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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J Jul 28. 2022

대기업 3년 차, 울다 지쳐 퇴사한 날 2

세상은 넓고 나를 알아줄 회사는 많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이 말을 뱉고 난 후 내 머릿속은 어떤 회사로 이직한다고 거짓말할까에 대한 궁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당시 내가 제일 야근 많이 하는 사람이었던 건 옆 팀에서도 다 아는 사실이었기에, 이직할 곳도 없이 그만둔다고 말하면 회유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일이 힘들어 도망치는 모습은, 그게 사실임에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애써 웃으며 다른 회사로 가게 되었다고, 직무도 맞고 연봉도 맞춰 준다고 말했는데도 본격적으로 '귀한 호구 잡기'가 시작되었다. 군말 없이 주말이고 연차고 기꺼이 반납하는 이런 호구는 다신 없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리라. 연차 날도 '나와야겠는데?' 전화 한 통이면 난 달려 나갔다. 업체 담당자들은 내 번호만 알고 있었다. 왜? 내 번호만 뿌렸으니까. 왜? 나는 거래처 험한 요구도 뒤에서 혼자 울지언정 결국 군말 없이 혼자 처리하는 애였으니까.


- 같이 일하는 인원을 늘려주겠다

- 팀을 바꿔주겠다

- 네가 이직한다는 그 회사는 분위기가 안 좋다

- 연봉 상승 여기만큼은 못 할 것이다


일주일간 출근만 했다 하면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 일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회유부터 그 연차에 지금 연봉보다 많이 받기는 힘들 거라는 가스라이팅까지 방법은 다양했다. 사실 팀을 바꿔준다는 이야기에는 솔깃했지만, 커리어와 전혀 상관없는 팀인 데다가 결론적으로 같은 회사에 계속 다니며 힘든 일에서만 혼자 빠져나가는 그림이 내 호구 같은 성격상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퇴사를 앞두고 인수인계가 시작됐다. 한 거래처 안에서도 여러 명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하고 업무 진행에 필요한 모든 제반 과정도 각 담당자가 해야 하기 때문에 인원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혼자 해왔던 내가. 물론 기존 R&R의 양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내 업무량을 고려해 인수자로 뽑은 인원은 메인 담당자부터 서브 담당자, 미숙할 것을 고려해 넉넉히 뽑은 신규 인원을 다 합쳐 총 5명이었다. 허탈했다. 못 한다는 소리를 못 하면 5인분을 혼자 해야 하는구나. 내가 그만두지 않는 한 계속 나 혼자 했겠구나. 퇴사만이 벗어날 수 있는 굴레였구나.


인수인계를 받던 중 메인 담당자가 '이걸 어떻게 혼자 다 하셨어요..?'라고 물었다. 대면으로는 차마 다 하지 못해 집에 가서 인수인계 파일을 별도로 만들어야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했던 일을 세분화하고 정량화하고 나니 도저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음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이걸 어떻게 혼자 다 했을까. 그리고 정말 다들 내가 힘든 걸 몰랐던 걸까 아니면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던 걸까?


그렇게 우리 엄마 아빠를 잠시나마 기쁘게 해 준, 내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한, 한 때는 자랑스러웠던 회사를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걸어 나왔다. 왜인지 명패와 명함은 꼭 챙겨가지고서.




천만 원이 넘는 퇴직금이 들어왔다.


하지만 나에겐 여행이나 쇼핑 등으로 기쁘게 홀랑 써버릴 수 없는 돈이었다. 수입이 없어진 지금 이직에 성공하기까지 생계를 위해 사용해야 할 돈이니까. 언제까지는 재취업에 성공해야 한다는 마지노선을 정했다. 마음 한 편에는 '퇴직금 다 쓸 때까지 이직이 안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부모님은 대학 졸업 전 취업해서 남들에 비해 쉼 없이 일해왔으니, 반년 정도 천천히 쉬며 알아보라고 하셨다. 돈 걱정은 하지 말라면서. 하지만 내 사전에 이미 경제적 독립을 한 성인이 다시 부모님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선택지는 없었다.


많게는 하루에 세 군데씩 면접을 보러 다녔다. 모인 면접비만해도 꽤 될 정도였다. 경력직 면접이라는 것은, 정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실무 경력을 끊임없이 물어보는 것이었다. 프로젝트 단위의 집요한 검증을 요구했다. 초반에는 신입 공채 때와 다른 질문과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었으나 면접을 거듭할수록 답변이 구조화되기 시작했다.


퇴사한 지, 아니 백수 된 지 2주. 그날 본 면접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인사팀장, 담당 팀장과의 면접은 완벽했다. 한 시간 동안 모든 질문에 그들이 만족할만한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인사팀장이 말했다.


