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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Feb 04. 2024

별은 영원히 빛나고

'나의 아저씨'


드라마 속 주인공 남자들은 전부 능력자다.

의사, 변호사, 사업가와 같은
선망의 직업을 갖고 있든가,
기억력, 추리력 같은
탁월한 지적 능력을 갖고 있든가,
아예 현실세계의 어떤 구애도 받지 않는
외계에서 온 사람이든가,
어떤 식으로든 능력자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실제 그런 능력자들이 있었던가.
있었다고 한들,
그런 능력자들 덕분에
감동했던 적이 있었던가.

사람에게 감동하고 싶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근원에 깊게 뿌리 닿아 있는 사람들.

여기 아저씨가 있다.
우러러 볼만한 경력도, 부러워할 만한 능력도 없다.
그저 순리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그 속엔 아홉 살 소년의 순수성이 있고,
타성에 물들지 않은 날카로움도 있다.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따뜻함과 우직함도 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인간의 매력’을 보여주는 아저씨.
그를 보면, 맑은 물에 눈과 귀를 씻은 느낌이 든다. (후략)


-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홈페이지에서 ‘기획 의도’ 인용 -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아이유




  또다시 ‘회한'과 ‘비루함’이 날 찾아왔다. 난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그들을 거절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나는 그저 회피하고 싶었을 뿐이다.


  처음부터 그 동영상을 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너튜브’에 올려진 갖가지 동영상들을 휘리릭 내리고 있었다.


  개인 너튜브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썸네일(Thumbnail)’을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많은 너튜버들이 주목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썸네일을 많이 사용한다.


  마치 죽음의 비밀을 알았다는 듯이, 세상의 기원을 발견했다는 듯이, 인생의 행복을 쉽게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듯이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 거기에 줏대 없이 내가 끌려다닐 뿐이다.  


  한참이나 아무 감정 없이 너튜브 세상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문득  ‘세상이 죽을 만큼 지겹고 힘들 때... 당신의 위안이 되어 드릴게요’라는 썸네일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보고 싶지 않았다. 드라마를 당연히 본 적이 없지만 주연  여자배우가 ‘아이유’ 걸 알게 되면서 왠지 불편해졌다. 그녀가 싫어서가 아니라  요즘 너무 잘 나가는 아이돌이 불우한 환경의 "손녀 가장" 역할을 한다는 게 삐딱한 내 맘에 들지 않았다.


정말로 자기 역할을 잘 소화한 '아이유'. 난 아이유에 대한 내 선입견을 바로 잡았다.


  게다가 '그 남자'남자 주연으로 나오기에 더욱 피하고 싶었다. 너무 건조해 메말라 버린 내가 그 남자를 위해 수분을 내어 감성이 남아 있을까 싶어 주저되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쳐 버렸다. 대신 기분을 전환하고자 어느 예능 동영상을 보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그렇지만 계속 아까 스쳐갔던 썸네일이 마치 들춰낸 생채기처럼 내 마음을 자꾸 쓰라리게 했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난 그 영상을 다시 검색했다. 그리고 기꺼이 내 감정의 먹잇감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 영상은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3시간 정도로 편집한 것이었다. 40대 남성과 20대 여성이라는 설정은 내게 나쁜 선입견을 주었다. 아니면 너무 뻔한 '키다리 아저씨'의 재탕이 아닐까 하는 실망감있었다.


  그러나 기대 없이 보게 된 그 드라마는 보면 볼수록 정말로 내게 삶을 이어갈 위안을 주더니 마지막에는 끝내 내 수분을 가져갔다. 아니 나에게 그 이상의 수분을 채워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세상의 통속적인 억측과는 전혀 달랐다. 삶의 고통으로 죽음에 내몰린 서로에게 살려는 의지를 북돋우고 각자의 행복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아이유에 대한 내 선입견은 속 좁은 나의 시샘일 뿐이었다. 아이유는 드라마 속 '지안'의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 냈다. 아이유에 대한 내 입장은 찬사와 애정으로 바뀌었다.


  모든 썸네일이 거짓인 것은 아니었다. 처연하면서도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드라마 OST도 매우 감성적이었다. 아마 자주 들을 것 같다.


아끼는 '이지안'을 위해 쓴소리하는 '박동훈'




  드라마 속 ‘나의 아저씨’는 아무리 현실이 시궁창 같아도 버티고 버티고 참아 결국 웃었는데... '현실의 아저씨'는 아니었나 보다.


   "아무리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라고 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하나도 안 괜찮고 아무 일도 아닌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상처고 비수고 아픔이고 상처이.


  그래도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등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의 선택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여러 말이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간에 확실한 건 이미 지나치게 과한 희생을 치렀다는 것이다. 잘잘못을 떠나, 온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버틸 재간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약초 사건이 사실인지 어떤지 나는 모른다. 경찰의 수사에 문제가 있었는지, 언론의 태도가 어땠는지, 자극적인 폭로성 메시지가 얼마나 온 나라에 퍼졌는지, 함정을 만들어 돈을 뜯어내려 했던 사기꾼들이 얼마나 비열했는지 나는 듣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


  그런데 왜 난 이렇게나 서글플까?


  드라마 속 그의 대사처럼 그렇게 버텨 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다 아무것도 아니야. 쪽 팔린 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거? 다 아무것도 아니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나 안 망가져... 행복할 거야... 행복할게......


그 남자의 뒷모습이 이리도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시절엔 시간이 지나면 걱정거리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힘겨운 삶의 회한과 비참함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나 그것들이 자기 자신을 갉아먹도록 방치하고 좌절해 버린다면 삶은 더욱 구차해져생을 포기하고픈 충동에 빠진다.


  '나보다 훨씬 뛰어나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 많은 이로부터 사랑받던 특별한 사람들도 이리 훌쩍 떠나는 마당에 나같이 별 볼 일 없는 소시민이 뭐가 그리 미련이 남아 매일 세상사에 질질 끌려다니면서까지 살아야 할까?'


  이런 위험한 생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종종 있다. 그냥 홀가분해지고 싶고 족쇄에서 자유로워지고픈  유혹! 그 집요한 유혹을 이겨내려면 나를 잃고 슬퍼할 이들이 있음을 생각하자.


  사랑하는 내 사람들이 흘릴 눈물을 깨닫고 내 눈물을 이겨내고자 노력해야 한다. 나를 알아주는 관계들을 찾아 서로 위로를 주고받아야만 한다. 그래야만이 그 비루함을 이겨내 삶의 차가운 외력들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우연히라도 그의 예전 영화와 드라마를 접할 때면 그 남자를 떠올릴 것 같다.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친절하고 양심적이었을 것 같은 그가 못내 그리워질 것이다.




기다릴게 나 언제라도
저 하늘이 날 부를 때
한없이 사랑했던 추억만은 가져갈게

우리 다시 널 만난다면
유혹뿐인 이 세상에
나 처음 태어나서 몰랐다고 말을 할게

나 약속해

- SKY(최진영)의 노래 '영원' 중에서


고인이 된 '최진실, 최진영'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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