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액화철인 Jul 13. 2022

돈 룩업: 회수를 건너온 탱자

애덤 맥케이의 넷플릭스 영화(2021)

    2020년에 나온 “살아있다”라는 유아인이 나오는 좀비 영화가 있다. 당시 한국 평단이나 관객에게는 욕을 참 많이도 먹은 영화였는데 영미권에선 로튼 토마토 88%, 넷플릭스 전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등 엄청난 평가를 받았다. 한국에선 범작 내지는 그 이하로 평가를 받았는데 해외에선 긍정적인 평가를 얻는 사례는 이 외에도 꽤 있다. “엽기적 그녀”의 실패한 실질적 속편, 심지어는 사상 최악의 영화 소리까지 들었던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의 경우 한국에선 2주 차에 입소문을 타고 폭망 했지만 일본에선 롱런하며 성공적인 흥행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90~00년대의 일본 영화팬들 중에는 이 작품을 ‘내 인생의 한국 영화’로 기억하는 사람도 꽤 있다는 걸 보면 한국 사람 입장에선 도대체 같은 영화를 본 건가 싶기도 하다. 개봉 당시 흥행 참패를 겪었던 “김 씨 표류기”처럼 오히려 최근 들어 해외 팬들의 감상을 통해 걸작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영화들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는 더 많다. 90년대 한국 시네 키즈들이 신나게 빨았던 “분닥 세인트”나 코스타 가브라스의 “매드 시티”,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의 오래된 영화과 교수들이 칭송해마지 않는 마이클 치미노의 대부분 작품들 등이다.  그런 감상과 수용의 차이는 문화적 맥락과 연관성이 깊다. 개인적으로는 특정 영화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그런 식의 완전히 다른 평가를 받는 경우, 그 작품이 그 수용 행태의 차이보다 더 흥미로우면 좋은 작품 반대면 그저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즉 영화를 둘러싼 상반된 반응이 영화 자체보다 재밌으면 그 영화는 별로 재미없다는 의미.


    결론부터 까고 들어가면 애덤 맥케이의 “돈 룩업”은 개인적으로는 영화 자체로는 그냥 그랬다. 차라리 그걸 보고 우주 명작인 양 좋아하는 한국 진보 평론가들의 호들갑 쪽이 흥미롭다. 물론 영화가 완전히 엉망이냐 물으면 그렇지는 않다고 답할 것 같긴 하다. 제법 볼만하고 심지어는 장점도 꽤 선명하다.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이나 ‘기후 변화’와 ‘판데믹’ 같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위험’의 알레고리로 훨씬 더 간명하고 즉각적인 ‘혜성 충돌’을 선택한 점은 대단히 훌륭했다. 여성 과학자와 남성 과학자의 구도를 통해 젠더에 따라 사회는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가에 대해 꽤나 정확히 묘사한 부분도 탁월했다.(툰베리가 소년이었다면 사람들이 저따위로 놀렸을까?) 이런 탄탄한 밑그림/뼈대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는 불필요한 부분이 지나치게 많았고 여러 풍자 대상의 표현도 게으른 캐리커쳐를 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분명하다. 특히 미국 정부의 풍자가 그랬다. 2021년 말, 미국 민주당 치세에 개봉한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안타깝게도 시대착오적인 허수아비 때리기라 가끔은 감독이 분위기 파악도 못한 채, 관객의 귓가에서 “지금 미국이 민주당 정권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지?”라고 속삭이는 듯한 느낌까지 들 지경이다.


