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고'인데 나는 왜 만사가 귀찮을까
얼마 전에 벌써 첫눈이 내렸다. 눈이 잘 오지 않는 지역이라 밤새 살짝 눈이 왔다가 아침이 되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직 은행잎과 단풍잎이 많이 남아있는 남쪽 지방인데도, 찬 바람은 시리고 손발이 오그라들어 핫팩을 찾고 퇴근 후 산책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겨울에도 안경을 닦으며 씩씩하게 산책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안락한 난로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고양이가 되었다. 처음 겪는 추위도 아닌데, 매년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정녕 엄살이 심한 막내 기질 때문일까. 십 대 때는 상상도 못하던 나이까지 살았는데도 11월은 늘 춥고 시리다. 침대 위에 전기매트를 깔고 군것질을 하며 영화 보기 딱 좋은, 그래서 뱃살이 포실포실 불러오는 계절이 오고야 말았다. 다행히도 내복을 꺼내 입지 않았는데 감기도 안 걸렸다는 사실이 상당히 고무적이긴 하다. 몇 년 전만 해도 감기를 달고 살아서 한 달에 한 번씩 걸린 적도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나는 더 건강해진 것 같다. 마스크 덕분도 있겠지만, 그만큼 잘 쉬어주고 충분한 수면 덕분인 것 같다.
아무튼 추우려면 아예 팍 춥던지, 조금 춥다가 따뜻하다가 날씨가 종잡을 수 없이 왔다 갔다 하는 환절기가 가장 힘들다. 몸도 본격적인 추위가 몰려오기 전에 나름 적응을 하려고 그런가 보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 아니 일어나도 움직이기가 싫어서 휴대폰 들고 뒤척대다 급하게 씻은 후 헐레벌떡 뛰어나간다. 퇴근 후엔 저녁만 먹고 나면 컴퓨터 하거나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에 빠지고 만다. 초저녁에 자기 시작해서 11시나 12시쯤 일어나 밀린 살림하고 다시 잘 때도 있다. 아직 겨울도 오지 않았는데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려고 준비하는 것 같다.
놀러 다니기 좋아하는 내가 주말에도 귀찮아서 집에 오래 머무니 11월에 완독한 책이 7권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실 새로운 장르의 글에 도전하기 위해 읽은 것인데, 책을 읽는다고 글이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책을 한 권 밖에 안 읽었던 달에 글을 더 많이 썼다. 늘 소소한 글감은 많은데 긴 글이 나오지 않아 아우성치고 있다. 추워서, 추위에 약해서라고 끊임없이 핑계를 대면서.
이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은 글이 나오지 않고 자꾸 핑곗거리를 찾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저 멀리 섬처럼 떠있는 두세 가지 걱정거리 때문이었다. 그래서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계속 주전부리를 찾고 정작 해야 할 일은 회피하고 자신과의 약속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대로 주말이 지나가는 것은 싫어서 일기 같은 '아무 말' 대잔치로 마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