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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이나 박시니 Oct 06. 2023

시절인연이 인생친구가 될 때 (feat. 플레이리스트)

네 번째 이직에서 만난 사람들

기자에서 홍보팀으로 그리고 지금의 드라마 마케터가 되기까지 거쳐온 여러 회사들이 존재하지만 유독 '플레이리스트'는 내 인생에서 다신 없을 유토피아에 살았던 시기라 생각하는데, 그 이유를 몇 자 적어보자면


첫 번째. 뭘 해먹고 살아야할지 몰라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일단 해보던 내가, 드디어, '진로'(소주X)라는 것을 명확하게 정하게 된 회사였다는 것

두 번째.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최고의 동료이자 나를 너무 너무 사랑해주는 '친구들'을 만난 곳이란 것

바로 이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솔직히 회사는 회사일 뿐이다. 이 말인 즉슨 회사는 친구를 사귀러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일만 잘 하면 되고, 여기서 만난 인연이 친구가 되는 일?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귀한 한 두 사람의 인연을 만나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한 두 사람일 뿐. 99%의 인연은 스쳐지가나는 회사에서의 만남, 1%에 속하는 인연은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된게 플레이리스트에서의 인연은 99%가 깊숙히 들어오고, 스쳐 지나간 인연이 1%에 해당하는 이상한 회사였다.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는 흔들림만 가득한 내 인생의 중심을 잡는 추가 되어줬고 그 추를 달아준 최고의 동료이자 친구들을 만난 정말 희귀하고도 유토피아인 회사였던거다.


#즐거움을 플레이리스트


<연애플레이리스트>와 <에이틴>. 웹드라마 하면 딱 떠오르는 이 두작품을 탄생시킨 플레이리스트. 말 그대로 신드롬을 일으킨 후 본격적인 회사 확장을 시작하던 18년도 말, 나는 처음으로 플레이리스트 사람들을 만났다.


생각해보면 플레이리스트는 첫 만남부터가 남달랐다. 그때의 나는 기자에 이어 홍보팀 생활을 하던, 다소 딱딱한 조직이 익숙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직을 준비하며 만난 여러 기업 면접관들과 달리 플레이리스트 면접은 소개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관과 면접자, 이미 갑을이 정해진 관계에서 나오는 분위기는 온 데 간 데 없고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얼굴과 한 마디 한 마디 귀 기울여 들어주던 그 모습이 어쩐지 굉장히 소개팅 같았달까. 그래서 오히려 이 면접을 잘 본건지 아닌지 가늠이 더 안됐었는데.. 내 걱정이 무색하게 최종면접 안내 연락이 왔고. 대표님과의 1:1 면접 끝에 나는 플레이리스트 식구가 됐다.


그렇게 플리로 첫 발을 내딛은 날, 나는 신세계를 마주했다.


첫째, 영어 닉네임을 쓴다.


플리는 말로만 듣던 수평조직 문화를 꾸리며 영어 닉네임을 쓰는 조직 문화를 갖고 있다. 솔직히 입사 초기에는 어색함도 컸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한국 회산데.. 진짜 수평이 가능하나..라고 생각해서 이름을 부르기 어려운 것도 컸다. 그런데


"시니! 그냥 편하게 님자 빼고 불러주세요~!"


아니였다. 진짜였다. 심지어는 대표님 닉네임인 '션'도 그대로 "션!"이라고 아주 편하게 부르는 곳이었던 것이다.(심지어 우리팀은 션을 놀리는걸 제일 좋아하는 팀이었다.) 어쩐지.. 한국식 면접장 메뉴얼대로 자기소개를 읊던 나를 신기하게 보더라니.. 어딘가 의아했던 부분들이 다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둘째, 진짜 복장 자유다.


호칭 문화와도 이어지는 이야긴데 플리는 진.짜.로 복장이 자유다. 어느 정도로 자유냐면 뭘 입든 그 모든게 그 사람의 스타일로 인정해준다. 그러니까.. 좀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자면 플리에선 크롭티도, 바이크팬츠도, 레깅스도, 도서관에서 3일 밤을 새고 나온 듯 한 추리닝과 모자를 써도 된다는 소리다.


이제 한국에도 이런 스타트업들이 꽤 많아져서 이런 문화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들 수 있지만, 내가 플리로 이직하던 그때만 해도 이걸 진짜로 실행하고 있는 회사?! 정말 드물었다. 보통 복장 자유라고 해봤자 캐주얼 정장을 기본 바탕으로 반바지를 허용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진짜 레알로 동네 돌아다니던 복장으로 출근해도 되는 회사란게 상당히 센세이션했다.


물론 회사원 코스프레(?)가 필요한 어떤 순간들엔 TPO에 맞춰 입었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우리가 일하기 편한 복장으로 출근했다. 진짜 수평적인 관계, 자유로운 복장에서 나오는 편안한 분위기 형성, 이것들은 틀에 갇힌 생각을 벗어나게 해줬다. 존중은 하지만 딱딱함은 없는 분위기를 강화해 진짜 수평 조직 문화를 가진 회사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거다.


