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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조각
집앞 맛있는 만두 가게의
새우 만두는 한 팩에 6천원.
세 팩 사면 십팔만원.
피하지 못한 야근 끝에
숫자를 맞춰 만두를 포장하는 마음은,
육두문자와 칼춤이 난무한다.
더위를 먹는지
요즘은 쉬운 것도 괜찮은 것도 없다.
타노스 같은 마음에
앤트맨 같은 능력조차 없는
머글(일반인)은 서글플 따름.
겨울에 만두를 살 적에는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누가 나에게 버석버석한
사막 같은 마음을 내어주었는가.
메마른 마음에
쩍쩍 갈라지는 신경.
중앙선을 침범하는 미친 차처럼
위험하게 흔들리는 중.
할 수 있는 걸 하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는데,
여기는 어디고
앞으로 어디까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분명하게 끝난 건 초당옥수수.
잔잔하게 끝나가는 출근하지 않는 밤,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여름밤.
400GB를 향해 달려가는
핸드폰 사진 용량을
조금씩 백업해두는 것처럼.
번아웃이 온 것 같은 나도
여기저기에 조금씩 덜어본다.
메모리가 가득 차기 전에.
오늘은 강과 하늘과 산에,
시원한 아이스티에,
뜨거운 햇살 속에,
처음 지나는 고속도로에,
사연을 알 수 없는 소파에.
여행지에서 만나는 한 문장에.
“그날 나는
몇 가지 무의식적 시험을 통과하여,
삶이 주는 풍요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때 붙잡아줄
닻의 지위를 부여받았던 것 같다.”
(캐럴라인 냅, 『욕구들』중에서)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