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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 Oct 02. 2023

추석의 단상

기억 속 냄새


시장은 햇 오곡이며 백과가 여문 추석냄새로 가득하다

잘 익은 과일의 달큰함과 구수한 떡 냄새 그리고 비릿한 조기냄새에 시장을 거니는 발걸음이 자꾸만 멈춰진다

다만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기엔 가벼운 지갑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 익어 속살까지 꽉 찬 보름달이 너무나도 밝은 가을 저녁이다

동네 어귀의 노오란 가로등 불이 무색하리만치 옥색 달빛은 온 동네를 비추이고 있다

가을 저녁의 선선한 바람은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함께 옆집 그리고 앞집의 고소한 부침개 냄새를 온 동네로 실어 나르고 있다

이내 우리집에도 들린

바람은 정지의 황토벽까지 그 냄새를 기름지게 바르며 여러 집 담장을 넘어 넘어 불어 간다


곤로 위 후라이팬은 식용유를 톡톡 튀겨가며 부침개를 부쳐내고,

부침개는  이내 커다란 대광주리에 켜켜이 쌓인 채 한껏 달아오른 몸을 식힌다.


눈을 감고 천천히 부침개가 쌓여 있는 대광주리를 들여다본다

정구지전, 배추전, 무우전, 동태전, 노오란 계란 물 입힌 두부 전, 파전, 김치전.....

요즘의 부침개 가게 못지않은 넉넉한 양이다.

하지만 부쳐내는 양 못지않게 주워 먹는 손길 또한 만만치 않다

찰싹. 찰싹~  손 등을 맞아가면서도 그 손은 기어이 동태전 하나를 움켜쥔다


기억 속, 나의 손이다




추석은 여름 내 길어 지저분했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이발시키고 꾀죄죄한 몸뚱어리를 뽀얗게 빚어낸다

하얀 쌀가루로 어 낸 송편은 솔가지 위에서 익어가고, 가을걷이 햇과일들은 반지르르 한 향을 낸다

부침개를 다 부쳐낸 후라이팬은 이내 커다란 조기를 얹어 지져내고 있다

가을 햇살과 바람으로 적당히 말려진 호박고지랑 가지고지는  고사리며 도라지 등 여러 나물들과 함께 참기름, 들기름으로 볶아지고 무쳐진다

어림잡아 대엿근은 됨직한 검붉은 고깃살로 탕과 조림, 육전을 만들면 비로소 차례상이 그득해 보인다

말린 홍합과 다시마, 큼직한 무에 고깃살로 맛을 낸 탕은 며칠 전 광나게 문질러 놓은 놋그릇에 담기어 모락모락 김을 뿜고 있다




홍동백서, 좌포우혜,조율이시,어동육서를 외쳐대며 사과와 배의 자리를 정하였고, 조기 대가리의 갈피까지 잡아준다.

그리곤 우쭐해하며 아버지의 눈치를 살핀다.

다행히 사과와 배, 그리고 조기는 그 자리를 계속 지킨다


추석 냄새가 났다.


곤로의 케로신 냄새, 짭조름한 조기 냄새, 고소한 부침개 냄새, 나물을 무쳐내던 참기름 냄새, 녹진한 탕국 냄새...

내 손에는 갓 부쳐 따끈한 동태전의 기름진 냄새가 나고 내 입에선 녹진한 탕국 냄새가 났다

친척 어르신이 가져온 빨갛게 포장된 네모진 종합 선물세트의 쿠키랑 껌 냄새도 빼놓을 수 없다

흙담을 따라 알록달록 희나리가 진 감나무의 빠알간 홍시 냄새도 기억한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추억 속 냄새! 추석 냄새다.

사라져 버린 추석 냄새처럼 추억도 바래져버렸나 보다

추석은 달력에 빨갛게 칠해져 그냥 쉬는 날이며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민해야 하는 개뿔, 골치 아픈 날일뿐이다


온 동네를 내 달리며 개구졌던 아이들의 명절 소음이 그립고, 온 동네를 자욱이 떠 돌던 추석 냄새가 그리운 오늘. 앞이마에 서늘하고 훤한 가르마를 내고 있는 보름달만은 변치 않았다. - 김춘수 시인 [차례에서]

마치 삼십 년 전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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