 영화 속에서 백악관을 차지한 수권 정당이 어느 쪽인지 대놓고 드러나지 않지만 관객들이 공화당이라고 짐작해버리도록 설정되어 있다. 멍청한 아들이 백악관 비서실장을 하는 부분은 트럼프의 사위와 아들인 자레드 쿠쉬너/에릭 트럼프/트럼프 주니어, 혹은 알래스카 주정부 요직에 바보 아들들을 배치시켰던 사라 페일린의 이야기를 연상 킨다. 초반에 나오는 대법관 임명 스캔들 역시, 보안관이라는 점에선 트럼프가 사면한 조 아파이아 보안관, 누드모델을 했던 과거나 임명 전 섹스 스캔들 비스무리한 점에선 트럼프가 임명 강행한 대법관 브렛 캐버노와 코즈모폴리턴 잡지에 센터폴드로 누드를 게재했던 경력이 있는 스캇 브라운 상원의원 등 공화당 인사들만 여럿 생각나게 한다. 극 중반에 중요 임무를 맡는 미친 군인의 모습 역시 트럼프가 사면 및 복권한 전쟁 범죄자 3인방의 풍자다. 올리언 대통령 본인 역시 민주당 대통령과 친했던 모습 (빌 클린턴과의 사진)이나 정치를 하기 전 리얼리티 쇼의 진행자였다는 등의 특징이 영락없는 트럼프다. 가만히 보면 애덤 맥케이가 이런 비판을 피하기 위해 민주당 정치인의 몇 가지 특징을 올리언에 접목시키려 한 점도 보이는데 아이비리그 출신 말만 맹신했던 오바마의 특성을 차용한 부분이나 힐러리 클린턴의 바지 슈트나 앤소니 위너의 성기 사진 전송, 또 오바마의 대마 문제를 떠올리는 대선 가도 중 담배 흡연 문제 같은 피상적인 수준에 그친다. 정작 중요한 주 지지층에 대한 묘사와 그들과 어떤 식으로 소통하는가 하는 다이내믹은 빼박 공화당이다. (과학자와 각을 세운다든지, 자유라는 이념을 앞세워 혹세무민 한다든지 등)

 

 할리우드 영화에서 바보 같은 미국 정부가 나와야 하면 꼭 공화당 정부라는 게 일종의 관례이긴 한데(“아이언 스카이”라든가) 이제는 슬슬 질릴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양당에 대해 둘 다 결국 거대 자본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보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작금에선 특히 더 그렇다. 조 바이든의 당선으로 들어선 민주당 정부 역시 마찬가지로 판데믹 관련하여 삽질을 하고 있고(덕분에 낮은 지지율) 특히 CDC, NHI 등 의료 전문가들 역시 대중과의 소통 실패로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묘하게 민주당 정치인이 하나도 안 나오는 (그래서 바보짓을 하나도 안 하는) 이런 정치 풍자는 대단히 현실과 동떨어진 진영 논리성 프로파간다로 받아들여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 영화의 큰 약점이다. 그래서 영화가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내재된 편파성으로 인해 결국은 우리 편은 더 벽창호로 만들고 상대편은 기분 나쁘게 하는 소모적 정쟁 도구로 소비된다는 점이 참 안타깝지 않은가?


물론 이 영화가 자아성찰이 완벽히 결여되어 있는 영화는 아니다. 답답한 대중/행정가들을 상대로 과학자들 역시 답답한 소통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부분은 이 영화에서 가장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 ‘기후 문제’는 시급하지만 '설득이 어렵다' 혹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 이를 통해 효과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성찰은 딱 여기에서 멈추고 영화는 바로 할리우드 엘리트들이 가진 선민의식과 자기만족이라는 쉽고 뻔한 길로 들어선 후 뒤돌아보지 않는다. 2021년의 엘리트들은 멍청한 대중들에게 지쳤다. 극 중, 민디 박사는 참다 참다 생방송 중에 폭발하지만 이 영화는 초반의 백안관 장면부터 폭발 모드를 유지한다. 기후 문제로 분노하는 건 나쁜 일은 아니지만 자기편은 여기저기 치워놓고 상대방의 허수아비만 잔뜩 세워놓고 밥상 뒤집기를 하는 건 진정성이 떨어진다. 왠지 한 달에 냉방비로만 2만 킬로와트를 태우는 통창 채광의 말리부 저택에 살며 북극 얼음 위 갈 곳 없는 북극곰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칵테일파티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까지 쓰고 로튼을 체크해보니 55%다. 미국 평론가들도 그 위선에 지쳤나 보다.



코다:

1. 재밌게 본 사람들이 부럽다. 나도 저런 거 몰랐으면 재밌게 볼 수 있었을 텐데.

2. 샬라메는 왜 나온 거지? 마지막 기도하려고?

3. 마크 라일랜스는 자폐증끼 있는 실리콘밸리 구루 전문 배우로 자리 잡고 있구나.

4. 감독이 치열교정 엄청 미워하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콩코드, 석양, 엠파이어 스테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