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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Mar 25. 2024

선진국답게! 이젠 럭셔리로!

17 마일스(17 miles) 드라이브라고 혹시 들어보셨나요? 캘리포니아 몬트레이(Monterey) 바닷가를 따라 도는 유료입장 사설도로인데요 명문 골프장들이 도로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입니다. 도로 주변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골프장일지도 모르는 페블비치(Pebble Beach)도 있고 싸이프레스 포인트(Cypress Point), 스파이글라스 힐(Spyglass Hil), 더링스 앳 스패니시 베이(The Links at Spanish Bay), 몬트레이 페닌슐라(Monterey Peninsula), 포피힐스(Poppy Hills) 등 정말 하나같이 멋진 골프장들이 즐비합니다. 

https://youtu.be/nl36eGIRWT8

척박하고 거친 바닷바람을 지탱하느라 온몸을 비틀며 자란 싸이프러스(Cypress) 나무들을 보면 숨이 탁탁 막히기도 합니다. 싸이프러스 나무가 예전 로마시대에 십자가를 만들던 수종이라 그런지 아니면 묘지에 주로 심었던 나무라 그런지 느낌이 각별합니다. 몬트레이 바닷가 싸이프러스 나무들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17 마일스 드라이브는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곳이지만 골퍼라면 죽기 전에 꼭 둘러보시길 추천합니다.


미국의 럭셔리 퍼블릭 코스와 돈만으로는 가입이 불가능한 찐 명문 회원제 골프장에서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캐디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물론 반드시 캐디를 동반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평생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최고의 골프장인데 제대로 잘 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너무 당연할 것 같습니다. 


미국 럭셔리 코스에서 캐디를 쓴다는 건 거의 걸어서 플레이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캐디는 PGA대회처럼 백을 메게 되고 대부분 캐디는 백을 두 개까지 멜 수 있습니다. 캐디를 쓰려면 골프가방의 무게도 가볍게 만들어 24파운드, 약 11킬로그램 정도가 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카트백은 무게를 맞추기 위해서도 또 캐디가 메야 하기에 스탠드 골프백으로 바꿔서 나가야 하기도 합니다. 


페블비치의 캐디피는 원백(one bag) 일 때는 $155불(대략 20만 원) 투백(two bag) 일 때는 $210(28만 원/인당 14만 원) 그리고 미국이니까 팁은 1인당 $70-$100. 인당 10만 원 내외. 최소 금액입니다. 


반드시 줘야 하는 팁을 포함할 경우 일인당 캐디 관련 총비용은 투백 캐디일 경우 최소 24만 원, 원백일 경우 최소 30만 원이 듭니다.


그럼 페블비치 같은 전 세계 골퍼의 버킷리스트 골프장이 아닌 상대적으로 조금 덜 유명한 미국 골프장 캐디피는 얼마나 할까요?


대개는 더블백이 기본이고 인당 $100불 내외라고 보면 됩니다. 아주 싼 곳은 투백 인당 $55인 곳도 있지만 그런 곳은 대신 팁이 최소 $75불로 정해진 곳이니 결국 도진개진입니다. 일반적인 캐디팁은 최하 캐디피의 20% 이지만 캐디를 쓰면서 20%를 주는 골퍼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훨씬 더 많이 주죠. 결국 거의 20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 캐디는 1인당 4만 원 정도에 팁 혹은 그늘집에서 캐디에게 음료수를 권하며 1만 원 정도가 추가됩니다. 물론 팁에 훨씬 더 후한 골퍼도 있겠지만요.


단순 비교를 하면 미국 캐디피가 4배 비싸거나 한국 캐디피가 미국 캐디피의 25% 정도 수준이네요.


한국과 미국 캐디피의 상대적인 수준을 계산해 보고 싶어 졌습니다. 미국의 럭셔리 골프장에서 캐디를 쓰며 골프를 치는 사람의 소득 혹은 소비 수준을 미국 평균의 3배로 잡으면 연간 소득은 24만 불, 약 3억 2천만 원이 됩니다. 한국 골퍼의 소득 수준은 평균보다는 2배 더 높게 잡으면 7만 불, 약 9천만 원으로 잡아 보겠습니다.


소득이 9천만 원인 사람이 내는 캐디피 5만 원과 3억 2천만 원의 소득을 가진 골퍼가 캐디피로 지불하는 24만 원은 전체 소득에 비례해 차지하는 비율로 보면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골퍼들은 캐디피에서 만큼은 미국의 상위 소득자만큼의 지출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평균 골퍼가 부자나라 미국의 그것도 부유층 골퍼와 비슷한 소득대비 캐디피를 지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한국과 미국 캐디는 여러모로 다르지만 가장 다른 점은 캐디의 역할과 전문성인 것 같습니다.


미국 캐디 중에는 미니투어에서 뛰었거나 그렇지 않아도 골프를 잘 치는 캐디가 많습니다. 그리고 골프는 물론 골프장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골프장의 역사. 홀의 특징과 공략, 재미있는 골프 농담등으로 무장을 하고 플레이에게 진한 추억을 선사하는 역할을 넉넉하고 출중하게 합니다. 당연히 그린을 읽는 것 같은 캐디로서의 전문성도 뛰어납니다. 한마디로 수준이 높습니다. 더구나 캐디피에 버금가는 팁을 받기 때문에 친절하기도 하지만 같은 골퍼로서 공감 가는 시간을 보내게 되고 라운드를 마칠 때쯤엔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 캐디는 복불복이라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한 것 같습니다. 뭐든 너무 잘 해내는 캐디가 있는가 하면 정말 최소한의 역할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력이 일천한 캐디와 베테랑 캐디의 캐디피가 똑같다는 건 자본주의적으로 보건 상식으로 보건 정당성이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한국 캐디와 관련해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그린에서 캐디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실행입니다.

PGA 룰로 정확하게 점수를 기록하고 싶어 하는 골퍼 중에서도 캐디가 퍼팅 라인에 맞춰 공을 놓아주기를 바라는 골퍼가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로 경기에서 캐디와 선수가 그린 경사를 상의는 하지만 캐디가 공을 놓아주지는 않습니다. 룰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샷을 캐디가 대신해 주지 않는 것처럼 캐디가 퍼팅 라인에 맞춰 공을 그린 위에 놓는 행위도 누가 대신 해줘서는 안 됩니다.


캐디가 고용된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될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간혹 제일 멀리 온그린시킨 골퍼가 공을 집고 마크를 할 생각은 없이 캐디가 와서 다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반자를 배려한다면 최소한 공을 집어 캐디 쪽으로 가서 공을 닦아달라고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서 그린 경사도 읽고 캐디에게 어느 쪽이 더 좋은지를 물으면 됩니다. 


한국의 골프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래지 않아 버블이 터지면 그린피와 서비스, 골프장의 관리상태가 서로 따로 노는 기울어진 운동장도 정상화되겠죠. 하지만 버블과 상관없이 한국의 골프장이 더 많은 골퍼를 받고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강제캐디제도는 없어져야 합니다. 캐디를 쓸지 안 쓸지를 결정하는 건 골퍼의 선택이 돼야 합니다. 캐디라는 직업에 대한 규정과 기대, 임무도 새롭게 규정돼야 합니다. 끊임없이 주술처럼 반복되는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라는 자화자찬에 취하기엔 우리 골퍼들의 수준이 너무 높습니다. 


골프도 정상화가 돼야 합니다. 너무 늦지 않게. 아니 하루라도 빨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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