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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Mar 21. 2024

남편이 변했다

수동적 육아 동지에서 능동적 육아 동지로,


남편이 변했다.

그것도 180도로 말이다.


무슨 일인고 하니. 오늘 아침 잠들어 있는 나를 두고 밖으로 나가는 남편의 소리가 들렸다.

커피를 사러 갔나 싶어 계속 침대에서 뒤척거리고 있었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남편이 집에 돌아온 뒤 나는 남편에게 왜 이리 늦었냐고 물었고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아들 병원 접수를 하고 왔다고 대답하였다. 아침에 일어난 아들이 목이 아프다고 말하였단다.


“뭐라고?”


나는 남편의 말을 듣고 무척 놀라웠다. 왜냐면 평상시의 남편은 그런 일이 있으면 꼭, 무조건 자는 나를 깨워서 아들이 목이 아프다는데 어떻게 하지? 병원에 가야 하나? 물어본 뒤 나의 대답 또는 명령(?)을 듣고 움직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남편은 육아에 있어서는 한 발 뒤에 있는, 나의 조력자 같은 이미지의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늘 회사에 나가 일을 하는, 가정 경제를 담당하는 사람이기에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육아의 전반적인 결정권 및 행동은 내가 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육아에 있어서는 나의 의견이 우선시 되었고, 남편은 아이가 아파 약을 먹일 때도 나에게 물었고, 아이의 훈육이 필요할 때도 나의 눈치를 먼저 살폈으며, 아이의 옷을 입힐 때도 나에게 가져와 한 번은 더 묻고 입혔다. 그때마다 나는 답답하였으나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남편이 한겨울에 굳이 굳이 서랍에서 얇은 봄옷을 찾아 입혔을 때도 (그 옷을 찾은 것도 대단하다 정말) 약봉지에 어떻게 약을 먹여야 하는지 다 써져 있는데도 굳이 이전에 처방받은 다른 약을 먹였을 때도, 가끔씩 아이의 학습지를 봐줄 때마다 내가 10분 걸릴 것을 40분 넘게 걸릴 때도 짜증이 살짝 났지만 남편은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니 편하였다.


하지만 나도 아이의 훈육과 관련하여 모를 때가 있거나, 또는 아이의 병원 입원 같은 중요한 책임이 나에게 떠밀려 올 때마다 나의 결정만을 기다리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분노가 올라올 때가 있었다. 물론 남편 덕분에 내가 이렇게 마음 편하게 육아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만 어쨌든 우리의 아이이니 적어도 이런 큰 문제는 우리가 의논하고 선택해야 하지 않는가!




  그랬던 남편이 근무가 일반 근무에서 교대 근무로 바뀌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목욕을 시키면서 얼마나 애 씻기는 게 기싸움을 요하는지 알게 되었고, 아이의 학습지 숙제를 시킬 때마다 얼마나 진이 빠지는지 알게 되었다. 애가 생각보다 무척 자주 아프다는 사실도, 그리고 병원에 오픈 런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 지도 남편은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거기에다 곳곳에 숨어있는 집안일들을 하나씩 하면서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왜 내가 집안일 하나 하면 소파에 앉아서 쉬는지 알겠다고 말하였다. 특히 끝없이 쏟아지는 빨래를 하면서는  나에게 “무슨 빨래가 이리 많냐? 오메 오메 힘들어 “ 혀를 내둘렀다.


남편은 종종 나를 보고 “너는 집에서 뭐 해?” 또는 “너 애 유치원 마치면 꼴랑 몇 시간 같이 있냐?” 와 같은 짓궂은 농담을 던지곤 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나의 위치에서, 나의 입장에서 함께 있다 보니 나에게 고생이 참 많았다고. 애 오는 그 순간부터는 정말 전쟁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고 말해줬다.


남편의 그런 말이, 그리고 조금씩 변하는 남편의 행동이 무척 의외이면서도 고마웠다. 또한 남편 덕분에 낮아진 나의 자존감도 조금씩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내가 하는 일이 비록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우리 가족에겐 중요한 일이지.

나조차도 잊고 있었던, 어쩌면 나 조차도 무시하고 있었던 나의 일을 누군가가 인정해 주고 함께 발맞춰해 주니 그게 그렇게 감동일 수가 없었다.


당분간은 남편과 이렇게 서로 도와가며 육아와 집안일을 할 것 같다. 앞으로 잘 써먹어봐야지.


그런 의미에서 남편!

내일 소아과 현장 접수도 좀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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