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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얏 Aug 25. 2023

목숨은 100원이었다


# 1

오락기에서 목숨은 100원이었다. 죽으면 Continue가 뜨고 10초 카운팅이 시작됐다. 100원을 다시 넣지 않으면 Game Over가 떴다. 그 사이에 다급하게 돈을 꾸는 아이도 있었다.


# 2

구경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다른 아이가 하는 오락을 뒤에서 바라봤다. 얼마나 잘하는지, 얼마나 못하는지 히히덕거렸다. 어려운 구간이나 보스가 나타났을 때는 모두가 숨을 죽였다. 죽으면 같이 아쉬워하거나 자신은 더 잘할 수 있다는 듯 으스댔다.


#3

화면을 보는 방법


화면은 보는 사람을 만든다. 보는 사람은 화면을 보기 위해 다른 걸 보지 않는다. 보는 사람은 눈과 손이 필요하고, 때로는 귀가 요구된다. 보기만 하기 위해 다른 행위는 안 할수록 좋다. 무엇보다 눈을 고정시켜야 하므로 눈을 사용하는 다른 행위는 추천하지 않는다. 이때 자신이 안전하다고 여겨지면 좋다. 보는 사람은 화면을 유일한 현실이라고 믿어선 안 된다. 화면과 화면 밖의 경계를 문턱으로 느껴야 한다. 보는 사람은 화면을 사실보다 더 사실 같게 느낄수록 좋다. 화면 밖에서는 기다려야 나타나는, 혹은 나타나지 않는 장면을 매끄럽게 볼 줄 알아야 한다. 보는 사람은 즉각적인 반응과 자극으로만 볼 줄 알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화면에 익숙하지 않다면, 화면은 당신에게 거짓과 속임수로 여겨질 수 있다. 만약 당신이 화면을 유일한 현실이라고 믿는다면, 세상은 전지전능하고 모두가 마술을 쓰는 신들의 세계가 될 것이다. 주의해야 한다. 화면은 보는 사람에게 구분된 믿음만 요구한다.


#4

혼자 밥을 먹을 때면 늘 영상을 본다. 버스나 전철에 몸을 실었을 때도 영상을 본다. 걷고 있을 때는 지나다니는 사람, 차량, 자전거, 신호,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영상보다는 음악을 듣는다. 영상과 음악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 시작과 끝이 있지만 끝은 다시 시작, 다른 시작으로 연결된다. 하나만 보거나 하나만 듣는 건 거의 하지 않는다. 반복 재생하거나 다른 영상이 시작된다. 정해진 시간이 없을 땐 영상과 음악의 무한 루프에 빠져든다. 그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과 하고 있음을 동시에 느낀다. 배터리가 방전되어선 안 된다. 주변에는 늘 전기가 있다.


#5

처음 전기 불빛이 가정집에 설치되었을 때 몇몇 사람들은 불안했다. 범죄자의 표적이 되면 어떡하지? 누가 밖에서 훔쳐보면 어떡하지? 어두울 땐 다 같이 어둡고, 밝을 땐 다 같이 밝은 세계가 당연했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전기 불빛을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1887년 에디슨 사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황실에 전등이 설치되었다. 경복궁의 물을 동력으로 삼아 발전한 전등이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밤에도 환한 빛을 내는 전등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후 밤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이 종로에 설치된다. 하지만 툭하면 고장나거나 소음이 심해 전등을 '건달불'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전깃줄이 생소했던 한 시민은 끊어진 전깃줄을 호기심에 맨손으로 건드렸다가 손발이 새까맣게 타는 사건도 일어났다.


#6

아이들에게 컴퓨터는 게임기로 다가왔다. 초창기 게임은 보통 스테이지가 있었다. 화면이 바뀌거나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며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오락기처럼 혼자하거나 친구와 같이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최초의 온라인 게임이 나타났다. 거기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채팅과 함께 나타난 다른 사람은 유저로 불렸다. 스테이지가 맵으로 불렸다. 한 맵에 수많은 유저가 있었다. 그들은 각자 자기 캐릭터를 플레이했다. 캐릭터로 채팅을 했다. 아이들은 그 누구도 사람이 아니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반복된 말, 고정된 움직임만 보이는 캐릭터는 NPC로 불렸다. 가끔 사람 같지 않은 유저를 보고 공포를 느끼는 아이들도 있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특정 캐릭터의 그래픽이 깨지거나, 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이거나 따위의 순간에 그랬다.


#7

컴퓨터 게임을 하려면 돈을 내거나 불법 다운을 받았다. 처음 CD가 나오기 전 게임은 인터넷에서 그냥 다운 받을 수 있는 게임이 인기였다. CD 게임이 나오자 게임에 돈을 쓸 수 없는 아이들은 PC방에서 그 게임을 했다. 온라인 게임은 월 정액제라는 이름으로 시간 사용제 방식의 값을 받았다. 그러다가 게임 속 아이템을 돈으로 사는 방식이 나타났다. 그때는 이미 게임 속에서 유리함과 편리함, 부러움을 어떻게 느끼는지 유저 모두 알고 있었다. 당시 아이들은 부모님의 반대로 게임에 돈을 못쓰는 게 다수였다. 수많은 아이들이 한 명의 유저로 돈이 없어서 게임을 못한 경험, 자신의 캐릭터를 멋지게 키우지 못한 경험, 갖고 싶은 아이템을 가지지 못한 경험을 겪었다. 안 하면 그만인 게임은, 하는 동안 전부였다.


#8

스트리머 플랫폼이 생기고 사람들은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 말을 걸기 위해, 같이 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참여하기 위해, 응원하기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해 돈을 준다. 100원어치 목숨 하나로 구경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화면은 무수히 많은 보는 사람을 만들었다. 전기를 쓰지 않는 사람은 찾기 힘들 뿐더러, 먼 이국 어딘가에 살고 있는 부족민 같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처음 끊어진 전깃줄을 맨손으로 만진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 사람의 손은 어떻게 됐을까. 그 손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됐을까. 어떤 변화는 때로 너무 강렬해서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 저번 달 전기세가 자동으로 이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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