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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얏 Oct 19. 2022

서울 나들이 2


느지막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우리집 강아지가 침대 턱을 긁으며 낑낑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녀석이 배가 고픈지 심심해서 그런지 애교를 부리고 싶은지 순간 파악하려 쳐다봤지만, 뭔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며 수상한 낌새를 느낀 나는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방에서 나왔는데. '철퍼덕'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언덕에 있는 2층 집이었다. 밖은 폭우로 비 소리가 거세게 들렸는데, 처음에는 강아지가 오줌을 싼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거실 바닥이 온통 물난리였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돌지 않았다. 도대체 언덕에 있는 2층 집에 어떻게?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어떻게 물이 들어왔는지 찾기 시작했다. 거실과 연결된 베란다 쪽에서 빗물이 역류해 넘치고 있었다. 다행히 방까지 물이 들어오기 전에 강아지가 나를 깨웠던 것이다. 서둘러 물을 푸기 시작했다.


 비는 그쳤지만 거실 온통이 빗물이었다. 쓰레받기로 바닥을 긁어 물을 푸고, 걸레로 적셔 짜기를 두어 시간. 넘쳐 흐른 빗물을 얼추 수습했다. 냉장고나 가구 밑으로 스며든 빗물에 닿을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며 보일러를 한껏 틀어 놓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친구 두 명과 동행했다. 동대문과 장충동, 그리고 짧게나마 역삼과 강남에 들렸는데 어제의 쓸쓸함 때문이었을까, 사람의 욕망에 대해 곱씹게 되었다. 동대문은 변해 있었다. 장충동은 처음이었으나, 우연히 들린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에서 6살인 카자흐스탄 남자 아이 리끼타를 만났다. 친구 A는 우즈베키스탄 맥주(아마도 맞을 것이다, 아니면 러시아?)를 샀고, 나는 오늘부터 들고 다니기로 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식당 사람들을 찍어주었다. 낯선 분위기와 낯선 음식을 먹고서 그들과 짧게나마 대화를 나눴다. 서툰 한국말이 먼저 나오면, 우리의 언어도 서툴어진다. 서로 만나기 위해 언어를 자동적으로 조율하는 모습이 내겐 퍽 흥미로웠다. 순간적으로 나는 소쉬르가 50년만 늦게 태어나 동북아시아로 여행을 왔으면 어땠을지를 떠올렸다. 알파벳 언어권에서는 기표와 기의가 분리되어 있지만, 한자 문화권 안에서는 상형문자와 지사문자를 기반으로 두기에 분리가 아닌 일체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한자도 병행하여 쓰기에 이 이미지 분리가 꽤 느슨한 편이다. 더욱이 훈민정음은 음소문자로 창안되었기에, 우리말을 쓰는 순간에는 늘 '말의 운동성'이 드러난다. 한국어의 아름다움은 입과 입으로 오고갈 때 더욱 빛난다. 친구들과 리끼따가 나누는 대화를 보며 이런 생각들을 했다.


 나는 6살 리끼따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선물했다. 서툰 발음으로 '고맙습니다'고 말했다. 물론 그 어린 친구는 내 선물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온통 축구에 있었다. 친구 A는 열심히 말을 걸었고, 친구 B는 사전을 이용해 리끼따가 러시아어를 한다는 걸 알아냈다. 그리고는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 이모?에게 물었다. 이곳은 카자흐스탄 주민들이 모여 사는 촌이고, 이 분들은 5년 전에 이곳으로 와 음식점을 운영하는 교포라고 얘기해줬다. 잠시였지만, 이국으로 여행 온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과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사람을 대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모습이 다르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느낌이 아니라 마주하는 언어가 달라짐에 따라 변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내 안에 거주하는 언어를 마주할 때는 혼자를 대하는 느낌이고, 친구들의 언어를 대할 때는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다. 이 간극은 때로 우리로 하여금 다름을 느끼게 하지만, 나아가서는 거부감을 느끼게 하지만 이 거리감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건 분명하다. 


 강남은 여전히 싫었다. 재차 느껴지는 사람의 욕망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그것들이 외면으로 날것으로 드러나는 인상을 받는 곳이 강남이다. 서투른 거짓말과 서투른 욕망. 도시는 우리에게 그런 서툼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도모하라고 부추긴다. 사람들을 더욱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일. 우리에게 내면의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 내면으로의 소통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 소통이 왜소해질수록 불안으로 번지고, 이 불안으로 더욱 외면에 매달리게 된다. 이해 불가의 방벽이 세워져 있는 어른들의 경고였지만, 외면 생활 속에서 어떠한 의미나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는 걸(순간적인 쾌감은 느낄 수 있을지언정) 알아버린 이상 도시 겉면은 매섭게 다가온다. 나의 활발한 상상력은 그래서, 금세 지치고 만다. 언젠가 노트에다 이렇게 지치고 마는 것은 죽음의 이면이라고 써놓았던 적이 있었다. 그 지치고 마는 상태로 떨어지는 찰나에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었다. 이 공허감은 반드시 관계들을 위태롭게 한다. 사람과의 관계, 도시와의 관계, 나와의 관계, 삶과의 관계.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이 불안이 생의 수단이므로.


 산책 도중 친구들에게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싫음'에 대해 말을 하기도 했다. 이 싫음은 막대한 느낌으로, 사람을 보장하는 증빙 서류처럼 각인되어 나에게 제출된다고. 이렇게 추상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낼 수 있는 게 즐거웠다. 친구들은 간혹(거의 매번이지만...) 내가 이렇게 이상한 말을 할 때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말의 공간. 바깥을 쏘다니다 보면 꽤나 자주 가장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염세와 냉소를 마치 연극할 때 쓰는 미술 도구처럼 위장하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냉소는 견유의 냉소, Cynic이다.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공통점은 언제나 '탓'을 한다는 것이었다. 비교와 탓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옭아매는 투정들은 도를 넘어 그들의 진실이 된다. 나는 그들을 만날 때 나에게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바라본다. 피로감, 이를 느끼는 내가 이상해지는 기분이지만 이 피로감을 조장하는 도시 서울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다.


 거리를 보며 여지에 대해 생각했다. 여지란 곧 불안의 침묵이다. 그래서 나는 골목들에게서 친근함을 느끼고, 유독 여지가 사는 골목들을 좋아한다. 또 여지와 같이 사는 사람들을 곁에서 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삶에는 여지가 필요하다고 믿는데, 여지가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은 마치 타는 것에 열중하는 장작처럼 결국 소멸하고 만다. 이 어쩔 수 없음에 스스로의 생을 이끌고 살 테지만, 여지는 분명 소멸을 유보하려는 생의 근거라는 걸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된다. 


 장충동에서 본 동국대 주변의 낌새들은 도시로서 타당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무엇인가 끼워넣어진 느낌인데 짧은 산책인 만큼 언어가 되지 못했다. 오늘은 리끼따 덕분에 생애 첫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걷는다는 건, 분명 나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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