호의를 베푼 이에게 되갚는 것이 아닌, 그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이에게 나눔으로써 갚는 걸 의미한다. 

- p.280, 281 에필로그 '질문이 멘토를 만든다' 중



외적인 폭발


다른 하나는, '현재(그 당시)의 나에 관한 측은지심'이었다. 힘든 대학원 생활을 통과해 당도한 현업은 안정적 시작이 아닌 또 다른 난관이었다. 학계와 업계의 결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졸업 후 입사해 마주한 UX 업계의 첫인상은 전쟁터 그 자체였다. 현실의 UX 업계는 오르지 못할 나무라기보다는 오르기 힘들게 자란 나무에 더 가까웠다. 1년 넘게 산학 프로젝트를 하며 들락날락했음에도 적응기간이 꽤 필요했다. 현실의 결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의아했다. 혹여 바꾸고자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때로는 일 자체가 고되기도 했지만 어떻게 맞바꾼 현실인지를 떠올리면 모든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기에 버티고 버텨 지금에 이르렀다.

- p.17 프롤로그 '어느새 진짜 UXer' 중

아마도 과거의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라면, 바닥에 들러붙다시피 스러진 삶과 커리어를 어서 일으키기 위한 노력에만 엄청난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먼 목표나 꿈을 정교하게 그릴 여력이 없을 심산이 클 것이다. 당연히 시야가 좁아지고 소망도 소소해지기 마련이다. 삶이 급급함의 연속으로 꾸며지게 된다. 결국 깊은 숲에서 겨우 빠져나왔지만 히뿌연 안개는 계속되는 상황, 좌절하기 쉬운 현실이 자꾸 되풀이되는 것을 피부로 체감하다 보면 누구라도 지칠 수밖에 없다.


때론 화도 날 것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근시안의 자신도 자신이지만, '대체 왜 아무도 이런 걸 알려주지 않았을까' 하는 대외적 원망을 공허하지만 외쳐댈 수밖에 없더라. 어차피 다 자업자득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밖으로 향하기만 하는 원망 조차도 애써 안에서 정화하기 바빴다. 그렇게 남은 멘탈 폐기물을 쌓아둘 내 안에 공간이 더 이상 부족해지자, 답답하고 갑갑해 터지기 일보 직전에 치닫는다. 그저 갚는다는 것 이상으로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은 욕망도 들끓게 된 이유였다.



빌런이 될 순 없잖아


위와 같은 심리를 가진 상태에서 나 같은 기질의 사람이라면, 끝내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못내 무언가를 해 지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당시 더 이상의 방관에도 인내에도 한계가 온 나로서는, 이제 '에라 모르겠다' 극단적인 두 가지 갈림길 위에서 나의 행동 패턴을 정하고 싶었다.


어차피 과거의 나는 이제 구제 불가능, 현재의 나 또한 쉽게 구원이 어렵기에 '에라 모르겠다' 날 가만히 두고 대신 남을 열심히 깎아내리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쉽게 말해 분풀이다. 결국 남에게 해코지하는 것으로 빌런의 탄생이다.


반면, 내가 알알이 깨달은 소중한 경험들을 흡사 산탄총에 장전해 그냥 쏴 퍼뜨리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에라 모르겠다' 속 시원하게 풀어버리는 행위에만 더 집중하는 방향이다. 그냥 누구든 얻어걸리면 득 보려니... 상당히 공격적인 선행이다. 일종의 안티 빌런쯤 될까.


결과적으로 '잇다' 인해 분풀이와 공격적 선행이 혼합된 초기 멘토의 길을   있게 된다. 솔직히 나의 멘토링 활동은 이렇듯 아름다움보다는 다소 다크한 기운에 이끌려 시작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훗날 이것은 아주 중요한 에너지로 작용한다. 심지어 브런치를 시작한 것 또한 같은 에너지를 아직 사용 이기도 하.




우여곡절의 커리어 여정의 몫도 컸지만,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의 시원은 '잇다'에서의 멘토링 활동이었다.


연소 작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첫째, 탈 것이 있어야 하고 둘째, 발화점 이상의 온도 그리고 셋째, 산소가 있어야 하듯이, 나에겐 나눌만한 우여곡절의 경험과 발화점에 이른 내외면의 측은지심 그리고 이를 도와줄 '잇다'라는 플랫폼 덕분에 어떤 멘토로서 활활 각성할 조건을 갖추게 된 셈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이러한 출발로는 나 스스로가 멘토라는 자의식을 갖기엔 부족한 게 많았다.


Photo by youssef naddam on Unsplash



Cover Photo by Mohamed Nohassi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가 왜 어려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