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권력을 지탱하는 나라: 북한 체제의 비밀

by 김희우

종교 없는 땅에서 탄생한 신

1990년대 초,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소련이 붕괴하고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졌다. 그런데 북한은 달랐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수십만 명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북한 체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무엇이 북한을 지탱했을까?

답은 '신화'에 있다. 북한은 종교를 철저히 박멸한 사회주의 국가지만, 역설적으로 신화에 기대어 체제를 유지해왔다. 김일성을 신격화한 정치적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는 "신화가 민족성의 기초를 만든다"고 말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아리안 신화'로 패배주의에 빠진 독일인을 매혹시켰듯, 김일성도 비슷한 방식을 택했다.

일본 패망 후 권력의 진공상태가 발생했을 때,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항일투쟁의 영웅'이 백마를 탄 초인처럼 등장한 것이다. 카시러는 "인간이 위기에 직면할 때 감성이 이성을 압도하며, 바로 이 순간이 신화가 등장하는 최적의 시간"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이 원리를 정확히 활용했다. 1967년 김일성이 유일영도 체계를 채택하며 본격적인 우상화가 시작됐고, 1968년부터는 모든 학년에서 김일성 우상화 교과서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쳤다.



뮈토스가 로고스가 되는 곳

1987년 출간된 <김일성 전설집>은 북한 신화 만들기의 결정판이다.

북한은 이것이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떠돌던 것을 편찬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교묘하게 기획된 정치적 신화였다. 1990년대 국어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이 실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종이에 연필로 말들을 그리시고 해뜨는 동쪽을 향해 세 바퀴 휘휘 두르시였습니다. 그러자 종이 안에서 진짜 말들이 껑충껑충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김일성이 적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근처에 있던 소나무 잎을 하나하나 뜯어 모자에 넣고 빙글빙글 돌린 후 바람에 날렸더니, 그 솔잎들이 병사로 변해 적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일성이 '축지법'이라는 신비한 능력으로 순식간에 먼 거리를 이동했다는 이야기까지 교과서에 실렸다. 이는 누가 봐도 허구지만, 북한에서는 '사실'로 규정되어 공교육 현장에서 학습된다. 신화(뮈토스)의 언어가 논리(로고스)의 언어로 편입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문은 용납되지 않는다. 조건 없는 믿음만이 강요될 뿐이다.

이러한 신화 교육은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진행됐다. 김일성의 유년 시절부터 '영웅적 풍모'를 만드는 작업이 시작됐고, 일제와 싸웠다는 항일투쟁 이야기는 점차 확대되어 '민족의 위대한 역사'로 둔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과거는 사람들의 기억을 지배하게 되고, '우리 민족의 숭고한 역사'라는 이름 아래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김일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는 그가 북한을 지도하는 것이 당연하고 필연적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낸다.



수령을 어버이로 하는 대가정

북한 체제의 핵심은 '사회주의 대가정론'이다. 북한은 두 개의 가정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혈육으로 구성된 보통의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수령을 어버이로 하는 '사회주의 대가정'이다. 북한 주민들은 자녀가 부모를 섬기듯 수령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해야 한다고 교육받는다.

1986년 제시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이를 더욱 강화한다. 개인의 육체적 생명은 유한하지만, 수령·당·대중의 통일체를 이루면 사회정치적 생명은 영생한다는 논리다. 이는 수령 중심의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를 정당화하고 권력 세습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북한은 1974년에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공식화했으며, 이 문서는 종종 기독교 ‘십계명’과 유사한 규범 체계로 비교·해석된다. 종교를 박멸한 사회주의 국가가 역설적으로 종교적 형식을 빌려 권력을 공고히 한 것이다.



죽어서도 영생하는 권력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북한은 그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영원한 수령'으로 규정하며 영생을 강조했다. 2016년 개정 헌법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함께 '영원한 수령'으로 표기했다. 인간이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신화적 인물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통치 기간 내내 아버지 김일성의 정치적 카리스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김일성 유훈 정치'라는 독특한 통치 시스템으로 김일성을 추모하는 주민들의 유교적 부채 의식에 편승했을 뿐이다. 김정은 역시 할아버지 김일성의 유산에 기대어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 만약 탈(脫) 김일성화를 시도한다면, 정권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신화의 역설

북한은 유물론이 기본 이념인 공산체제다. 종교를 반민족·반국가적 행위로 간주하고 정치적 범죄로 취급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은 신화를 통해 종교보다 더 강력한 통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학자들은 북한 체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해왔다. '신정체제'는 북한을 종교국가처럼 보는 관점이다. '유일지배체제'는 권력이 최고지도자 한 명에게 집중된 구조를 강조한다. '수령체제'는 수령의 영도 아래 모든 것이 움직이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북한이 사실상 '김일성교'라는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국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 경제가 일부 시장화되면서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시장이 확산되자 외부 정보가 유입되고, 체제에 대한 불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북한을 탈출하는 주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신화에 기반한 북한의 사회구조가 아래로부터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신화는 왜 작동하는가

대중은 자신들과 비슷한 평범한 사람이 명령하고 군림하는 상황을 용납하지 못한다. 독재자를 비난하면서도 통치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기에' 권력을 성취했을 것이라는 비합리적 믿음을 갖는다.

정치 행위와 통치 과정에는 상징이 깊게 개입한다. 대중은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정, 소속감, 두려움, 기대 같은 정동이 크게 작용한다. 식민 지배를 겪고 해방과 분단을 맞으며 '새로운 공동체 구성원'으로 재정의되어야 했던 사람들에게, 군사 영웅을 우러르는 태도는 불확실한 현실을 견디기 위한 심리적·사회적 장치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를 단일한 심리 기제로 환원하기보다는, 전쟁 경험·생활 조건·정치조직의 동원·선전 체계가 복합적으로 얽혔음을 전제해야 더 엄밀하다.

미셸 푸코는 권력이 특정 개인이 아니라 제도, 담론, 규율, 조직을 통해 재생산된다고 강조했다. 해방 이후 북한 지역에서도 권력은 다양한 행위자와 조직의 경쟁 속에서 재배치되었다. 일본의 패전과 철수 이후, 소련군의 진주, 국내 세력들의 갈등, 당·군·보안기구의 형성 등이 겹치며 권력투쟁이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김일성은 군사·항일 서사를 중심으로 한 상징 자원을 제도화하는 데 유리한 위치를 점했고, 이를 국가적 서사로 효과적으로 정착시켰다.

결국 북한에서 신화적 서사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장이 아니라, 특정 권력 질서를 정당화하고 비판을 제약하는 정치적 장치로 기능해 왔다. 김일성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도 학교 교육, 기념의례, 매체 재현 같은 공적 제도를 통해 이 서사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문제는 '신화' 자체가 아니라, 다원적 해석과 비판적 검토가 제한된 상태에서 단일한 서사가 규범으로 고정되는 방식이다.

사회주의 북한은 종교의 공적 영향력을 강하게 억제해 왔지만, 종교가 완전히 '박멸'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도자 숭배와 국가 이데올로기가 종교적 형식(의례, 성상, 성지, 교리적 언어 등)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신화를 부정하는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신화적 구조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체제—그것이 북한을 이해하는 하나의 유효한 관점이다. 이 사례는 신화가 문예적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근대 국가의 정치이데올로기 속에서도 강력한 동원·정당화 기제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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