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꿈을 꾸고 있다. 기차를 타는 꿈. 행선지도, 어디로든 가야하는 이유나 목적도 모른 채 매일 새벽 해가 뜨기 직전의 희끄무레한 안개 속에서 한 손에는 캐리어를, 다른 한 손에는 요즘 쓰일 것 같지 않은 커다란 종이 티켓을 들고 초라한 간이역 플랫폼에 서있었다. 이윽고 기차의 도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안개 너머로 새하얀 기차의 머리가 순식간에 지나쳐 서서히 속력을 줄이더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기차의 중간 어디쯤의 허름한 객실의 문이 보였다.
나를 제외하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티켓 검사를 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팽창한 공기가 새어나오는 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스르르 열리고, 올라선 객실에는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는 좌석 같은 건 없었다. 그곳에는 각양각색의 사람과 화물들이 균일한 밀도로 무엇이 짐이고 무엇이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질서하게──, 그리고 빼곡하게 뒤섞여 널브러져 있었다.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가, 티켓을 다시 한 번 꺼내 보니 역시 좌석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이대로 서있을 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비어 있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캐리어를 구석으로 밀어 넣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기차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너무나 낯선 역에서부터 시작되는 꿈 속에서──, 한 번쯤 기차를 타지 않는 경우를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그래서야 사람 한 명 없는 황량한 간이역 밖으로, 도대체 어디로 가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신경쓰였던 부분은, 만약 기차에 오르지 않고 놓쳐버리면 이 꿈에서 다시는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함이었다. 뭐라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그럴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는 유난히 겁이 많은 탓에, 결국 '할 수 없지' 하며 중얼거리고 한숨을 푹 내쉬며 기차에 일단 오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무언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하고 한 손에는 목적지도 적혀 있지 않은 티켓을 들고서 시작되는 이 꿈은 분명 ‘어딘가로’ 가기 위한 꿈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 더 이상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이 꿈의 시작 직전의 내 자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화물칸 같은 객실이었지만 의외로 큼직한 창문은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어, 바깥 풍경은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행선지를 물어보려 이리저리 둘러보았으나 사람들은 이미 이 기차에 오른 지 한참 지난 듯 자세를 흐트러뜨린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일단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나 창 밖을 살펴보았다.
기차는 산골짜기를 가로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안개가 자욱했지만 주변의 높은 산들의 윤곽은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었고 듬성듬성 거북이 등껍질처럼 생긴 차가운 회백색 벽돌의 건물들도 보였다. 창문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어 앞뒤를 살펴보니 정말로 기차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창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고요한 기차 안.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어 보였다. 이따금씩 잠에서 살짝 깨어난 승객들과 시선이 마주쳤지만 그게 전부였다. 말을 하면 안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인 것 마냥 자연스럽게──, 동시에 부자연스러운 적막한 공기가 객실을 가득 채운 채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게 꿈이라고 눈치채기 시작한 건 이 꿈을 서너 번인가 반복한 후였다. 그러나 꿈이라는 걸 알아차렸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건 없었다. 그저 행선지도 알 수 없는 기차에 올라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 짐을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 안에서 이런 저런 사색을 하다가 잠이 든다. 그리고 깨어나면 꿈 자체에서 깨어나 버린다는 것의 반복. 내 꿈이었지만 그렇다고 어딘가의 소설처럼 초인적인 힘을 부여받은 것도 아니어서 달리 무언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이걸 반복하며 생각해보니, 이 기차는 나를 태운 이후로 단 한번도 정차는 물론이고 속력을 줄인 적이 없었다. 내가 서 있었던 간이역 이후로는 그 어떤 역도 없었고 짤막한 종소리와 함께 출발하며 잠깐의 가속 후에는 속력조차도 바뀌지 않는 것 같았다.
아아──, 이 꿈에서 단 한 가지 변화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면 객실의 사람들과 화물들이었다. 단 한 번도 반복된 적 없는 배치와 항상 처음보는 사람들과 화물들. 그래서 내가 앉게 되는 자리도 매번 달라, 의도치 않게 이미 객실의 거의 모든 장소에 앉아보았다. 여하튼 조심스럽게 추리해보자면──, 아마 다른 사람들은 기차의 종착지까지 꿈에서 깨어나지 않고 도달했던 모양이다. 중간에 꿈에서 깨어나 리타이어 해버린 내겐 '다시 처음부터' 라는 익숙한 규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캐리어에는 어떤 물건들이 들어있을까 궁금해서 열어보려 했지만, 캐리어 역시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고 네 자리 숫자의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이것 저것 자주 사용하는 번호를 떠올려 입력해보았지만 자물쇠는 여전히 견고하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꿈의 이유──. 글쎄. 짐작가는 바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해몽처럼 제멋대로 이유를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할 뿐이다. 여느 밤처럼 잠들고 나면 83번 플랫폼 앞에서 깨어나 코트자락을 여미며 조금 기다리고 있으면 어느새 기차가 바로 눈 앞에서 멈추고 객실문이 열리는 광경을 마주하게 되겠지. 객실 어딘가에 자리잡고 앉아 한 쪽 벽에 기대어 또다시 사색에 빠져 꿈 속의 꿈으로 저울이 기울면 그걸로 끝. 탑승만 반복되는 이 꿈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이 차가운 철길 끝에 도달할 수 있긴 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