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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 Sep 05. 2022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리플레이

일어나자마자 음악이 듣고 싶었다. 거실로 나가서 Moloko를 틀었더니 조조가 갑자기 작업방에서 달려 나왔다. ‘음악을 틀다니 웬일이야?’ 이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조조가 나를 음악에 관심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게 억울하다. 대단한 취향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는 음악을 즐기며 살아왔는데 말이지. 다만 둘이 같이 살게 되면서 조조가 우리집 방구석 디제이가 되다 보니, 굳이 따로 찾아서 들을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그냥 조조의 음악으로 충분했다.


대신 음식에 대해서는 내가 멋대로 마리아주 디제잉을 선보인다. 김치찜은 꼭 구운 재래김에 싸서 화이트 와인과 먹어야 하고, 오이와 파프리카를 다져 넣은 에그샌드위치와 맥주를 마시는 식이다. 장미향 로션, 하늘색 커튼, 파나마 게이샤 커피 원두, 오래된 두더지 인형… 둘의 공간은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서로가 오묘하게 버무려져 있다. 은근한 권유가 자주 오간다. 나의 본 조비 어때? 나의 뉴캐슬 맥주는 어때?



우아하게 바이닐을 다루시는 백발의 남사장님과 경쾌하게 테이블 사이를 누비시는 여사장님의 멋진 콤비 덕분일까. 리플레이는 단골들의 신청곡들이 늘 밀려있다. 취기에 올라타서 록 음악에 몸을 흔들고 이문세의 노래를 다 같이 열창하며 아주 먼 곳에서 시작된 파동처럼 일렁인다.


슬그머니 서로의 카드패를 흘끗 거리다가도  나중에는 카드가 모두 섞여버리는 것처럼. 생각보다 취향은 견고하지 않고 쉽게 묻어난다. 바이닐 펍에서 다른 이들의 애청곡을 잔뜩 묻히고 집으로 돌아오면 킁킁- 기분 좋은 음악 냄새를 맡게 된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어린 남자 시몽의 질문에 여주인공 폴이 그 질문을 가만히 되뇌는 말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대체로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브람스 연주회를 권유하려면 상대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먼저 조심스레 물어보곤 했단다.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묻는 건 그런 자신을 허락하겠냐는 물음과 다름없다.


음악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신청곡으로 묻곤 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장르 : mostly rock, pop, 가요

-볼륨 :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큼

-플레이 포맷 : only vinyl

-스피커 : JBL

-신청곡 : 가능


서울 마포구 상수동 331-15

02-336-1448

일요일 휴무


<JoJo’s comment>

오늘도 여지없이 해가 저물고 병이 도져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면, 상수역으로 가자. 강변북로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곧 리플레이가 나타난다. 들어가면 가장 먼저 좀처럼 보기 힘든 거대한 스피커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백발의 DJ 사장님께서 어릴 적부터 50년간 모아오신 LP들이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주로 rock 장르지만 컬렉션이 많은 만큼 pop, 가요 등 다양한 음반들도 준비되어 있다. 신청곡은 가능하지만 LP 컬렉션에 없는 곡은 플레이 되지 않으니 눈치껏 좋아하는 음악을 신청해 보자. 대부분의 바이닐 펍들이 손님들이 편안히 대화하도록 적당한 볼륨으로 음악을 플레이하지만 이곳은 볼륨에 타협이 없다. 매킨토시 앰프를 거쳐 2미터가 넘는 스피커에서 음악이 뿜어져 나온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사운드의 물리적인 힘까지 온몸으로 감상하는 느낌이 든다. 이곳의 주인공은 손님도 사장님도 아닌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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