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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 Mar 07. 2023

낡은 트럭에서의 한바탕 봄 꿈

능수홍도화는 그렇게 내 품에 왔다

사장님 능수홍도화 들어왔을까요?


아니요.  능수홍도화는 품목에 없네요.


네. 그럼 예약해 놓은 나무들만 준비 부탁 드립니다.


일요일.

3주 전에 예약해 놓은 나무를 가지러 가야 하는 날이다

둘째 아들과 같이 머리를 하고 가야 했기에 아침부터 부산을 떤다

나무는 다섯 그루인데 승용차에 싣지 못하여 이웃 형님의 트럭으로 동행을 하자 약속이 되어 있었다

이웃 형님 역시 바쁜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시간을 내어 주심에 감사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옥천으로 향할 낡은 트럭에 올랐다

얼마 만에 타 보는 트럭인가?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타 보았던 1톤 트럭의 느낌에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출발과 동시에 들려오는 거친 엔진 소리와 진동에 젖어들었던 감회는 바사삭 사라져 버렸다

우리의 대화도 트럭의 엔진 소리에 묻혀 버려 서로의 목청 데시벨을 한껏 올려야 했다

수동 기어 변속 때마다의 꿀렁거림은 덤이었다

낡은 트럭에 앉아 바래고 한적한 국도를 달리는 기분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트럭은 국도를 따라 한적한 시골 마을들을 지나친다

트럭의 거친 소리와 툴툴거림에도 익숙해졌는지 차 창 밖으로 내달리는 시골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이른 봄이라서 일까 논 밭은 겨울스러움이 그대로다

하지만 볼에 스치는 바람과 코 끝을 감도는 거름 냄새는 분명 봄 내음이다

호젓한 국도를 따라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드라이브를 하는 기분이다

그때 한 무리의 오토바이들이 라이딩을 하며 우리의 옆을 지나친다

시원스레 내 달리는 할리의 우렁찬 배기소리에 잠잠하던 가슴이 확 끓어오른다

포티에잇과 팻보이가 주를 이룬 듯하다

1200cc 이상의 고 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친 속도감과 으르렁 거리는 소리는 고동치는 나의 심장이다

지나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지난 과거의 두근거림과 현재의 허전함이 동시에 밀려든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달림이 있은 후 트럭은 한적한 시골마을을 천천히 배회한다

형님께서 점심을 먹자고 하신다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맛집이란다.

메뉴는 어국수!


시골 마을의 어느 장터에 트럭이 멈춘다

순간 갑자기 찾아온 고요함에 귀가 먹먹하다

장터치곤 너무나 한적한 풍경이다

복작한 사람 냄새 가득했을 옛 영화는 사라지고 흔적만 남은 듯하다

하지만 옛 맛은 그대로인지 외지인들의 발걸음은 꽤나 있어 보인다

식당은 테이블 3개의 단출한 공간이다

한 무리의 중년들이 두 테이블에서 어국수를 맛나게 드시고 계셨다

우리는 나머지 한 테이블에 앉아 어국수 두 그릇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미리 끓여 놓는 방식이 아닌 주문을 하면 만드는 방식이라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한다

기다리는 사이 봄동 겉절이를 내주신다

주저할 겨를도 없이 주님을 찾았다

충청도에 왔으면 충청도 술로,  하여 "시원한 청풍"으로 시작했다

봄 향기 가득한 새콤 달콤한 겉절이에 캬~ 소리가 절로 나온다

봄 맛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분명 봄동맛이 나서 봄 맛이라고" 할 것 같다

때마침 어국수가 등장했다

메기살을 으깬 얼큰한 국물 베이스에 국수를 넣고 끓인 것이다

깻잎과 산초로 저린 혀 끝에 소주를 털어 넣어 준다

시골장터의 소박한 어국수 한 그릇


얼큰하고 짜릿한 봄 맛을 느끼고 우리는 다시 트럭에 올랐다

트럭이 달리자 얼큰함으로 인한 열기가 식어간다

얼마나 달렸을까?

구불구불 산허리를 가르는 트럭을 따라 대청호가 차창 옆을 마주 달리고 있다

넓다. 그리고 엄청나다

후로 꽤나 달렸음에도 여전히 옆을 달리고 있는 걸 보면...

