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신혼 이혼, 내가 이혼을 하게 된 이유
결국엔 불편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
일이 벌어진지 한달이 지났다.
동아줄 붙잡듯 찾아갔던 값비싼 상담센터에선 내 정신상태를 심층 검사해주었고, 본질적으로 남자 문제에 흔들릴 멘탈은 아니니 지금이 힘들뿐 차츰 좋아질거라 말해줬다. 상담사 말대로 나는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서 점차 안정을 찾고있다.
문득, 여기 가보자 이거 해보자 하는 내 목소리와, 너무 좋아 하던 네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너도 나처럼 내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전화를 걸고싶을 때가 많지만, 늘 그랬던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친밀한 목소리로 너를 부르고 싶지만, 꾸역꾸역 나를 버린 너의 날선 표정들을 기억하면서,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진지한 대화를 하자고, 예비 전남편을 불러냈다.
정말 나오기 싫은 얼굴이었다.
우리 신혼집 앞, 우리가 처음 만나기 시작했던 장소, 그 자리에서 만나서 서로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한달만에 대화를 하게 됐다.
다른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었어. 나도 그땐 제 정신이 아니었고,
라고 하길래, 그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천박한 쓰레기로 생각하지는 않게 해줘서 정말 진심으로 고맙더라.
그리고 이혼을 하고싶은 이유는,
사실 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너무 힘들었다고.
아버지가 늘 틀린 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시골에 계신 시아버지는 옛날 분이시다. 남편과 같은 직장 다니며 같은 연봉 받는 나를 참 못마땅히 여겼다. 거실에 앉아 너는 양반가에 시집왔다, 며느리란 남편 집에 3년을 살며 시댁 문화를 배우는 존재였다, 니가 직장 다녀봐야 얼마나 다니겠냐는 말을 직접 하고 뒤에서는 싹싹하지 않다 안부전화가 없다 표정이 불손하다 등등 나를 싫어하기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분이셨다.
심지어 내가 알게된 가족의 병력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셨다. 사람 살다보면 이럴 수도 있는거라며. 사랑만 생각했을뿐 조건을 따지지 않았던 나를 두고 어떻게든 내 배경을 까내리려는 묘한 신경전도 벌였다.
내 결혼생활은 남편과 나의 진실한 사랑으로 이루어졌고, 남편과 사는거지 시아버지와 사는게 아니니, 불편하고 불편하고 불편한 상황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것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남과 가족이 되는건 어렵고 불편한 일이니까. 불행중 다행인지 시어머니의 선한 성품은 내게 위로가 되었고, 그녀를 보며 내 생각은 옳다 여겼다.
그렇기에 이제와서 시아버지와 내 관계 때문에 이혼한다는 너는 아주 비겁한 사람이다.
본인의 문제를 숨기고, 결국엔 아버지탓, 이렇게 된 판국에 예전처럼 자기를 대해줄 수 없을 거라는 나와 내 부모님 탓, 본인 잘못은 개선해보려는 의지가 전혀 없는, 아주 나약하고 비겁한... 내가 사랑한 사람.
나는 여러차례, 너와 네 부모님에게 혹시 네가 죽을 병에 걸린게 아닌지, 나 몰래 투병을 해야해서 나에게 짐을 지운다는 생각에 나를 이토록 야멸차게 버리는게 아닌지 물었다.
혹시 병원에 들어가면 머리라도 감겨주고, 양말이라도 신겨주며 같이 있어주려고. 내 사랑은 그대로이니까.
아니란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좋아했다는게 진심은 아니라고 했던 너의 말을 믿었다. 누굴 좋아하고 뭐 그런건 없던 일이고, 그냥 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것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된거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며칠 뒤 회사안 나의 측근들로부터, 네가 그여자와 단둘이, 멀쩡하게, 아침도 먹고 점심도 먹고 산책까지 한다는 기막힌 얘기를 들었다.
정말 돌아버릴것 같아서 이 이야기를 시어머니한테 말했더니, 되려 나를 미친사람 취급했다. 우리 아들한테 물어보니 오해라는데, 안타깝지만 네 자신을 지키길 바란다,
고 답하시더라. 그러면서 우리애가 이렇게 싫다는데, 네가 이혼해주면 안되겠니, 하셨다.
나한테 좋은 시부모는 아니었어도, 아들에겐 좋은 부모라고 생각했었는데, 눈감은채 모르쇠 하는 그들을 대하며 희망도 사라졌다.
나는 이혼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감사하다.
나를 떠나는 네가 죽을병에 걸린게 아니라서.
나를 떠나도, 건강히 잘 살걸 알게되어서.
내가 너를 좀 미워하더라도, 네가 나몰래 혼자 아프진 않을거라서, 마음이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