셋째, 해봤던 것 말고 새로운 걸 해야한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능한건 플리 사람들의 트렌디함과도 연관이 깊다. 각자의 개성이 진정으로 존중되는 곳인 만큼 플리는 실제로 그 트렌디함을 자유분방하게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든 감각이 트렌디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그런 플리의 인재상에 드러맞아 한자리에 모인 우리는 묘하게 결이 비슷했다. 그 누구도 강요한 적이 없는데 뻔-한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고, 남들이 안 해본 새로운 것을 하고싶어 했다. 남들 다 하니까 하는 거 말고, 정말 이 드라마에서만 할 수 있는게 뭘까?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그런 홍보 마케팅말이다.


캠퍼스물인 <연애플레이리스트>가 시즌4를 준비하고 있었던 19년도 초중반. 인생네컷, 포토이즘과 같은 브랜드들이 막 떠오르던 그 즈음, 우리는 친구들과의 인생 사진 찍기를 컨셉으로 한 '인생 사진관' 오프라인 이벤트를 열었다. 지금이야 모두들 당연한 듯 하고 있는 인생네컷 콜라보이지만, 당시엔 드라마 콘텐츠를 활용해 프레임을 만들고, 마케팅 아이템으로 내놓는 일은 거의 최초에 가까웠다.

또 네이버 나우와 최초로 드라마 홍보를 위한 스페셜쇼 개최를 <만찢남녀>로 열었을 뿐만 아니라, 웹드라마 최초로 예능 홍보에 나설 수 있었던 '문명특급'과의 만남 역시 지독하리만큼 놓지 않고 재회를 거듭했다. 이 뿐만 아니라 메타버스 붐이 막 일던 그 시점, 우리는 빠르게 제페토와 손잡고 <트웬티 트웬티>, <라이브온> 속 등장하는 '연리대학교', '서연고등학교' 맵을 만들어 드라마 속 캐릭터들을 메타버스 안에 구현시켜 시청자 타겟 맞춤형 마케팅을 펼쳤다.


이렇게 외부와 진행하는 것 말고도 우리만 할 수 있는 새로운 것에도 거침없었는데. 콘텐츠 비주얼 브랜딩을 강화할 자체 화보를 만들었고, 본편의 떡밥이 되는 부가 콘텐츠들도 필수적으로 꼭 만들어냈다. 예를들면 이런것들.




1. 블루버스데이 하린(예리)x서준(홍석) 화보

https://www.instagram.com/p/CReQiGGj5Te/?igshid=MzRlODBiNWFlZA==


2. 블루버스데이 ‘play your story' 영상화보

https://www.instagram.com/p/CReQjQthK01/?igshid=MzRlODBiNWFlZA==


3. [엑스엑스(XX)] - 습격 인터뷰

https://youtu.be/cv3K6TOtBnc?si=Tek4BJ7s9nOR8McZ


4. 라이브온 - 흥할 신작을 소개합니다 [흥신소]

https://youtu.be/P8fZokVYkdo?si=KALteGoBWzytjm39



보통 우리팀은 작품 별로 최소 셋이 한 조처럼 움직이기는 했지만 각자 메인으로 맡는 업무를 크게 쪼개면 홍보, 마케팅, 부가콘텐츠 제작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눌 수 있었는데. 플리 모든 콘텐츠를 언론과 외부에 홍보하는 사람이 나 한사람이었던 것처럼 이 부가콘텐츠 담당자 역시 딱 한명, 보비뿐이었기에 제작팀에서는 나와 보비를 묶어 '원앤온리 클럽'이라 불렀다. (+ 마케터 역시 넷 밖에 안 됐기에.. 1년에 10개 작품 넘게 제작하던 그 시절, 우리는 거의 같이 사는 사람들처럼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보자면 우리팀은 짜기라도 한 듯 '그래서 이 드라마랑 이게 무슨 상관인데?', '왜 해야 하는데?'를 생각하며 이 드라마만을 위한 전략을 짜는 사람들이었고. 전체적인 드라마 스토리를 바탕으로 전체 스토리와 각 캐릭터 이해도를 높여줄 콘텐츠들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려고 할 때마다 제작팀이 힘을 실어줬다. 그 덕분에 힘은 들었어도 이상하게 늘 즐거웠던, 그런 야근의 나날들이었다.


#플레이리스트 전체공개


플리 식구가 된 뒤 나는 이런 피, 땀, 눈물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말 그대로 신드롬을 일으킨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담은 회사의 비전을 이야기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으로 그것을 말할 것인가를 이제 막 만들어야 했던 시점이었던 만큼 나는 입사와 동시에 기초 메뉴얼을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첫째, 플레이리스트는 어떤 회사인가, 설명할 수 있는 프레스킷을 만들고

둘째, 플레이리스트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외부에서 공통적으로 노출할 메시지들을 담은 PR 가이드를 잡았고

셋째, 그동안은 동시다발로 퍼져있던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 라인을 홍보 담당자로 통일 시켰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문의가 왔을 때 대응해야 하는 메뉴얼도 만들었다.


