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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마음 Oct 28. 2022

하루에 묻은 사랑

단 하루로 당신을 표현한다면 어느날을 고를 텐가요.

당신은 모를 수도 있지만, 당신한테 고마운 것들이 참 많아. 덕분에 좋은 영향을 많이 받곤 하거든.

<라라랜드>를 보고 아직까지 기억하는 대사들이 참 많은데,

그 중에서 지금은 이게 가장 꺼내고 싶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 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주니까."

나도 당신의 열정에 참 끌렸어. 당신이 타오르는 걸 옆에서 보고 있으면, 나도 같이 타오를 수 있을 것 같아서 계속 곁에 있고 싶더라. 불이 옮겨붙지 않더라도 그냥 그 열기만으로도 나는 행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지금도 다를 건 없지. 당신이 곧 어디론가 튀어나가버릴 것처럼 흥분해서는, 쏟아내듯 이야기하던 영화들을 내가 보고 있으니까.

당신의 이야기는 재미있어. 나랑 세상을 읽는 결이 비슷한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당신이 별 다섯 개를 달아둔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좋더라. 당신은 영화를 참 좋아하니까. 당신에게 좋은 영화를 볼 줄 아는 사람이니까. 그게 곧 나에게도 좋은 영화이곤 했으니까.

나한테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었었지. 나는 사람이야기가 좋다고 답했어.

사람, 사랑.

나라는 사람이 사랑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아서 늘 그런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것 같아. 원래 등잔 밑이 가장 어둡잖아. 나는 나를 제일 잘 알아. 그렇게 때문에 나에 대해 가장 잘 모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 이렇게 말하면 보통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다시 한 번만 설명해달라고 나에게 물어오는데. 당신은 안 그랬어. 그냥 그렇구나.

낯선 반응에 당신이 괘씸하려나 싶었는데, 그보다는 기분이 말끔했어.

자연스러웠어.

내가 궁금했어? 내가 당신에게 나를 설명하고 싶었던만큼 내가 궁금했어? 내가 당신을 궁금해하는만큼 내가 궁금했으려나?

당신이 내 말을 듣고 추천해준 영화를 최근에 봤어. 꽤 우울하더라. 우울한 영화라고 당신에게 경고를 받았음에도 나는 우울한 날에 그 영화를 틀어야만 했어.

우울한 날이었어.

그 영화를 보면서는 고독했어. 고독한 이야기가 맞았어.

억압된 세 여성의 이야기였어. 삶을 짓누르는 텁텁한 공기가 그 영화에 담긴 24시간이 채 안 되는 허구의 이야기에 농도짙게 깔려있었어. 영화를 보면서 들이쉬는 숨에서 수증기 알갱이가 느껴지는 것 같았어. 기술적으로도 참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영화였지만, 세 여성의 삶이 나의 고독과 겹쳐보이는 순간에 나는 고통스러워했어.

나 친구도 많고, 그들과 관계도 참 원만해. 관계 갈등으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주변에서는 오히려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야.

그런데 나 가끔 우주에 혼자 남은 것 같아. 가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것 같아. 아주 깊은 동굴에 버려진 것 같아. 안에서 소리를 지르면 내가 짐승인 줄 알고 폭탄을 던져버릴까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어.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동굴 앞에서 고민을 말하면, 나는 그 안에서 잠자코 들을 뿐이야.

나는 그런 존재네.

나 참 빛나는 사람이라는 거 아는데. 가끔 당신을 보면 내가 그러지 않은 존재인가 반문하기도 해.

아이러니하지. 당신은 내 곁에서 빛나고, 나는 그런 당신을 바라보는데.

내 덕에 그런다기 보다는, 서로가 그랬음 싶다는 거지.

사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을 닮았지만, 당신은 내가 꽁꽁 숨긴 고독이 없어. 그러니까 나만 당신을 바라보고 배우는 거겠지. 그래, 알겠어. 당신도 고독을 가지고 있을 수 있겠다. 나보다 잘 숨기고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러면, 그러니까, 우린 그제서야 똑바로 마주볼 수 있는 게 아닐까.

당신이 추천한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들의 하루, 딱 하루를 보여주더라. 그 여성의 억압과 고독을 보여주는데, 딱 하루의 일과만을 보여줬어. 만약 나에게도 그러라고 한다면, 그러니까, 나의 사랑을 보여줄 때 단 하루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오늘을 택할래. 나의 오늘을 영화로 만들면 지독하게 재미없는 아류작이 되겠지만, 한 명의 가슴을 겨우 울리는 나름의 기염을 토할 거야. 내가 아플 거야.

내 오늘에 묻은 사랑을 언젠가는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

설령 내가 지금 이 마음을 유지하고 있지 않더라도.

2022.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