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조각. 했었다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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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조각



그래야 했었다는 생각 중에

이로운 판단은 없다.

이미 지난 일이니까.

그건 마치,

더이상 재생할 수 없는

낡은 비디오테이프 속

존재하지도 않는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일.

또한 그것은 하나의 염원.

또는 실패한 구원에 도전하는 일.

너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는

말 한 마디를 하지 못해서.

고맙다, 사랑한다,

용서한다, 괜찮다와 같은

당신과 나를 살릴 수도 있던

말 한 마디를 못해서.

어디에도 희석되지 못해

끙끙 앓면서도 그걸 알면서도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

다시 기회가 주어져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면서,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살아오며 놓치고 잃은 것들.

그중에 하나라도 돌려받을 수 있다면.

나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까.

모두 무의미한 가정.

마음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얻는 건

조금은 너덜너덜하지만

굳건하게 붙어있는 목숨 같은 것.

얼음물은 시원하고,

강아지는 귀엽고,

수박은 한여름에서 맛있고,

나무 그늘은 시원하고,

풀 내음이 매운 감각들.

긴팔만 입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신경쓰지 않으리라.

흉터 커버업 타투를 보아도

뜯어 묻지 않으리라.

한쪽 귀가 들리지 않으면

반대쪽 귀 옆에 서는 사람이 되리라.

수어가 언어인 이에게는

함께 수어로 대화하는 사람이 되리라.

셀 수 없이 놓친 게 많은 것은 사실.

동시에 될 수 있는 것도 셀 수 없는 게 현실.

지금부터의 나는 내가 그리는대로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을 때,

비로소 숨을 틔운다.

후회도 고통도 없앨 수 없다.

어쩌면 평생 느끼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러려니 하는 마음,

괜찮다는 마음으로

끊어내고 도려내는 대신

어제와 오늘을 잇는다.

마찬가지로 오늘과 내일을 이어둔다.


by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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