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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Mar 22. 2024

외치면 돼

나의 길을 가고 있다

지쳐버린 어깨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어쩌면 이렇게 초라해 보일까
똑같은 시간 똑같은 공간에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끝은 있는 걸까 시작뿐인 내 인생에
걱정이 앞서는 건 또 왜일까
강해지자고 뒤돌아보지 말자고
앞만 보고 달려가자고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뒤처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


- 가수 ‘마야’의 노래 《나를 외치다》 중에서 -


마야 3집 앨범 <Road To Myself> 커버


  마야의 3집 앨범 「Road To Myself(2006)」의 타이틀곡으로 명실상부 마야를 대표하는 노래이다.  이원석이 작사, 작곡했는데 많은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노래로 평가받고 있다.


  이 노래 또한 많은 가수들의 버전이 있지만, 왠지 나는 이 곡만큼은 원곡을 뛰어넘은 사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 시절의 느낌이 내 가슴을 움켜쥐고 있나 보다.




   얼마 전 일이다. 작년 연말부터 한 번 보자고, 밥 먹자고 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일정을 못 잡다가 드디어 어렵사리 자리를 마련했다.


  회사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같이 근무를 했거나 업무로 얽혀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알게 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직장이라는 특성상 대부분의 사람은 그다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런 데면데면한 관계들이다.


  가끔은 회사 내에서 일하다 만나 조금씩 익숙해지다 보면 유난히 정이 가고 신뢰가 쌓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날의 모임도 서로가 그런 편안한 유대감을 공유하는 비슷한 연배의 남자 셋이 만나는 자리였다.


  그날의 일정을 잡은 그는 꽤 많은 사전 준비를 했었나 보다. 평소에 가보지 못한 색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를 찾았고, 그 집의 시그니처 요리를 미리 주문해 두었다. 덕분에 우리는 눈으로도 입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색다른 분위기의 우곳간


  맛있는 안주와 드높은 술잔에 더해 오랜만에 각자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꽃으로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웠던 우리는 여흥을 즐기기 위해 ‘노래방’에 가기로 결정했다. 




  노래방이라니! 그날은 평소 나답지 않게 흥에 너무 취했다. 그런 어리석은 결정에 동참하다니 말이다.  


  노래방에 가 본 지 꽤나 오래되었다. 지난 코로나 시기는 물론이고, 더욱더 오래전부터 노래방은 나에겐 이미 그저 그런 전 시대의 유물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도 그날따라 난 노래가 부르고 싶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내 못하는 노래 실력을 보여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우린 스스럼없이 각자 부르고 싶은 노래들을 불렀다. 가만 들어보니 내 노래 실력이 우리 중에는 제일 나은 것 같아 더욱 신났다.


  그런데 몇 곡 부르다 보니 그만 밑천이 드러나고 말았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부를 노래가 떠오르지 않았다. 오래전이지만 나도 노래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시절이 있었는데 부를 노래가 없다니 답답하기만 했다.


  ‘예전에는 내가 무슨 노래를 불렀더라?’ 그렇게 과거의 기억 속으로 천천히 헤집어 들어가다 막다른 곳에서 어느 노래와 마주쳤다. 그것은 서글픔이자 그리움이었고,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알기 위해 찾게 되는 "북극성"이었다.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알기 위해 찾게 되는 "북극성"


   기억에 노래방이라는 곳을 생애 처음 간 시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은 오후 일찍 학교 수업이 끝나서 들뜬 기분으로 같은 반 친구들 셋이서 큰맘 먹고 노래방에 갔다.


  말로만 듣던 그 노래방 기계를 직접 보면서, 노래모음 책을 넘기면서 나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어린 마음에 우리들은 서로 마이크를 놓지 않고 부르려 했고, 그래서인지 그 좁은 노래방은 너무 더워 옷이 땀으로 다 젖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다음 기억은 대학생활로 넘어간다. 숨 쉴 틈도 없는 수업시간과 바로 이어지는 자율학습까지 늘 꽉 차있던 고등학교 생활과는 달리 대학생활은 시간이 차고 넘쳤다.


