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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색하늘 Apr 07. 2023

행복에 대하여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풀벌레 소리에 잠 못 드는 새벽.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걸으며 산책길에 오른 어느 날, 문득 그런 무의미한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 부풀어 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고민은 내가 이성적인 사고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로 이어지고 있는 난제이기도 하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반쯤 포기해야 했다고 할까. 물론 그건 나라는 존재의 이유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언젠간 스스로 답을 찾아내야만 한다고 마음 속 깊이 신경 쓰고 있긴 해도.

  그렇지만 역시──, 행복이라는 건 뭘까. 아직도 윤곽조차 어림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개념. 일차원적인 질문에 대해 수많은 매체들과 연사들이 오랜 시간 떠들어 왔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 건, 애초에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행복에 대해 처음 고민하게 된 계기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조금 더 이불 속에 있고 싶은 아침과 조금 더 늦게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새벽 사이에는 학교에서, 일정한 사이클로 하루에 수업을 몇 개나 듣고, 크고 작은 시험이 하루건너 하루 간격으로 이어지는 나날들 속에서 문득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그 배신감이 차오르던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럼 나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성적표에 찍힌 등수에 일희일비했던 걸까. 무엇 때문에 학교에서 관심 없는 수업을 하루 종일 듣고 있었어야 했던 걸까. ‘아아──, 그래. 저건 헛소리야. 학생에겐 성적이 전부인 게 당연하잖아.’ 학생이 아니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학생이라면 성적표 구석에 작게 쓰여 있는 숫자 이외에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흔들림 없이 믿고 있었다. 행복에 대한 강의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행복이라며, 눈앞의 성적에 얽매이지 말고 많은 경험을 해보고 운명을 개척하라는──, 한 마디로 지금까지도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의 연속. 

  하고 싶은 것이 언제까지나 하고 싶은 것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뜬구름 정도가 아니라 저기 옆 은하 어딘가의 구상성단이라도 집어 삼키라는 소리를 꼬박 두 시간 동안 대강당에 오밀조밀 모여 잘도 들었던 걸 보면, 그 당시의 나는 꽤나 순수했던 모양이라──, 물론 믿지 않았던 건 별개의 문제라 하더라도 인내를 갖고 들어주는 능력은 지금보다도 훨씬 능숙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 그런 주제로 강의를 듣는다면 아마 첫 마디를 듣기 전에 눈가리개와 목베게를 두르고 곧바로 잠들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물론 지금도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도 엄밀히 말해서 틀리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답이 없다는 것과 오답이 없다는 건 전혀 다른 말이니까.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도 있겠지만 살 수 있는 행복도 있다. 누군가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그 작은 숫자에서 오는 성취감과 자극이 행복의 전부일 수도 있다.  

  소박한 사람이라면, 오늘 밤에도 포근한 이불 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진취적인 누군가는 크고 작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야말로, 또 누군가는 삶이 물질적으로 점점 풍족해지는 과정에서, 또 누군가는 이름 모를 산속에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낄테지. 아주 잠깐 동안은──. 요컨대 행복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전부 답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행복에 대한 그럴듯한 말이 전부 감언이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하튼, 요즘 들어 느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진취적인 사람의 행복이라는 건 굉장히 인스턴트적인 것이라, 아주 길게 지속되는 행복이라는 건 앞으로도 좀처럼 찾기 어렵지 않을까──, 하고는 솔직히 조금은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성취하는 순간 느낀 행복은, 다음 성취를 위해 달리기 시작하는 순간 사라져 버리고 만다. 행복이 조금이라도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겠지만, 그조차 당연한 것이 되는 시점부터 행복이라는 건 어느 순간 권태로 자연스럽게 바뀌어 있는 것이다.

  요컨대 행복을 조금이라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짧은 행복을 지속적으로 찾아내 이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번거롭고 귀찮은 과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아──, 결국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인가 싶지만, 언제까지고 이 질문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답보 상태인 채로. 글쎄──, 요즘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고 하기 보다는 지금보다 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사는 것 같다.

  뭐, 아직은 '지금 이정도면 괜찮아.' 라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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