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부터 열린 파티에 다녀온 주말에는 반쯤 풀린 눈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오전내내 정신없이 타이핑을 하다보니 슬슬 어지럽기까지 해서, 그냥 정리하고 바로 나와버렸다. 체력이 말이 아니라는 걸 실감 하면서도, 아직도 파티에서 홀가분하게 방방 뛰며 어깨 위의 무거웠던 무언가를 훌훌 털어낸 덕에 주말은 푹 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본론으로 들어가, 파티라는 건 그다지 자주 있는 이벤트도 아닐 뿐더러, 매번 제각각의 신선한 형태와 규모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참석할 때마다 항상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던 것이, 생각보다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적당한 밀도로 번잡하지 않게 가득 채워진 느낌으로, 술도 안주도 다양하게 준비되어있던 건, 주최측에서 꽤나 신경을 썼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시작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조용히 들어가 가방과 겉옷을 내려놓고 구석의 빈자리에서 얼음 몇 조각을 동동 띄운 스카치블루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이번 파티는 위스키가 특히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던 덕분에, 각 종류별로 한 잔씩 마셔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잔째를 그랜드 로얄로 채우고 있는 중에, 바로 옆자리의 여성분이 안주를 권해주시는 덕분에 간단히 인사를 하고 어느새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굉장히 사교적인 성격같아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파티처럼 활기찬 분위기는 좋아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파티에서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랄까. 인스턴트적인 만남과 대화에서도 나름대로 얻는 것이 있으니까 굳이 애써 피하지는 않아도, 역시나 좋아하지 않는 일은 익숙하지 않은 법이다.
게다가 배울만한 점도 많다. 특히 이런 파티에는 화술이 뛰어난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살짝 뒤로 물러나 잠자코 위스키를 조금씩 들이키며 주변을 둘러보면서 새삼 감탄하게 된다.
일반적인 사교파티에는 이제 가지 않기로 했지만, 이번에는 지인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한 것도 있었기 때문에, 못이기는 척 참석하고는 파티장에 널려있던 위스키들 덕에 혼자 신나서 새벽 내내 홀짝거리는 것만으로도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생일파티라는 건 정말로 오랜만이어서, 으음──, 언제부터였을까. 더 이상 생일파티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아주 오래전 기억에, 생일파티를 할 때면 같은 반 친구들을 잔뜩 초대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치킨이나 피자, 갈비, 그리고 각종 음료수를 늘어놓고 배를 채우고는 근처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곤 했었다. 그러니까 그건 아마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까지였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생일조차 돌아볼 여유도 없었고, 다시금 그 여유를 되찾았을 때는 생일파티라는 건 대체 누굴 위한 걸까, 라는 생각에 생일 자체에 더 이상 별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무거운 이야기는 차치하고, 글쎄──. 일단 어떤 종류의 파티든 이런 이벤트에 참석하고 나면 스스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어째서 파티에 참석한 건지. 어떤 득과 실이 있는지와 같은 일차원적인 생각부터, 파티에 초대받기까지, 스스로가 그런 자리에 어울릴만한 인간으로 성장해왔는지, 그 많은 대조군들 속에서 요컨대 창과 방패는 녹슬지 않고 잘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물음까지도. 그리고 그건 꽤나 효과적인 자극이 되는 한편, 반대급부로의 자괴감이 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스스로의 세속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깊이 돌아보게 된다고 할까. 더 이상 어린애들처럼 모두가 같은 반 친구들이 아니기 때문에. 부정하고 싶어도 아주 쉽게 어떤 인간을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작은 명함 하나에 담겨있는 사회적 지위 같은 것들 뿐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다. 슬픈 일이다.
취기를 이기지 못해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항상 세상에는 엉터리들 만큼이나 대단한 사람들도 많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동시에 나도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생각하지만 글쎄──, 그건 생각한다고 모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나저나 블랙과 골드라는 드레스코드는 생각보다 매칭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안경이 블랙과 골드로만 되어있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편하게 검은 면바지에 회색 셔츠를 입고 갔다. 그러나 웬걸, 다들 블랙과 골드로 코디를 너무 잘해와서 괜히 민망했다.
... 어쩌면 나의 경우에는 화술보다도 패션감각이 먼저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