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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조각
오로지 책을 위해 가방을 계속 샀다.
(올해는 두 개나 샀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용감한 병렬 독서인은
언제든 책을 읽고 싶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읽다가 겹쳐서
종이책과 전자책을 모두 읽는 날은
기쁨도 무거움도 두 배인 걸.
종이책에 이북리더기에
독서 용품까지 더하면
가방은 작아질 수 없지.
늘 들고 다니는 텀블러에
아직 더워 뺄 수 없는 손 선풍기에
이것저것 포함하면,
사회적으로 그것은
‘보부상’으로 불린다.
종이책에는 책갈피와 연필과
포스트잇플래그를,
전자책에는 이북 리더기와 거치대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챙겨야 하니까.
원래도 여기저기 끄적이는 걸 좋아하므로
독서 용품이 들어 있는 필통과
종이 독서를 위한 여분의 손수건은 늘 있다.
‘늘 그랬다’는 말은
어쩐지 부정의 의미가 강한데,
‘늘 있다’는 건 그 반대로 다가온다.
늘 있다. 늘 있다. 늘 있다.
해결책을 찾는 내가 늘 있다.
가치관을 지키려는 내가 늘 있다.
포기하지 않는 내가 늘 있다.
나를 먹이려는 내가 늘 있다.
나를 운동시키는 내가 늘 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내가 늘 있다.
타인에게서 나를 지키는 내가 늘 있다.
그 자명한 사실이 오늘의 나를 살게 한다.
여전히 견딜 수 없는 것과
견뎌야 하는 것 그리고
견디고 싶은 것을
모두 해내는 내가.
늘, 있다.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