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에 복숭아를 사러 나갔다
자녀 스트레스는 음식으로 풀어요
스트레스가 쌓일 때 독서를 하거나 산책, 운동으로 해소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다못해 친구와 만나 수다로 푼다면 정이라도 쌓일 텐데 나는 달팽이처럼 안으로 움츠러든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영화를 보면서 맛있는 것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것이 언젠가부터의 루틴이 되었다. 그마저도 하기 싫을 때는 가만히 누워서 멍 때리다 잠이 든다. 그렇게 며칠 지나면 좀 가벼워져야 할 텐데 후유증이 며칠 간다. 많이 먹으니 몸이 무거워지고 그러니 더 움직이기 싫어지고 무릎과 어깨가 아프고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한동안 이 정도면 그럭저럭 살만하다 싶었다. 나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고 지금이 딱 좋다고 큰소리쳤다. 마치 그 말을 질투의 신이 엿듣기라도 한 것일까. 좀 살만하다 싶으면 뒤통수를 후려치는 고통과 번민들. 인생이 그런 거지.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진짜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시계 추처럼 오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어쩌면 별스럽게 큰 불행이 닥친 것도 아니다. 예민한 성격이라 더 깊이 받아들였을 뿐. 가족이 아픈 것도 아니고 돈을 다 날려 길바닥에 나앉게 된 것도 아니다. 단지 고2인 아이가 공부를 안 하고 학원을 다 끊는다고 난리 칠 뿐이다. 그 정도야 뭐 대수겠는가.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이 아빠가 그렇다. 아이를 너무나 존중하는 남편은 자기가 알아서 혼자 공부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한다. 혼자서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아이라면 내가 왜 이러겠는가.
원래 전조증상은 있었다. 학교 담임교사에게 아이가 지각한다고 내신에도 불리할 수 있다고 전화를 두어 번 받았고, 학원 선생님께는 더 자주 전화를 받았다. 전부터 학원 끊고 싶다고 칭얼대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거나 단호하게 잘랐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을, 돈 굳었다고 좋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선뜻 받아들일 수 없어서 아이를 닦달하고 속을 태웠다.
공부라는 건 아무리 부모가 시키려고 해도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아이가 자신이 할 일을 성실하게 하지 않고 방은 발 디딜 곳도 없이 더럽게 해놓고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한다. 가끔 독서실을 갈 뿐, 친구도 없고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 집순이다.
아이를 생각하면 갑갑할 때가 많았는데, 이번 일까지 겹쳐서 안 그래도 우울질이며 회피형인 나는 또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갈까 생각했다. 조금만 깊은 수영장이 나오면 죽을까 봐 겁이 나 버둥거리는 주제에 무슨 자살 기도를 하겠는가. 스쳐 지나가는 충동일 뿐. 그래도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것 같았다. 마음 비우기, 내려놓기가 이리 힘들 줄이야...
엄마에게 시위하듯 주말 내내 식음을 전폐하고 버티던 아이(편의점에서 사 먹었을지도 모른다)가 안 먹은 도시락을 내가 저녁에 데워서 꾸역꾸역 먹다가 반도 못 먹고 버렸다. 계란 프라이를 올렸는데도 맛이 없었다. 100ml쯤 남은 와인병을 비웠다. 김치볶음밥과 와인은 너무 안 어울렸다.
책을 펼쳤다가 바로 덮고 유튜브 보다가 갑자기 복숭아에 꽂혀서 집 앞 마트에 다녀왔다. 좀 있으면 복숭아 철도 지나갈 텐데 지금 많이 먹어두고픈 욕심이 일었다. 신선이 먹는 과일인 복숭아를 먹으면 모든 시름이 잊힐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맛있는 것을 먹는 순간만은 기분이 좋아지는 형이하학적인 사람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안 생긴다면서 식탐은 어찌나 샘솟는지 모르겠다. 먹고 싶은 것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냉장고 문을 수시로 열어젖히며 먹을 것이 없다고 한숨을 쉬며 투덜거리는 둘째의 간식도 챙길 겸 집을 나섰다. 처서가 지나더니 제법 밤바람이 시원해졌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것 같은 이 지긋지긋한 여름의 열기처럼 자식 때문에 속 끓이는 이 시기도 언젠간 지나가겠지. 그러면 그때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모든 게 좋아졌노라고 어디선가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죽고싶어도복숭아는먹고싶어 #저애는내애가아니라옆집애다 #이또한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