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다 Jan 02. 2024

새해 흙길을 걸으며




 "꽃길만 걸으세요."

언제부터인가 효도 선물에 즐겨 쓰였던 문구이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으니 이제 꽃길만 걸으라는 뜻이겠지. '꽃길'만 보장된 미래가 있다면 좋으련만, 인생이 그렇게 쉽지 않다. 이제 좀 살만하다 싶으면 모퉁이를 돌아 복병이 나타나듯 슬픔과 고통이 휩쓸고 지나간다. 크고 작은 고비를 넘기면 선심을 쓰듯 작은 기쁨과 소박한 평화가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평온함에 익숙해질 때쯤 인생은 또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몸이 아프거나 외롭거나. 도무지 심심할 새가 없다.


 해맞이를 하러 간 지 몇 년 지난 것 같다. 동네가 아닌 먼 곳으로 해맞이를 하러 떠난 것이 언제였던가. 결혼 전 친구와 함께 갔던 버스 일출 여행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단톡방과 블로그에서 해맞이 사진들이 여기저기 올라오자, 동네 산책이라도 하면서 이미 훤하게 뜬 새 해를 맞이해 보자고 슬그머니 일어섰다. 


강변을 따라 눈부시게 비치는 새해 첫 아침의 햇살. 해가 어디 가서 목욕하고 온 것도 아니고 분명 어제와 같은 해인데, 우리는 새해의 일출을 기대한다. 해를 보며 간절히 원하는 소원을 빌기도 하고 가족의 건강과 무탈함을 기원한다. 설날에 떡국을 먹고 추석에 송편을 먹고 달맞이를 하는 것처럼, 신년의 해맞이는 이제 세시 풍속처럼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유래를 찾아보니 연오랑세오녀의 전설, 일본 문화의 잔재라는 말도 있고 드라마의 유행에 힘입은 관광산업 때문이라고도 한다. 매일매일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현실의 부침을 잠시 잊고 새로운 한 해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신년 해맞이에 담겨 있을 것이다. 특히나 지난해에 힘든 일이 많았던 사람들은 새해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마음이 남다르지 않을까. 이제 '고통 끝, 행복 시작'이면 좋겠다고.



  포장된 길을 걷기보다 흙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이름 모를 잡초들이 서리를 맞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고 금색으로 시든 풀들이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포근하게 대지를 감싸주는 새해의 아침. 내가 가는 길이 꽃길이나 평탄한 아스팔트 길은 아닐지라도 내 앞에 주어진 길을 또박또박 걸어가야겠다. 작은 위안을 주는 부드러운 흙길을 걸으며 새해의 계획을 세워보는 마음이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올챙이 시절을 떠올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