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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QP Nov 05. 2023

푸념

비록 난 것은 20세기이나 인생의 구 할을 그 후대에 보냈다. 혼자서 사고할 수 있었을 때부터는 언제나 오늘날의 사람이었다. 이미 너무 많은 그것들을 세계의 저편으로 떠나보내어. 마지막으로 경련하는 인문학이 - 예전엔 그처럼 뭉뚱그릴 필요도 없었을 텐데 - 그렇게나 역겹게 느껴지는 건 그를 이미 죽여서, 그에게는 인체의 기계적인 생리를 시연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서 들이는 마음이라곤 촌스러운 죽음이란 생각에 한숨 밖엔 나올 것이 없어서.


달콤하니 싱그런 과육을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 베먹어도 그 입에는 시큼하니 떫떠름한 미감만이 혓바닥에 남아 있다.


생명이란 말로써 생물계의 분류만이 떠오르는 두뇌는 잘못일까. 무언가를 붙잡는 건 아직 부서지지 않은 장대가 그것 밖엔 없기 때문에. 미처 바람 같은 파도에 휩쓸리지 못한 잔가지가 손짓하듯 저 있다. 온난화로, 앙상해진 섬에 박힌 한 그루의 나무를 포기할 순 없기에, 해수면이 아무리 급하게 올라차도, 바다 아래 얼마나 황홀하리 아름답게 복잡한 생태계가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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