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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알쫑알 대는 사람
Jun 14. 2023
전혀 기대하지 못한 순간 날아온 소식에 순간적으로 멍한 상태다. 상상도 못 했었고, 기대는 더더욱 할 수 없었던 연락. 정확히는 올 수 없는 연락이었다. 평생 한 번도 서로를 알았던 적이 없던 것 같은 사이로 지낸 지가 벌써 수년째이니까. 보통 그렇다고들 하더라. 연말이나 새해, 생일이면 한 몇 년 간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연락할 명분이 생긴다고. 그래서일까? 생일을 온전히 누리는 내게 온 메시지도.
"생일 축하해."
메신저 상이지만 맞춤법까지 '딱' 맞춰 쓴 것만 봐도 그 사람답다. 이미 오래전부터 비어 있던 대화방에 덩그러니 5글자가 울린다. 마음이라도 가다듬고 열었으면 좋겠다 싶지만, 이미 잔망스러운 손가락은 망설일 틈도 없이 그의 메시지를 읽어버리고 난 후였다.
"잘 지내지? 아픈데 없지?"
그저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있는 내게 상대방은 말을 이어간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으로 수년간 지냈고, 헤어지고 또 수년이 지났으니 궁금한 것들이 많을 법도 하다. 나도 같았으니까. 상대방을 확인하자마자, 잘 지내냐 등 묻고 싶은 것들이 수십 가지는 떠오르는데 손가락은 무겁기 만한 그런 느낌. 너도 같은 느낌이겠지, 뭐. 여전히 답이 없는 나를 향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것도 변함없다. 일방적으로 화내고 입을 ‘꾹’ 다물어 버리고는 고개를 돌려 버리는 그때의 나와 그런 나를 붙들고는 ‘조곤조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천천히 설명하던 그때의 너. 사람은 잘 안 변한다던 어른들 말씀은 정말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싶다.
"최근에 결혼했어."
때마침 적절하게 ‘아’ 하는 작은 탄성이 나오고 만다. 순간적으로 오묘한 느낌은 설명할 길이 없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 만한 느낌인지, 친구한테 물어보리라.
"내가 결혼 선배니까, 나중에 내가 결혼 후기 들려줄게."
이제야 할 말이 생각나기 시작하는데, 여전히 손가락은 무겁기만 하다. 보통 이런 순간에 다른 사람들은 어떤 얘기를 주고받을까 하는 궁금증에 잠시 생각에 빠졌는데, 상대방은 미리 준비한 건지 이야기를 쏟아낸다.
“밥 잘 챙겨 먹고, 술 마신다고 까불지 말고!”
응?! 이건 또 무슨 전개인지 영문도 모른 채, 잔소리를 듣는다. 아무래도 작정했나 보다.
“건강하게 잘 지내.”
그 시절, 매일 같이 듣던 잔소리까지 으레 늘어놓고는 대화를 마치는 그다. 잔소리가 괘씸해서 잠시 답장을 안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잘 지내고 있다는 답장을 적어 내려간다.
“생일 축하해 줘서 고마워. 결혼 축하해. 좋은 분 만났을 것 같아. 건강하고, 행복해!”
숨도 안 쉬고 답장을 보내본다. 그도 그였고, 나도 나였다. 그는 그의 방식으로, 나는 나의 방식으로 안부를 전한다.
서로가 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안부. 각자의 방식으로 잘 지내면 됐고, 또 잘 지내길 바라는 응원.
이후 얘기를 들은 절친은 저런 연락을 뭐 하려 하는 거냐며 '질색 팔색' 했다. 의도가 뭐냐부터 시작해서, 축의금 달라는 거냐며. 그러고 보니, 축의금을 원한 건데 내가 눈치가 없었던 건가 하며 잠깐 고민하는 나를 미친 듯이 째려보는 친구를 향해 얘기했다. 그 사람은 그저 본인은 행복하게 잘 지내니까, 너도 행복하게 잘 지내라며 진정한 안부를 전해준 거라고. 그렇게 오랜 친구였던 서로가 서로의 방식으로 각자 잘 살아가라며 완벽한 이별을 고한 거라고. 이 정도면 충분한 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