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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Jun 28. 2024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안녕하세요. 류캉입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한 손을 땅바닥에 놓고 그위로 흙을 쌓아 이글루 모양으로 만들고 다른 한 손으로 두들기며 '헌 집 새 집' 노래를 부른 후 손을 살며시 빼서 흙이 무너지지 않으면 작은 흙집 한 채가 완성되는 놀이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과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이 가난했던 시절 아이들의 놀이터는 땅이었습니다. 오징어게임이나 땅따먹기처럼 땅에 금을 긋고 하는 놀이도 많았습니다. 그 시절 소꿉놀이가 인간관계의 예행연습이었다면 땅에서 했던 놀이는 얼마 후 대한민국에 일어날 부동산의 미래를 보여주는 전조현상은 아니었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어이없지만 언뜻 일리도 있어 보이는 제 상상력에 저도 실소가 납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을 통과한 대한민국에서 예전 아이들의 '두껍아' 노랫말이 현실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헌 집을 주고 새 집을 받는 게 아니라 헌 집을 주면 새 집 두 개와 주기도 전부터 이사비용 플러스알파의 목돈까지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모두 즐거운 웃음꽃이 피었고... 네, 맞습니다. 재건축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재건축은 헌 집을 주고 돈을 더 써도 새 집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헌 집을 주면 새 집 두 개를 받았던 때도, 재건축 자체가 어려워진 지금도 이유와 원인은 있겠지만 오늘은 그 원인을 파헤쳐 지혜를 채굴하는 것 같은 해결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꿈같은 소망은 현실이 되고 또 현실이 되었던 꿈이 어느 날 와르르 무너지고... 그런 시간을 통과한 사람의 입장에서 골프라는 그중에서도 사회 전체로 보면 극히 작은 조각에 불과한 골프장의 미래가 어떨지 생각해 보았을 뿐입니다. 미래는 시간이 흐른 뒤의 현실이고 그 현실 속에서 저는 어떤 걸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본 최초의 골프장은 미국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퍼블릭 골프장이었습니다. 미국 중상류층 지역에 있는 고급 주택 한 채보다 작고 초라하고 낡고 화장실도 변변치 않은 클럽하우스가 인상적이었죠. 그러다 어느 날 회원제지만 회원이 아닌 일반 골퍼에게도 라운드 기회를 주는 세미 프라이빗 골프장을 갔는데 나름 멋지고 깔끔한 클럽하우스 시설에 놀라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IMF가 오기 직전 레이크사이드라는 골프장에서 한국에서의 첫 라운드를 시작했습니다. 클럽하우스에 도착하니 당황스럽더군요. 이런 곳에서 나 같은 사람이 골프를 쳐도 되는 건지... 클럽하우스가 이 정도라면 이런 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고 어색하고 신기하고 살짝 주눅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다 IMF가 찾아왔고 골프도 멈추었습니다. 추락이 깊을수록 반등도 가팔랐고 1999년 저의 골프도 날개를 펴고 다시 날아올랐습니다. 자유 CC를 자주 다녔고 한국 골프장과 캐디, 클럽하우스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 새로 개장한 포천아도니스 CC에서 대형 작품들이 전시된 갤러리 같은 클럽하우스를 처음 접했습니다. 레이크사이드에서 받았던 충격을 소환해 코끼리 코를 만들고 빙글빙글 돌리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골프장의 클럽하우스가 이럴 수 있지? 하지만 이번에는 주눅이 들기보다는 마치 나 자신의 우아함이 내가 서있는 이 클럽하우스를 통해 보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럭셔리 클럽하우스가 대단하기는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일본의 고급 골프클럽의 클럽하우스에서도 미국의 최고급 럭셔리 리조트 코스 클럽하우스에서도 최소한 클럽하우스 만으로는 주눅이 들지 않더군요. 그런데 좋다는 골프장의 정말 대단한 클럽하우스를 이용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만족감은 점점 옅어졌습니다. 언제부터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화려한 럭셔리 클럽하우스보다는 정갈하고 편안한 클럽하우스가 좋아진 게 꽤 오래전부터였습니다. 


클럽하우스에 대한 제 취향은 왜 바뀌었을까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클럽하우스를 이용하는 시간이 짧아서 일까요? 아니면 클럽하우스에서 하는 일들이 골프의 핵심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라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클럽하우스의 훌륭한 수준을 쫓아가지 못하는 제 수준 문제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그린피에 포함되었을 클럽하우스를 짓고 유지하는데 드는 총비용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왠지 너무 클 것 같아서 일까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한국 골프장들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상태와는 전혀 비례적이지 않은 이유로 헌 집 한 채를 주고 새 집 열 채를 받는 황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미 끝났어야 했는데 촛불은 꺼지기 직전 더 크게 타오르고 빛은 어둠의 끝에서 가장 밝은 것처럼 한국 골프장들은 하늘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요즘은 워낙 한국에서의 라운드를 줄여 클럽하우스에 들어서는 기회도 적지만 가끔 클럽하우스에 들어설 때면 그 클럽하우스의 30년 후 미래 모습을 그려봅니다. 한 때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초라해진 공간이 뿜어내는 분위기와 자세히 구석구석 살펴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시간이 늙어가며 흘린 눈물 자국들. 마치 당시에는 최신 TV였지만 지금 보면 테두리가 너무 두꺼워 촌스러워 보이는 TV를 바꿀 여력이 없어 그대로 유지하는 것 같은 예전엔 최신형이라 이젠 오히려 더 안 어울리는 상실감도 보입니다.  


어떤 건축물도 아무리 잘 지어진 건물도 관리가 필요합니다. 크고 호화롭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완벽한 원일수록 조금만 찌그러져도 눈에 잘 띕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워너비 리빙 플레이스인 강남에서 진행되던 재건축도 포기 혹은 취소가 된다는 뉴스가 스쳐가는 지금. 저는 골프장 클럽하우스가 지하갱도의 카나리아의 역할을 할지 모른다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듭니다.


제발 모든 골프장이 하나같이 명문 클럽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길 바랍니다. 모든 골프장이 명문 골프장인 나라는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골프장에도 진정한 차별화가 생겨야 합니다. 상류층을 위한 일부 명문과 고급 리조트 골프장, 중산층을 위한 효율적인 골프장, 그리고 젊은 입문자와 소득이 넉넉하지 않은 층과 은퇴자를 위한 실속형 골프장으로 재편되길 바랍니다. 


아마 그 시작은 골프장의 클럽하우스에서부터 시작될 것이고 그게 맞는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https://youtu.be/bG_Y9ifi2q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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