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했지만 전부는 아니다
책이 나온 지 꼬박 한 달이 지나버렸다. 원고를 쓸 땐 겨를이 없었는데 탈고 후 집필 막바지, 출간 이후 삶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만이 어쩌면 유일한 호사였던 시기였다. 그만큼 애썼고, 몹시 힘들었다.
막상 뚜껑이 열리고, 인생은 보란 듯이 나를 가르치더라. 어디 감히 미래를 넘보냐는 듯. 이제부터 하게 될 이야기는 상상과 다르게 전개된 현실 속 나의 깨달음이자 그로 인한 고백이다.
책이 나오자 출간 전에는 하지도, 할 수도 없었던 몇몇 상상의 가지들이 이제야 뻗어 나오고 있음을 새로이 인식한다. 생각의 시작은 이렇다.
만약 내가 갑자기, 갑자기 이내 죽어버린다면? 지금 막 세상에 나온 이 책이 본의 아니게 나의 '유작'이 된다. 유작..!? 순간 생각이 턱! 하고 멈추더니 그냥 몹시 싫었다. 아무리 상상이지만 쉬이 납득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상상을 한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해서 이유를 열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책에 진심이 부족했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다시 봤을 때 기준치 미만이라 여겨졌던 글과 구성을 어떻게 해서든 끌어올린 고비가 많았고, 그로 인해 약간의 아쉬움은 오히려 노력의 증표 같았기에 책에서 느끼는 후회와는 거리가 머-언 감정임은 틀림없었다. 그럼 도대체 왜, 왤까?
왠지 모를 아쉬움의 정체는, 책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미완성'에 대한 미련임을 깊게 깨닫는다.
진행 중인 어떤 일이 매듭지어져야 잊을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찜찜해서 미련 때문에라도 더 오래 기억한다는 자이가르닉 효과(일명 미완성 효과), 예컨대 드라마 연속극에서 중요한 결정적 순간에 회차가 끝남으로써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도록 해 후속 시청을 유도하는 기법을 들 수 있다.
집필의 과정에서는 무사히 이 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강한 목표의식만 품을 뿐이었다. 이 투철한 목표의식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경주마처럼 되어야 했다. 책을 써내기 위해서 산다고 표현해도 무색할 정도로 책만 보고 달렸다. 때문에 말 못 할 시련도 그냥 맞아야만 했다. 초보 작가다운 무식하고 미련한 접근법인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고, 그 덕분에 비교적 빠르게 써낼 수 있었다.
정작 책이 나오고, 분명 장구했던 여정이 끝나긴 했지만 이상하게 끝난 기분이 덜 들었다. 매듭을 잘 지었음에도 하다가 만 느낌이 자꾸만 몰려드는 것이었다. 출간 프로모션 등 후속 활동이 남아 있기 때문인가 싶었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아껴둔 게 너무나 많다는 것을. 또한 오히려 더 큰 삶의 여정이 활짝 열려버렸음을 그저 적나라하게 확인해버리고 만다.
출간은 책이라는 원고에겐 끝을, 저자 아니 나라는 디자이너에게 있어선 어떤 '시작'의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무언가 저질러진 상태에서 이런 식으로 회고를 했을 때 드는 아쉬움은 미완성 효과 때문인지 훨씬 더 쓰리게 다가오더라. 게다가 이젠 돌이킬 수도 없게 된 마당에, 갑자기 불가항력으로 이 모든 걸 한 순간에 멈춰야 한다고 상상하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미처 안 해본 게 얼마나 많은가. 죽음을 앞두고 그런 것들이 안 아쉽겠는가. 하지만 그때 후회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그저 너무 오랜 시간을 당연하다시피 꾹꾹 참아온 나날들, 내 이름을 새겨도 될 충분한 결과물이지만 그래도 이게 끝이어서는 영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