마지막 넷째, 내부 메뉴얼이 정리될 즈음 언론에 '플레이리스트'를 피칭하며 인터뷰를 통해 세상 밖에 이 모든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꺼내놓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웹드가 뭐길래 요즘 애들의 '파리의 연인' 포지션이 되어 이 난리인가, 플레이리스트란 회사는 대체 어떤 회사인가, 이걸 만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런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대표님을 시작으로 감독, 작가들의 인터뷰가 하나, 둘 쌓여갔고. 이를 기반으로 플레이리스트는 몇몇 웹드를 성공시킨 곳이 아니라, 미래 가치를 보고 달려나가는 '제작사'이자 '채널'로써의 포지션이 강화됐다.


#한 마음 한 뜻으로 플레이리스트 재생


브랜드 PR은 콘텐츠 PR이 확장된 영역이었기 때문에 드라마를 활용한 언론홍보도 새롭게 만들어나갔는데. 가장 먼저 새롭게 한 일은 '제작발표회' 행사 운영이었다.

방송 드라마의 행사 영역이었던 제작발표회. 플리는 그런 경계선을 과감히 깨고, 활동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연애플레이리스트 시즌4>부터는 제작발표회 행사를 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콘텐츠 업계에 이제 막 들어온 내가, 입사와 동시에 이런 큰 행사를 홀로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기자생활도 했고, 홍보 업무도 경력직인건 맞지만 산업부 기자였던 내가 이런 행사 롤을 정확하게 다 알 순 없었다. 홍보 경력 역시 브랜드 홍보였기에 이런 드라마 행사는.. 솔직히 문외한이었다고 말 하는게 더 정확했다. 막막하기만 하던 그때, <연플리4> CP이자 나의 구세주인 아리가 나타났고, 경력직인 아리의 도움을 받아 플레이리스트 첫 제작발표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30년 이상을 한우물을 파며 일 한,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아직은 너무나 짧은 경험치일 뿐이라 생각해 낯부끄럽지만, 그래도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그런 경험치들이 쌓였을 즈음 간 플리였기 때문에 나는 이런 모든 상황들이 신기했고, 동료들에게 고마웠다.


앞선 경험들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파악하기 전까진 쉽사리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신뢰와 믿음이 생기더라도 남의 일을 위해 팔을 걷어부치고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동료는 만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플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회의에선 서로의 생각을 가감없이 다 꺼내놓고 의견을 나누는 진짜 회의를 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모르는 것, 어려워하는 부분들을 알게되면 모두가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마음으로 뭉쳤다. 그리고 서로를 믿어줬다. 잘 해낼 것이라고. 이 과정에서 함께하던 우리의 야근은.. 이상하리만큼 몸은 힘들어도 웃음이 늘 넘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과정이 즐거워서였는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들을 계속하던 우리는 포털 화제성은 물론, 웹드라마 최초로 TV화제성에 오르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공감할 수 있고 행복을 주는 영상을 모아둔다는 뜻을 가진 '플레이리스트'여서 그랬을까. 지난 그 시간을 함께한 우리는 진심으로 즐겁게 일했고, 시청자가 즐거울 것을 고민했고, 그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키며 지친 육신을 위로받았다. 그리고 이런 하루하루를 쌓아가던 우리는 동료를 넘어 인생의 친구가 됐다.


#최고의 복지는 최고의 동료


눈 떠서 눈 감을때까지 만나는 사람. 오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인 회사 사람들. 특히나 대학 입학과 동시에 자동 독립이 성사된 나와 같은 지방러들에겐 사실상 가족보다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이야기 나누는 그런 존재들. 그리고



매일을 이 모습으로 힘겹게 출근하고 있는 K-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최고의 복지는 최고의 동료라는 것. 사실상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참을 수 없는 퇴사욕구가 솟구치기도 하고, 반대로 퇴사욕구를 잠재울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란 말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한 시절, 스쳐가는 인연일 수도 있지만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가족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특별한 사람들과 즐겁게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축복인데. 이 인연들이 이제는 회사 밖에서 내 인생에 힘을 실어주는 특별한 존재들이 됐다는걸 생각해보면 플레이리스트는 내 인생에 있어 참 귀한 인연의 회사였단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던 플레이리스트, 그리고 우리들은 이제 또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새로운 사랑(?)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같이 그때의 우리가 함께 모여 만들던 시너지를 그리워하고, 언젠가 또 한자리에 모여 지난날 우리가 뿜어낸 그 에너지들로 같은 목표를 함께 달려갈 날을 꿈꾼다. 그리고 매일을 함께 다짐한다. 그날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자고, 서로를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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