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봉낙타 Sep 16. 2024

[늘 변화 중인] 예술

발견, 감사, 지속

무라카미 하루키가 로마로 이주하여 떠돌이 거주자로 살기로 결심했을 때, 마흔을 앞두고 자신의 삶에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서른을 앞두고 두바이로 이주하기로 한 것이다. 왜 그랬는지 여러 번 생각해 보았지만, 그 정확한 이유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자신이 속한 곳을 떠나는 일은 언제나 도전과 설렘이 있다. 장 그르니에가 말했듯, 그렇게 떠남으로써, 낯선 곳으로 가면서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바이로 이주했던 그 시절을 돌아보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 현실과 꿈의 사이 어딘가에 떠있는 듯하다. 나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떠돌며 이곳에 정착하려고 노력했다. 동시에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곳에 아는 사람은 몇 명 없었고, 그들 역시 나를 잘 알지 못했다. 나는 낯선 존재였고, 내 주변의 모든 것도 낯설었다.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이곳은 나를 무엇이든, 혹은 어떤 것으로도 바꿔 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바라본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믿을 수 없었다 - 사막이 없는 한국에서 온 나는 이 허허벌판에서 무엇이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친구들을 따라 오프로딩 트립으로 사막에 갔을 때, 나는 베두인들, 낙타, 가프 나무, 알 수 없는 사막 식물들, 그리고 수많은 낙타 농장을 만났다. 베두인들은 언제든 이동할 준비가 된 상태로 생활한다. 그들은 바람의 소리를 듣고, 모래의 변화를 몸으로 관찰한다. 사막의 듄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고, 우리는 쉽게 길을 잃었다. 사막에서 GPS는 생명줄이었다. 


베두인들에게 변화는 일상이다. 사막은 겉으로 보기에는 늘 같아 보이지만, 결코 같은 날이 없다. 이제는 사막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세계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변화가 아무리 미세해도 말이다.


인생에서 나는 이것을 배우고 있다 - 아주 작은 변화도 여전히 변화라는 것을. 그래서 발견하고, 감사하며, 계속 나아가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늘 변하고 있는 논밭의 정물화, 샤이카 알 마즈루 (Shaikha Al Mazrou, 2022)*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자신에 대하여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거나, 내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기에? 아마 이런 생각은 다만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 즉 단순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하여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게 마련인 힘이 결여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환상에 속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같은 타고난 부족함을 무슨 드높은 영혼의 발로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그런 비밀에 대한 취향이 남아 있다. 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별 것 아닌 행동들을 숨기기도 한다. 

비밀스러운 삶, 고독한 삶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삶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 꿈이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믿어 왔다. 루소는 에름농빌에 숨어 살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부대꼈다. 그러나 비밀스러운 생활이라면 예를 들어 데카르트가 암스테르담에서 영위했던 생활이 바로 그런 것이다. 도무지 변화라곤 없이 단조로운 데다 계속적이며 공개적인, 그리고 극단적으로 단순한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데카르트는 그 비밀을 충실하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암스테르담에서 그가 살았던 집에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기념판을 붙여놓았지만 사실 그 집은 시내 한가운데 있는 평범한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보란 듯 드러내 놓은 범속한 생활 덕분에 그는 남들과 떨어져 지내는 혜택을 얻은 것이다. '억세고 활동적인 데다가 남의 일을 궁금해하기보다는 자기 일에 더 골몰하는 그 대단한 백성들의 무리에 섞인 채, 사람의 왕래가 가장 잦은 대도시가 제공하는 편리함은 골고루 다 누려 가면서 나는 가장 한갓진 사막 한가운데서 사는 것 못지않게 고독하고 호젓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데카르트의 선택은 하나를 양보해서 둘을 얻는 것이었다. 그는 생활을 완전히 개방해 놓음으로써 정신은 자기만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었다. 

- 장 그르니에, <섬> 중, 케르켈렌 군도



*https://youtu.be/zAsVGA1VhCg?si=ZbCAiSDJXnuFOmK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