  강의도 별로 없던 대학 새내기 시절, 강의와 강의 사이의 공강(空講)에는 삼삼오오 뜻 맞는 친구들끼리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돈이 허용되는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그렇게 부르다 보면 센스 있는 노래방 사장님이 시간을 계속 추가해 주셨고 강의실로 돌아가야 하는데 노래방의 남은 시간이 아까워 강의는 그냥 빼먹고 계속 유희를 즐겼던 당찬 친구들도 있었다.


강의는 그냥 빼먹고 계속 유희를 즐겼던 당찬 친구들


  나는 그런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어설프게 강의실로 돌아오는 미숙아였다. 예나 지금이나 늘 그렇다. 뭐 하나도 똑소리 나게 해내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내 속에 있다.




  군복무를 마치고 어른이 되어 어렵사리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직장생활에서 회식은 업무시간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라는 나로서는 이해(理解)되지 않는 통념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양해(諒解)되고 있었다.  


  원래 술도 잘 못 마시는데 노래방까지 따라가 탬버린을 치고 온 날은 무거운 몸을 방에 뉘면서 애달픈 마음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리곤 다음날 부스스 일어나 출근해서는 그 대단한 통념이 맞음을 증명하기 위해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다행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오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모이지 않게 되었다. 당연히 노래방에 가자고 하는 사람들도 사라졌다. 그렇게 운 좋게도 나는 마음의 큰 짐을 우연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곤 한참이나 노래방에 대한 기억이 없다가 최근에 딸애가 커가면서 가끔 호위무사처럼 딸애를 따라나선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었다.


각종 게임과 코인 노래방이 있는 키즈 카페


  내가 부르는 노래가 얼마나 오래된 '화석'인지를, 딸애가 듣기엔 너무나 지루하고 거북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딸애가 부르는 노래는 마치 외계어로 만든 노래인양 나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 이후부터 나는 노래방이 아예 싫어졌다. 나라는 존재가 이 시대에서 뒤처진, 이젠 소용이 없는 고물이 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노래방을 피하고 또 피했다.   




  30대가 되면서 갑자기 나를 불쑥 찾아온 ‘현실’이라는 놈은 나의 자존감을 끝없이 끌어내렸다. 그때까지 생의 목표였던 많은 것들에서 멀어졌고 많은 이들을 떠나보냈다. 모임이 있어도 부끄러워서 못 나갔고, 수중에는 돈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때이기도 했다.


   살다 보니 가벼운 실수조차, 작은 여유조차 나에게 허용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응원 한번 없이, 위로 한번 없이, 더 잘하라고만 다그쳤다. 실수라도 하면 큰일 날 것처럼 나도 모르게 요구했던 완벽을 가장한 조급함,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나를 더욱 냉소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잘하고 있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러나 대부분 잘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힘듦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힘들어하고 답답해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잘하고 있다는 타인의 최면에 길들여진 까닭이다.


잘하고 있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혼자 가끔씩 불렀던 노래가 ‘마야’의 <나를 외치다>였다. 좀 더 강해지기만을 원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가던, 가던 길 중간에 힘이 다해 버티기도 어려웠던 내게 큰 힘을 주던 노래였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가며, 당당히 나 자신을 외칠 수 있는 나이기를 바라며 이 노래를 불렀다.




  얼마만인지 알 수도 없는 긴 시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나는 다시 노래방에서 <나를 외치다>를 맞이했다.


  현실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치열하게 뛰었던 시간들 동안 눌러놓았던 내 마음 감정들이 노래와 함께 떠올랐다. 명치를 누르고 있던 답답한 마음들이 하나 둘 보였다.


  이건 무엇일까? 아픔이 느껴졌다. 그때가 참 힘들었구나, 외로웠구나, 두려웠구나. 다행히도 이제는 힘을 좀 빼고 예전보다 성장한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시간이 되었다.


  갑자기 지금까지 살아온 나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졌다. 누가 뭐라 해도, 인생길에서 많이 흔들리고 넘어졌다 해도 내 삶을 부둥켜안고 나의 길을 걸어왔다고 외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에게 건네는 노래를 부르자 가슴이 뛰고 따뜻해지며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고맙다.


  이렇게 잘 살아줘서!

#마야 #나를 외치다 #노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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