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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Sep 19. 2022

겨우 2분 기다림에 밥 맛이 달라지잖아요. 말도 그렇습니다.

M은 뜸을 들였다. 

"음......"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뜸을 엑설런트 하게 들인다는 말이 아니라, 말을 이어갈 때면 그때마다 곧잘 허밍에 가까운 음을 뱉었다. 


"답답해도 기다려주세요. 이거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을 굉장히 신뢰한다는 의미거든요."


M은 가만히 기다려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제가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제 말이 절로 무르익도록, 따뜻한 김을 내뿜으며 고실고실하게 만족스러운 말을 뱉을 수 있도록. 동동거리는 것은 발짓이 아니라고 했다. 눈빛이 동동거린단다. 동동거리는 눈빛에 못 이겨 뱉은 설익은 말이 상대와 자기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 같다고. 


M은 사실 침묵을 썩 잘 견디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와 있을 때도 쫑알대는 건 늘 M이었으니까. 쓸데없는 말을 뱉어버린 것을 후회하며 입을 때리는 것도 M이었고. M은 말이라는 걸 익기 전에 입 밖으로 뱉어버리면 그것만큼 추태인 것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늘 품격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M은 침묵과 추태 사이에서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M은 S와 긴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둘이 길게 대화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편하면서 불편했다고 말했다. 

"왜? S는 단단한 사람이라고 했잖아. 넌 단단한 사람 앞에서 너를 보여주는 걸 꺼리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화 이후에 M은 이제 자기를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소명하는 일에 지쳤어. 그리고 나와 대화하는 누구도 그것에 힘 쓰지 않아. 불공평해."


M은 좋아할 자신이 있는 사람에게만 자신을 보여주곤 했다.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때, 온전히 마음을 줄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좋아할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여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굳이 자신의 체력을 써가며 모두에게 솔직할 필요는 없지 않냐며. 


"그래서 S는 뜸을 들일 줄 모르는 사람이란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사실 S는 오히려 자기보다 뜸들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달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하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없다고 말했다. 그 여유가 너무 부럽다고.


"뭐가 문제야 그러면."

"나."

M은 자신이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태어나기를 뜸과는 멀리 떨어져 태어나서, 이를 가까이하려고 하니 더 초조해지는 것 같다고. 그래서 소명하는 것이 힘드나, 동시에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는 것도 너무 싫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고통받는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단어 하나로 설명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간단할 텐데. 아무도 오해하지 않고, 아무도 해석하는데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되겠지. 어려워하지도 않을 거고. 나도 말하기에 좋을 것 같아. 어떻게 전달해야 내가 생각하는 나를 전달할 수 있을지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잖아. 지금은 머리가 너무 아픈걸..."


나는 M이 초조해하지 않았으면, 싶었다. 오해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두고, 너를 제대로 알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너를 표명하라고 이야기했다. 모든 사람에게 너를 설명할 필요는 없지 않아?


M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네가 좋아. 네가 5분을 뜸 들인다고 해도 그 시간을 나의 해석으로 채우며 기다리고 싶은 마음도 없어. 순수한 진공의 5분으로 너를 기다릴 거야. 네가 온전히 너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걸 내가 말끔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M은 바로 그게 필요한 거라고 말했다. 아무런 해석 없는 진공의 기다림. 그리고 진심.




S는 밥을 짓다 뜸을 들이는 동안,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따뜻한 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 뜨거워."

다시 손을 거두며 약간 젖은 손을 허리춤에 닦았다. 허공에 손을 몇 번 탈탈 털고 입으로 몇 번 불었다.


S는 M과의 대화를 생각했다. 

'음......'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M이 자꾸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뇌를 꼼지락거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뒤죽박죽인 뇌에서 자신을 꺼내어 보여주려는데, 설익은 것들이 툭툭 튀어나올 때마다 곧바로 후회하는 것 같았다. 사실인지는 몰라도. 


S는 자신이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M이 뱉었던 말을 다 기억하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일이면 더 모락모락 더 피어날 사람이니까. 그래서 계속해서 익어갈 사람이니까.


'너 이렇다고 했었잖아'

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일관성 있게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눈을 가졌나. 혹은 그냥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일지도. 


S는 사실 단순히 표현에 서툰 사람이었다. M과 다를 바 없이, 소명하는 것이 늘 어려웠던 사람이었다. 그는 해결책으로 신비주의를 선택하는 듯싶었다. 일부러 말을 안 하는 것은 아니나, 많은 말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대화가 겉돈다고 하더라도 그 깊이에 대해 욕심내지 않았다. 


S는 M이 자신의 어릴 적 모습 같다고 여겼다. 3년 뒤의 너는 꼭 나같이 입을 다물지 않을까 걱정했다. S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M이 자신처럼 입을 다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M이 가지고 있는 M만의 반짝이는 안광을 둔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M이 바라보는 세상이 늘 아름답기를. 그렇게 착각이라도 할 수 있도록 곁에 머물며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S는 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나 그 영화 봤어."

"그래? 어땠어?"

"음......"

"..."

"음......"

"..."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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