혼자 보기 아까운 풍광에 짐짓 인심이 동한 까닭일까? 아까 지나쳐 간 할리 무리가  생각난다

그들도 이곳을 지나쳤으려나?


옥천군에 다다른 모양이다

이제껏 지나쳤던 시골 마을의 모습이 아닌 것을 보아하니 그런 듯하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외곽으로 농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농원들의 규모가 꽤나 크다

옥천이 묘목 도시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케 한다

드디어 나의 나무들이 예약되어있는 ㅇㅇ농원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농원들의 집합소인 듯하다

마을 전체가 농원인 듯 엄청난 규모의 묘목이며 조경수들이 즐비하다

예약 확인 후 나무들을 가지러 간 사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많은 농원들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모두들 집집마다 봄을 들이려나 보다

젊은 부부부터 노 신사,  어린아이들까지 이곳은 벌써부터 봄객들로 활기가 넘친다

조그마한 묘목부터 꽃,  씨앗 등을 많이 구매하는 듯하다

가운데 눈에  확 띄는 황금회화목

농원의 풍경을 눈에 담고 있다 보니 나의 나무들이 도착하였다

미산딸나무(체로키치프종) 3그루와 배롱나무(다이너마이트종) 2그루, 그리고 아로니아 1년생 10주를 확인하고 트럭에 실었다

그러다 문득 농원 안쪽을 보는데 능수홍도화 두 그루가 보이는 것이다

분명 아침에 통화할 때만 해도 없다고 했었는데!

내 눈에는 분명 능수홍도화로 보였다

그래서 아침에 통화를 했던 여자분(와서 보니 사장님이 아니라 경리분 인 듯)에게 다시 한번 확인을 하러 갔다.


혹시 농원 안쪽에 심겨 있는 나무 두 그루 능수홍도화 아닌가요?


네. 그런데 제가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 잘 몰라요.  너무 종류가 많아서요


순간 머리를 한 방 맞은 듯했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씀드렸다


그럼 누구한테 물어보면 될까요?


네. 사장님 불러 드릴게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5분여의 시간이 지나자 젊은 남자분이 오셨다

수 인사를 하고 찾은 이유를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솔직히 말씀해 주셨다

귀한 수종이라 본인들도 두 그루 어렵게 구해서 키우는 중이라고 하셨다

나는 한 그루만이라도 갖고 오고 싶었다

그래서 멀리서 고생고생하며 찾아왔다는 둥,  아직 점심도 못 먹었다는 둥,  트럭도 하루 일당 쳐 주고 빌렸다는 둥...

나의 이런저런 앓는 소리에 사장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다

속으로는 " 아! 되었다" 싶었다.  그 순간 사장님께서 좋다며 한 그루를 내어 주신다 하셨다

사장님을 따라 농원 안쪽으로 들어가자 가지를 축 늘어뜨린 채로 예쁘게 자라고 있는 능수홍도화가 보였다

수형도 괜찮고 R대로 굵었다  

한마디로 예뻤다

그렇게 한 그루를 캐내는데 나도 모르게


"사장님 캐시는 김에 나머지 한 그루도 주세요"라고 얘기드렸다

사장님은 캐시다 말고 "네?"라며 황당해하셨다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아니 사장님 혹시나 한 그루 갖고 가서 못 살리면 어떡해요?"  "그리고 사장님은 저보다 구하기도 쉽잖아요"

이제는 부탁이 아니라 반 협박이다

몇 번을 안 된다던 사장님께서 결국 두 손을 들으시고는 한 그루 더 캐주셨다

나는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를 드리고 양손 가득 봄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 말씀드렸다

사장님께서도 좋은 나무이니 잘 키우시라고 하신다


간단히 택배로 받을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능수홍도화를 만날 수 있었을까?

세상에 공짜로 내 것이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경험한 날이다

경매 시 임장이 기본이듯 오늘의 발품 팔기를 주저했다면 선물 같은 덤은 없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호젓한 시골길을 따라 달리던 여유와 맛 난 봄 맛,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봄 선물까지 시끄럽고 툴툴대던 낡은 트럭에 앉아 마치 한바탕의 봄 꿈을 꾼 듯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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