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겨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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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에 동창들끼리 모여 모교에서 사진을 찍는 게 연례행사로써 자리잡은지도 벌써 몇년이 되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올해도 찾아온 그날.
눈이 내리기 직전의 겨울 하늘과 조금 쌀쌀해진 바람에 코트 자락을 여미며 버스에 올랐다. 고등학생 시절엔 매일 오르던 버스지만 졸업 이후로 한동안 찾지 않았던 버스, 구석의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나의 사춘기에게’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래전에 지나던 그 길을 그대로,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어도 버스 노선은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좁은 골목을 가로질러, 생각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좌우로 늘어선 작은 펍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당시에는 술을 마실 수 없던 나이였으니까,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휘황찬란한 네온 사인들. 여기가 원래 이런 곳이었던가, 감탄하며 나이가 들고 다시 보는 등굣길은 꽤나 색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은 엊그제 봤었지만 다른 몇몇은 근 일 년만에 보는 얼굴들도 있었다. 작년과 다름없는 모습에, 아니──, 어쩌면 조금은 생기가 사라진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서른을 미리 실감할 수 있었다.
간단히 사진을 찍고는 청첩장을 건네 받았다. 드디어 가기 시작하는구나, 라며 복잡한 심경으로 반쯤 감탄섞인 말과 함께 어깨를 토닥이고는 서로 '철좀 들자 이제는──' 이라며 깔깔거리며 웃던 2017년의 마지막. 이십대의 끝. 그리고 내년이면 정말로 서른이 된다.
커피숍에서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사진촬영의 결과물을 연도별로 정리해서 보며 새삼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시속 30 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거라며 시간의 흐름을 점점 더 빠르게 느낄 나날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전에 모두 출발선에 제대로 서 있는지, 다시 달리기 시작할 준비는 되었는지 점검하는 시간.
몇 년 전부터 연중 행사로 자리잡은 사진촬영은, '지난 한 해도 잘 버텨냈습니다', 라는 확인의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선에서 다시 앞으로 나갈 준비가 되었다는, 간단히 말해 출석체크 비슷한 의식이다. 그래서인지 이 날 만큼은 확실히 이 친구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구나, 라고 새삼스럽게 느껴버리게 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평소에 펍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며 보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고 생각한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은 친구라는 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10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도 어느정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건지, 그 당시에는 말로써 잘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나란히 걸을 수 없는 녀석, 낙오되는 녀석은 친구가 아니야." 라며 서로에게 단단히 못박아 두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건 지금까지도 암묵적으로 유효한 규칙이라, 당시에는 이렇게 되리라는 걸 몰랐겠지만 지금은 서로에게 상당한 압박과 자극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물론 긍정적인 의미로)
서른을 앞에 두고 모두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드리워진 것을 보니 확실히 나란히 걸어왔다는 실감이 났다.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정신없이 달리다가도 옆을 돌아보면 녀석이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여러모로 중요한 믿음이라, 우선 그렇게 믿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내가 잘못된 길로 내달리고 있는 건 아니구나, 라고 안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종종 서로의 안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얼마나 나태해졌는지, 뒤쳐지고 있는 건 아닌지 경각심을 갖게 된다는 것도, 특히 지금처럼 대학 졸업 이후 사회인으로써의 첫 걸음을 내딛는 게 굉장히 어려워진 시대에는 꼭 필요한 안전장치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어린 시절에 이렇게까지 생각했을리는 없었겠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건 뭘까.
녀석들과 만난 건 고등학생 시절이었으니까, 서로 만남 이전까지의 시간에 대한 공통된 추억은 없다. 나름대로 유년시절부터 중학생 시절을 보내고 본격적으로 고등학생이 되어 수험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에 만나, 같은 시험을 치르고 각자 목표로 하는 대학교로 진학했다. 돌아보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수험생활이었지만 그때만큼 스릴있고 재미있던 시절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목표로 했던 대학으로, 각각 다른 분야를 전공해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리고 지금은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서로가 적당한 위치까지 제대로 올라서 있는지 확인한다. 업의 분야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어느 분야에서나 '시기에 걸맞는 위치'는 본질적으로 같다는 걸 알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산다는 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공통된 추억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같은 위치에 서서 시대적으로 닥쳐온 시련을 나름대로 견뎌내고 어느 시점에서든 비슷한 곳에 도달해 있는 것. 그리고 견고하게 그 위치를 지켜내며 착실히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 뭐,이렇게 이야기하면 굉장히 모호하고 거창해보이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별다른 게 아니다. 요컨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하다.
내일이면 서른. 아직 결혼이라거나 업의 의미라거나 여러가지로 이십대에 결론짓지 못한 고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금, 다시 한 번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불완전하게 2017년을 보내게 되어버렸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라는 말에, " ‘다들’ 그렇게 산다는 게 ‘우리가’ 그렇게 살아도 될 근거가 되지는 못해. ‘다들’은 신뢰할수 있는 모집단이 아니잖아 일단." 라고 이야기하면서도, '흐음──'하며 팔짱을 끼고 같은 고민으로 머리를 맞댈 수 있음에 감사하자. 내년엔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그들과 시대적 공감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해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스물아홉의 마지막은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