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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Feb 09. 2023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

-엄마, 친구들이 나랑 안 놀아요.


  일요일 저녁, 아이와 둘이서 블록 놀이를 하다가 의미 없이 유치원에서 친구들이랑 무슨 블록 놀이를 하냐고 물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싶어 좀 더 자세히 물었더니 아이가 말하길, 블록 놀이를 하면 다른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블록을 만드는데 아이가 같이 놀자고 하면 아이들이 거절을 한단다.

아이는 말을 끝낸 뒤 입을 쭉 내밀고는 “엄마, 친구들이 나랑 안 놀아서 너무 슬퍼요.”라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아이는 유치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유치원 가기 싫다고 엉엉 울 때에도 쿨하게 뒤도 안 돌아보고 유치원에 들어가 버리는. 엄마 마음 편하게 해주는 효자 아들이었다. 그래서 사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자세히 물어보거나 하진 않았었다.


물어봐도 “몰라!” 짧고 굴게 한 마디만 하니 물을 필요가 없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유치원에서 혼자 외롭게 논다고 말하다니. 내가 너무 아이에게 신경을 못 쓰고 있었나 싶어 괜히 미안하면서도 갑자기 조바심이 생겼다.


사실,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이 더 힘들었던 이유는 내 예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끄러움이 무척 많은 아이였다. 남들 앞에 서기 너무 무서워서 어디 가면 뒤돌아서 있었을 정도로 (오히려 그게 더 눈에 띄는데도)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그래서 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은 고역이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도 나는 늘 한 박자 늦게 대답을 하였고 그러다 보니 늘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아이의 말을 듣자마자 잊고 있었던 나의 지난 시절이 갑자기 생각 나 마음 한쪽이 콕콕 아팠다.




  아이를 재운 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남편은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남편은 아이의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말라며 크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이가 블록 놀이를 할 때 유달리 자기중심적이라며 다른 친구들이 싫어할 수도 있겠다는, 짐짓 전문가인 냥 평가도 덧붙였다.

마치 남의 아들 평가하듯 건조한 남편의 말을 듣자 어찌나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지. 남편에게 너는 뭐가 그리 잘났냐며 따지고는 대화를 끊어버렸다.  


다음 날,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간 김에 담임선생님께 상담 신청을 하였다. 이렇게 하루 종일 고민을 할 바에는 선생님과 통화 한 통 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가졌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해주셨고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 이 질문을 할까 저 질문을 할까 곱씹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오늘 하루 재밌게 놀았냐 물으니 아이는 또 방긋 웃으며 “응! 근데 쪼꼬 도넛 먹고 싶어!” 대답하고는 얼른 내 질문을 막아버렸다.


더 물어볼까 하다가 괜히 아이의 기분을 망치게 할 것 같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빵집에 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초코 도넛을 사줬다. 아이는 너무 맛있다고 입에 초코가 잔뜩 묻은 채로 웃었다.




-네, 어머니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선생님의 상냥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나의 걱정스러운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이가 이런 말을 하였다. 평소에 매일 잘 논다는 소리만 하고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이렇게 혼자서 놀지 몰랐다. 너무 걱정이다. 등등, 나는 한풀이하듯 선생님에게 주절주절 내 마음을 풀어놓았다.


선생님은 나의 말을 다 듣고는 예의 친절한 목소리로 아이가 평상시에는 친구들과 전혀 문제없이 논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만, 아직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이 부족하여 서로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친절히 그날의 상황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자 지난밤 잠을 뒤척이게 하였던 고민들이 조금씩 옅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고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만화에 푹 빠져 있다가 내가 옆에 앉으니 나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포슬포슬한 아이의 볼을 만지니 그제야 안심이 됐다.




  내 품에서 나만 바라보고 내 손만 잡고 다니던 아이가 이제 홀로 설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음 같아선 엄마인 내가 뭐든지 다 해주고 싶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당장 억지로 친구를 사귀게 해 줄 수는 있어도 (엄마들과의 모임을 통해서) 그 친구들과 함께 재밌게 놀 수 있는 건 우리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인것처럼 말이다.


대신 아이가 힘들 때마다 기댈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내가 도와줄 수는 없어도 아이가 그저 기대 쉴 수 있고 말할 사람이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찾는 사람이 내가 되고 싶다. 그게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아이를 위한,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도움인 거 같다.


잠자리에 들기 전 엄마를 죽을 만큼 사랑한다고 찐하게 고백하는 아들을 껴안으며 생각한다. 내 품에서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그리고 아이가 세상을 향해 문 밖을 나간 뒤 내가 후회하지 않도록 더 많이 사랑을 주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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