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반찬이 없을 때 제일 만만하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한 그릇 요리로 볶음밥만 한 게 없다. 볶음밥에 넣을 재료가 별로 없다고 해도 냉장고를 털어 두세 가지 야채나 김치만 넣어도 기본 맛 보장되는 볶음밥이 완성된다. 평소 편식이 심한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채소 먹이기 좋은 음식으로 볶음밥과 김밥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김밥은 그래도 재료가 풍성하게 들어가야 보기도 좋고 맛있어서 제대로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볶음밥은 재료 몇 가지 썰어서 볶고 간하면 뚝딱 만들 수 있으니 가히 최고라 할 만하다.
그뿐인가, 재료에 따라 변신의 귀재가 되기도 한다. 볶음밥의 기본 야채 볶음밥, 김치를 넣은 김치볶음밥, 파 기름을 내서 만들면 의외로 맛있는 계란 볶음밥, 새우가 들어간 새우볶음밥, 그래도 고기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불고기 볶음밥, 먹다 남은 지코바 양념치킨 넣고 볶은 치킨 볶음밥, 짜장 소스 올라간 중식 스타일 볶음밥, 계란 이불 덮은 오므라이스 등등 주재료에 따라 무한 변신이 가능하다. 볶음밥을 만들어 그릇에 예쁘게 담고, 화룡점정으로 반숙 계란 프라이 하나 올리면 완벽한 요리로 업그레이드된다. 기름에 볶는 냄새만 맡아도 아이들 식욕을 돋우고 냉장고의 야채 정리하기도 좋으며 만들기 또한 간단하니 주부에게는 참 감사한 음식이다.
볶음밥을 만드는 데는 간도 중요하지만, 뭉쳐진 밥이 없도록 잘 저어서 볶아주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야채는 작게, 햄은 크게 보이는 것을 아이들은 좋아하니, 재료에 따라 써는 크기를 달리해도 좋다. 요리 블로거는 볶음밥을 만들 때 미리 파 기름을 내거나 간장을 약불에 바글바글 끓여 맛을 내기도 하던데, 나는 그런 과정을 보통 생략한다. 그래도 맛있다.
남자들은 볶음밥을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늦게 결혼한 어떤 남자가 '우리 와이프는 맨날 볶음밥만 해줘'하며 볼멘소리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맞벌이 가정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 뾰족해져서, 볶음밥이라도 자주 해주는 것이 어디인가 생각했다. 나도 남편에게 그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남편이 우리 와이프는 맨날 된장찌개에 생선구이만 해준다고 자신의 친구 앞에서 말하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은, 남편의 베프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술 마시고 난 다음날 내가 간단하게 차린 밥상을 앞에 둔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지금이면 어림도 없는 일인데, 그때는 결혼한 지 몇 년 안 돼서 본색을 숨기고 착한 아내 코스프레를 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남편 친구의 반응은 된장찌개가 너무 맛있다며 장사해도 되겠다는 것이었다. 친구 집에서 술 마시고 자고 가려면 이 정도의 예의(아부)는 갖춰야 되지 않겠나.
좌우지간 볶음밥을 한 번이라도 만들어본 남자들은 알겠지만, 채소를 균일하게 잘게 다지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물론 다지기 도구나 푸드 프로세서의 도움(요즘은 장비 빨이라 하더라)을 받아도 좋지만, 나중에 설거지가 귀찮다는 단점이 있다. 다지기로 하는 것보다 식재료의 식감이나 가족의 선호를 고려해 가장 적합한 입자의 크기를 선택하는 데는 여자의 섬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보통 남자가 만든 볶음밥보다 여자가 만든 볶음밥 재료의 입자 크기가 더 작아 소화도 쉽고 밥과 잘 어우러진다. 이것은 양성평등에 위배되는 사고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길, 우리 집 남편에게만 해당되는 것일 수도 있다. 요즘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잘 생긴 남자 연예인이 요리도 잘하고 다재다능함을 자랑하던데, 일부의 얘기인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중년 남자들은 어머니들이 오냐오냐 키우신 것인지 아내분들이 너무 착해서 가사 분담을 안 한 것인지, 세탁기도 못 돌리고 요리라곤 라면밖에 못 끓이는 남자도 있는 것으로 안다. 장담컨대 남편도 자꾸 시켜야 는다. 주방 보조도 시키고 차근차근 가르치면 찌개, 제육볶음 등 몇 가지 요리는 쉽게 할 수 있다. 말이 자꾸 옆으로 새는데, 이게 바로 에세이의 참맛이라고 지금은 내 맘대로 생각하고 싶다.
아무튼 볶음밥은 간단한 듯하지만 영양이 풍부한 한 그릇 음식이니 볶음밥을 찬밥 대접하지 말라는 말이다. 오늘도 정성 가득한 볶음밥 한 그릇 만들어준 아내 또는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볶음밥을 먹는 자에겐 복이 있을지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