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다 Dec 17. 2023

올챙이 시절을 떠올리며

어쩌면 나는 부모의 행동을 답습하고 있을까




15 년 전, 아이를 먼저 키운 선배 엄마들이 그랬다. 지금은 몸이 힘들지만 나중에는 몸은 편해지는데 마음이 힘들다고. 그 시절에는 그 말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데, 겪고 보니 알 것 같다. 마음이 힘들다는 게 어떤 것인지.


큰애와 손도 잡고 토닥토닥하며 잘 지내다가도 며칠도 지나지 않아 시베리아 냉기후가 돌면서 말도 안 섞고 지내는 패턴의 반복. 이것이 어느 집이나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딸의 일반적인 생활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시험기간을 앞두고는 더욱 첨예한 대립이 생긴다. 될 수 있으면 안 건드리고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놈의 '욱'하는 성질을 어쩌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러 버렸다. 남들에게는 친절하고 다정하게 말하면서 정작 우리 가족들에게는 나의 본성을 감추지 못한다.



특히 예민한 큰 아이에 대해서는 늘 걱정이 앞선다. 친구가 두 명쯤 있지만 밖에서 만나는 것을 싫어해서 방학 동안 집에만 있는 큰애가 나중에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미리부터 염려스럽다. 말도 잘 안 하고 표현을 못 하는데 저래서 직장 생활이나 하겠나 싶다. 그래도 필요하면 다 알아서 하겠지만. 그러고 보면 나도 사춘기 때 무척 예민했다(지금도 그렇지만). 그래도 어쨌든 직장 생활 잘(?) 하고 있잖은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가장 최근에 부딪친 일은 방 청소 때문이었다. 큰애의 방은 그야말로 돼지우리가 따로 없을 지경인데 방바닥과 침대에 여백이 없을 정도로 어지럽다. 다른 사람이 자기 방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해서 청소를 잘 못해준다. 전에는 그래도 아주 가끔 들어가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해줬는데, 방바닥이 비어있으면 안정이 안 된다면서 다시 흩트려버리는 것이었다. 다 쓴 참고서도 안 버리고 모아둔다. 아빠를 닮아서 뭘 버리는 걸 싫어한다. 얼마 전에는 저 상태에서 공부가 되겠나 싶어서 학원 갔을 때 방을 치웠는데, 오자마자 히스테리를 부리며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의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빵을 먹고 점심도 먹지 않고 학원에 갔으면서 저녁도 굶는 것이었다. 화가 나면 단식 투쟁처럼 밥을 먹지 않는 것이 큰아이의 무기였다. 작은 애를 시켜서 엄마 없으니 밥 먹으라고 해도 결국 안 먹었고, 나만 안절부절 애가 탔다. 나중에 비슷하게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물어보니 내가 잘못했다고, 아이의 방에는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한다. 물론 엄마와 아이가 대화로 푼다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아이가 기분이 좋을 때 다시 한번 얘기를 해 봐야겠다.


작은 애는 자기 일은 알아서 잘 하는 편이지만, 조목조목 따지고 받아치는 말에 쉽게 화가 나거나 정나미가 떨어진다. 내가 잔소리를 하고 언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화낸다고 하고, 절대 흥분하지 않고 엄마 열받게 만드는 선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로 아이를 누르려고 심한 말을 하고선 돌아서서 후회한다. 내가 먼저 사과하긴 하지만. 작은 애는 살짝 여우과라 애교 있는 말도 하고 부딪치는 일이 빈번하지는 않다. 보통 중2치고는 반항적이지도 않고 모범생인 편이라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이들이 잘 하면 잔소리할 일이 없지. 시험기간인데 공부 안 하고 휴대폰만 보고 낄낄거리고 밥을 한 시간 넘게 먹으니 잔소리 안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고, 늘 자신을 정당화시켰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점점 기분 나쁜 잔소리가 늘어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 잔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행동을 바꾸면 모르겠는데, 효과도 없는 잔소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순간, 싫어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지금 내가 그대로 따라 하는 것 같다는 깨달음이 스쳐갔다. 아버지의 끊임없는 잔소리, 어머니의 때로는 무심하고 냉정한 말투까지. 


그때 내가 아버지의 잔소리를 얼마나 진저리 나게 싫어하고 미워했던가. 그런데 싫어했던 그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니.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부모님도 지금 나처럼 힘드셨겠구나. 외벌이 교사, 없는 형편에 자식들은 주렁주렁. 몸은 아프고 일은 재미없고 멀리 버스 타고 출퇴근하면서 술 마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을 것이다. 쟤가 뭐가 되려고 저렇게 공부도 안 하고 맨날 헛짓만 하나 싶었겠지. 직장 생활도 잘 못하고 시집도 못 가고, 밤에 잠은 안 자고 늘 왔다 갔다 커피만 마시고 다니니 신경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겠다.


이제 나도 늙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참 서글프다. 부모님의 싫은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최소한의 잔소리인데, 아이들에게는 꼰대짓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서.

무엇보다 내가 그때 아버지를 바라본 그 시선으로 지금 아이들이 나를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슬퍼진다.


내가 이런다고 아이들이 달라지나. 어린 시절 내가 그랬듯이 지금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 저래?" 하겠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거리'일 것이다. 자녀에게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심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

늘 하는 말이지만, 지 인생 지가 사는 거다. 부모가 애달파하고 안달복달해 봐야 아이들은 부모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부모로서 내 할 일만 성실하게 하자고 오늘도 같은 결론을 내리며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볶음밥 우습게 보지 마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