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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빵 Dec 06. 2024

5. 신혼 이혼,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을까

결혼이란 한사람만 평생 사랑하겠다는 약속이라 생각했다


5년간의 연애를 통해 내 사람이라는걸 확신하고 결혼을 했다. 나는 내가 결혼에 실패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신 있었다. 알콩달콩 서로만을 위하는 가정을 만들 거라고 확신 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두고 집을 나가버리고

이혼을 종용하면서

네가 버린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정말 걱정이 안되냐고 묻던 나에게,

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지낼지 잘 알지만 우리가 이제 서로를 걱정해줄 사이는 아니지 않냐고 했던 네 덕분에,

내 인생에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을 겪으며,

나는 계획에 없던 도피를 선택했다.


남편이랑 알뜰살뜰 잘 모아보자며 살림을 합쳤던 것 때문에 내 통장에 현금도 없는 주제에 냅다 2주 휴가를 내고 먼 나라로 와서, 현실적인 고민들로부터 도망쳐 나는 연간 플랜에 없었던 스페인 여행 중이다.


신혼 여행지가 프랑스였기 때문에, 스페인에서 프랑스를 떠올릴 때면 여전히 쓰리고, 먼 나라에 왔다는게 완연히 도망치지 못한 것임을 알고, 가끔 한국에서 연락이 오는 예비 전남편의, 짐 빼겠다 미안하다 돈은 어떻게 정리할거냐 뭐 이런 말들로부터 내가 완전히 도망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튼 나는 여행이 꽤 행복하다.



혼이 까,

나는 결혼이 평생동안 배우자만을 사랑할 결심고 생각했다.


결혼해보니 내 남편이 못나 보일 때가 있었다. 수영도 못하고, 운전하는 것도 마음에 안들고, 자기 부모님한테 하는 것도 마음에 안들고. 몸매도 썩.


지금 나의 지난 과거를 돌아보자면..


나는 내 남편의 못난 점이 보일 때마다 덮으며, 내가 나쁘고 내가 못났다고 자책했고,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를 바꿔보려고 노력했으며,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했다. 내가 내 사람을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으니 제발 내 마음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제발 내 노력을 헛되이 하지 말아달라고. 우리 가정을 지키게 해달라고


처참하게 내팽개쳐진 나의 짧은 결혼 생활을 돌아본다.

진심이었고, 아낌없이 했다. 내 부모님처럼 단란한 가정을 일구는게 나에게 허락된 삶이 아니라면, 나는 아쉽지만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 만나긴 하겠지, 가끔 데이트도 할 테고, 사랑도 하겠지. 그런데 이제 잘 모르겠다. 이만큼 노력하고 이만큼 아팠는데 내가 또 결혼을 지는 모르겠다.


이제 부질 없지만, 그냥 내 진심을,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이혼이라는 평가로 나의 과거를 종결할테니,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결혼의 숭고한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했는지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 와서 나에 대해 생각한다.

원래 여행이란 현실에서 한발치 물러나 나와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이 아니던가.

패배자로, 실패자로, 이국 땅에 서서. 나는 혼자가 될 미래를 그려본다.


그래 어쩌면 5년 연애와 1년 반 결혼이란 짧은 시간, 아름다운 드레스 입고 우아하게 결혼하고, 남들처럼 둘이서 손잡고 여행하고 맛있는것 먹으러 다니고 시시콜콜 일상을 토로했던 순간들이 내 인생에도 분명히 존재했던것 자체가 행복이었고 축복이었겠지. 짧았을 뿐 안해본것보단 낫지 않겠나 좀 쓸쓸하고 마음이 춥지만 그래 그렇다 받아들여 본다.


내가 여행을 떠난 사이

그는 나머지 자기의 가구들까지 모든 짐을 가져갔다.

우리 집에 그의 것은 남은게 다. 우린 이렇게 이별하고 나도 우리가 손수 꾸며왔던 집을 떠나가겠지.


스페인 길거리 위에서 만난 나이든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다니는게 유난히 예뻐 보인다.


같이 늙어가는게 당연히 나의 미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때는 나와 가장 가까웠던 이가 이젠 각기 다른 자리에서 다른 하늘을 보며 다른 생각을 한다 걸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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