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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따뜻한뿌리 Mar 24. 2023

무작정 산골살이 4편

콩을 털면 종소리가 나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꼭 심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메주콩이었다. 내가 농사 지은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된장을 해서 먹는 야무진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의 첫 번째 로망일 것이다. 처음 콩농사를 위해 동네 할머니께 콩은 어떻게 심는지 물었더니 “콩을 심어야지” 하고 웃어셨다. 그렇지 ‘콩 심은데 콩나지’ 라는 만고의 진리를 이제야 터득하다니...하고 같이 웃었다. “메주콩은 자네 손으로 두뼘 간격으로 심고 너무 깊게 묻지는 말고 적당히 파서 심으면 되지” 그리고 계속된 이야기는 이 동네는 콩 심으면 새가 먹고, 노루가 먹고, 토끼가 먹고 하니 콩에다 약도 바르고, 어떤 분은 냄새나는 것에 담그기도 하고 모종으로 심기도 하며, 조금 널찍하게 심어야 바람도 잘 통한다고 충고를 해주셨다. 아무리 그래도 콩에다 약을 바르는건 찜찜하고 설마 우리 먹을 꺼는 남겨두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심었다. ‘콩 세알을 심어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벌레가 먹는다’ 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6월 초 콩을 직파를 하고 비가 한번 왔다가고 나니 병아리가 알속에서 나오기 위해 알을 쪼듯 땅을 뚫고 콩싹이 예쁘게도 올라오더니 떡잎이 나비처럼 벌어졌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정말로 콩 떡잎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톡 톡 따먹기 시작하고 먹은 곳에 다시 콩심기를 반복해도 또 먹어버리고 도대체 고라니 토끼 새 꿩으로 추정되는 산짐승 날짐승들이 보기에는 밥상 차려놓은 것 같았나 보다. 더구나 만만한 어리버리 초보농부 아닌가... 이렇게 첫해 콩 농사는 어이없게도 허망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구나... 

 다음해는 맘먹고 콩밭에다 줄도 치고 무당집 마냥 주렁주렁 소리 나는걸 달고 붙이고, 아침저녁으로 들려다보며, 라디오도 틀어주고 가끔 꽹꽈리도 쳐주고,  우리집 개를 보초를 세우고 북세통을 친 탓인지 제법 콩을 달아 주었고, 농사꾼 집답게 가을 마당에 마른 콩들이 한 짐 자리 잡게 되었다. 

 세워둔 콩대가 어지간히 마르면 콩 터는 작업을 한다. 콩터는 기계가 없는 우리는 널직한 포대를 깔고, 남편이 도리깨로 콩을 내리치면 콩이 사방이 튀듯 쏱아진다. ‘콩한알에 도대체 몇 알이 달린거야’ 요 쬐금만것 하나 심어서 이렇게 많이 열리니 이런 맛에 농사를 짓나보다...난 멀직히 떨어져서 작대기로 콩을 두들긴다. 콩을 털다보니 지난 번 태풍에 쓰러져 넘어진 것들이 있었는데 일일이 세우기가 귀찮아 그냥 뒀더니 상한 콩이 눈에 하나 둘 띈다. 귀찮다고 조금만 미루고 게으름을 피면 그 표시가 확연히 드러난다. 살아있는 생명이니 가꾸는 데로 거두는것인데 누굴 탓하나 게으름을 탓해야지...첫 번째 직파는 보기 좋게 실패를 하였지만 이만큼이라도 거둔게 어딘가... 내 자신이 기특하고 장하다 싶어 혼자서 씰씰 웃으며 콩대를 바라본다. 

 생각해보면 농사 짓기 전에는 늘 머리만 굴리며 살다가 농사지으면서 게으른 몸을 굴리며 살아가는것이 참 신통하긴 하다. 농사를 시작하면서 처음 드는 생각은 ‘힘이 좀 세면 좋겠다’ 였다. 산골집으로 처음 이사 왔을때 오랫동안 묵혀둔 집이라 주변의 풀 제초작업 하다가 쓰러진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 때 경험으로 몸이란게 내 마음데로 한다고 되는게 아니구나... 슬슬 용기도 주고, 달래주면서 써야지.. 이러면 안되겠구나 싶어 조금씩 몸의 틀을 잡아가고 산에도 다니고 운동을 하면서  일을 했더니 시간이 갈수록 몸이 마음을 따라 가고 있음을 느낀다. 

콩을 작대기로 내리치면 마른 콩대에서 뽀얀 콩들이 튕기듯 튀어나온다. 콩대에서 콩이 다 튀어나왔는지 흔들어보면 콩이 남아있는 콩대에서 신기하게 종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자꾸만 흔들어본다.                 


콩을 털면서


마른 콩대를 작대기로 내리 칠때마다

까맣고 흰콩들이 톡톡


콩대를 두들기는것 처럼

가끔 나도 누군가 이렇게 각성의 작대기로 쳐주면 좋겠다.

콩은 콩 대로, 쭉정이는 쭉정이대로, 콩대는 콩대대로 


각성의 작대기가 내리칠때마다 

콩처럼 톡톡 튀어 올라

새로운 내가 되면 좋겠다.


콩대를 흔들어보니 종소리가 난다.

내 맘에도 빙긋이 종소리가 난다.


2005년 11월 4일에 적은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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