- 정말 죄송한데, 시간이 괜찮으신가요? 00팀에도 필요한 분이신 것 같아서 그 팀장님과도 면접을 보셨으면 해서요.

- 아, 네. 가능합니다.


그렇게 또 다른 팀장과의 면접이 진행되어버렸다. 면접 말미에는 합격 여부가 아닌 팀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 인력 충원이 급해서 다음 주부터라도 나와주셨으면 하는데 어느 팀이 괜찮으신가요?

- 둘 다 괜찮지만 이 쪽 팀이 해 보고 싶던 일이라 마음이 가긴 합니다.

-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서 연봉협상도 하시죠. 혹시 직전 회사 연봉이 어떻게 되시나요? 작년 원천징수 기준으로요.

- 0000만 원입니다.

- 아...


연봉을 말하는 순간, 면접장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인사팀장은 짧은 탄식 이후로 입을 닫았다. 담당 팀장 두 명도 더 이상 내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일단 알겠으니 내부적으로 검토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며칠 뒤 연락이 왔고,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가스라이팅인 줄만 알았던 '이만한 연봉받긴 힘들 것이다'라는 저주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매일 밤 동생에게 신세한탄을 했다. 몇 주간 듣다 못한 동생은 기분 전환하라며 속눈썹 펌을 예약해 줬다. 집에서 샵까지의 거리는 2.3km 정도 되었는데, 고민 끝에 걸어서 가기로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수입 없는 내가 속눈썹 펌을 받겠다고 대중교통을 타는 게 용납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좋은 곳에 가서 밥을 사 먹노라면, 내가 이런 호화로운 한 끼 식사를 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밖에 모르고 살던 사람에게 일이 없어졌다는 것은, 자유라기보단 상실에 가까웠다. 존재 가치가 증발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면접 날이 다가왔다. 사실 이 회사는 나에게 1년 전부터 오퍼를 보내왔던 곳이었다. 당시에는 솔직히 전 회사가 다닐 만했기에 아무리 좋은 회사에서 오퍼가 와도 현실에 안주한 내 마음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나는 나를 써 줄 회사가 너무나 간절해졌다. 그렇다고 1년 만에 오퍼에 답하자니 괘씸죄(?)로 탈락할까 걱정이 되어, 다른 채널로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다른 루트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다. 다행히도 면접 날짜는 빠르게 잡혔다.


면접 당일이 되었다. 이곳은 분명 경력, 대학 전공 등 다양한 분야를 살려 일할 수 있어 상호 간 납득이 잘 되는 포지션이었다. 사실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들이 이미 1년 전 나를 열심히 서치하고 분석해 오퍼를 보냈다는 것부터가 나에게 유리한 면접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잘 봐주겠어!'라고 굳게 마음먹은 면접이었는데, 면접관들은 다른 방향으로 나를 당황시켰다.


- 혹시 대답하기 불편하시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예민할 수 있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희가 감히 평가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는데 혹시 그렇게 들리셨을까 우려됩니다.

- 중간중간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대화 흐름에 상관없이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 잡아드리겠습니다.


친절의 말을 넘어선 '존중'이었다. 공채라는 잘 짜인 평가 시스템을 겪은 나는, 경력직 면접이 어느 정도 평가의 성격을 띤 채 흘러가는 게 편했다. 내가 아는 방식이고 대처해 온 방식이니까. 근데 이 회사는 오히려 평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가장 경계하면서, 신원 파악보다 내 의중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3년 차 사회초년생은 처음 겪어보는 친절한 인터뷰에 의아한 1시간 반을 보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남자 친구가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찾아온 예쁜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그때, 메일 도착 알림이 떴다.


'000님의 면접 결과를 안내해 드립니다.'


요 근래의 데이터 때문인지 불합격일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불합격 통보라면 남은 데이트를 웃으면서 잘 보낼 자신이 없었다. 입 밖으로 한숨을 내 쉴 힘조차 없어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던 것 같다. 그리고 메일을 눌렀는데..


- 어...? 어...?

- 왜? 누군데?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제안 연봉: 0000만 원'


이직에 성공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연봉이 올랐다. 그것도 아주 많이. 머릿속에 줄곧 떠다니던 '어디 가도 이만한 연봉 못 받는다'라는 저주가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백수 된 지 한 달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혹시 언젠가 한 루프탑 카페에서 누군가 울먹이며 남자 친구와 껴안고 빙글빙글 도는 걸 봤다면 그건 그 사람이 백수 된 지 한 달만에 재취업에 성공해서 그런 것이었으므로 너른 양해를 구한다.


아무튼 나는 그날부로 알게 되었다.


세상은 넓고 나를 알아줄 회사는 많다는 것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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