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궁금해서 시작했다.
예술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살고 있는지. 이제 삼일째라 특정 결과를 공유할 수는 없지만 인스타그램 스토리의 Poll 스티커를 통해서 간단히 알아볼 수 있어 흥미롭다. 물론 이 결과를 논문이나, 소논문에도 쓸 수는 없겠지만은 이걸 시작으로 제대로 된 설문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혼자 소소하게 즐거워하며 퇴근 후에 꼼지락꼼지락 Poll을 만들어보곤 한다.
요즘은 앤디워홀이 말한 대로 15분 만에 유명해질 수 있을 만큼 내 생각과 감정을 어떤 매체로 표현하기가 너무 용이해졌다. 찰렌지는 내 생각과 감정을 아는 것.
다들 본인이 어떤 생각인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잘 알며 살고 있나?
언제나 함께하는 내 몸, 내 머리, 내 가슴인데 내가 나를 잘 모르겠는 상황이 너무 많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아니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그래서 요 몇 달 브런치에 글을 쓰지도 못했다. (그 와중에 생사확인 해주신 몇몇 작가님들, 감동입니당)
불혹이라던 마흔은 요즘 시대에는 해당하지 않는 건가? 예전엔 정말 마흔이 되면 불혹의 상태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믿을 수가 없다. 누가 만든 말이야, 마흔이 불혹의 나이라는 것? 내가 느끼는 사십 대는 삼십 대만큼 여전히 수많은 유혹과 찰렌지로 가득 찼고 또 그만큼 새로운 기회와 시도가 가능한 세상이다. 내 사십 대는 안정과 편안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유독 얼굴 볼살이 많은 나는 이십 대가 되면 볼살이 다 빠져서 통통한 볼살이 그리울 날이 올 거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여전히 볼살이 많아 배신감을 느끼는 것처럼.
직접 와보니, 직접 해보니 듣던 것과 다른 것이 너무 많다 이 세상. 에브리지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 건지 뭔지. 다 내가 만든 상황이고 내가 그 오리진이라는 것도 잘 안다. 한번 사는 세상,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살고 싶은 나의 욕심이 만들어 낸 지금 나의 세상인 듯.
놀랍게도 두바이에서 <파묘>가 개봉했다. 민속 신앙의 내용이 강해서 종교적인 콘텐츠에 민감한 아랍에미리트에서 이 영화 상영을 허용한 자체도 놀라웠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외국인들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다. 돈 많이 들이지 않아도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하면서, 동아시아 문화의 독특하면서도 서아시아(중동)와의 비슷한 점들, 또 연기자들의 연기에 감동했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화림을 연기한 김고은이 일본 도깨비 오니를 불러내는 씬에서 소복을 입은 고운 할머니가 화림을 지켜주는 장면이 감동이었다. 무섭고, 강하고, 거대하지도 않지만 부드러우면서도 굳건한 모습이 강대국들 사이에서 우리만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는 한국의 모습 같아서 괜히 소름이 끼쳤다. 두바이에서 외국인들 사이에 껴서 아랍어와 영어의 자막이 있는 우리 영화를 보니 나도 모르게 국뽕이 스멀스멀. 미국사람들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항상 느끼겠지만은. 풉.
일제 강점기 때, 명산에 쇠말뚝을 박아 조선 인재의 맥을 끊으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실화였나?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는 시공간에 대해서도 항상 궁금했었는데 <파묘>는 사람들이 믿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서 정말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나는 이런 정답이 없는 이야기들에 끌리는 듯.
그러네... 정답이 없는 것들을 좋아하니 내 인생이 복잡할 수밖에. 정답이 있는 길로 가야 마흔에 불혹이 되는가 보다. 주절이 주절이 글을 쓰다 보니 이렇게 깨달음도 얻고.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어디 하소연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앞으로 더 열심히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인싸이트나 정보력 강한 글은 아니더라도 저의 하소연 사이사이에서 기대하지 않은 위로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시니 함께 해요. 갑자기 존댓말로 마무리하는 글이 되어버린 오랜만에 쓴 글은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