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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Apr 02. 2024

문화강국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중략)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중략)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 김구, 《백범일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중에서

백범일지 친필본


  《백범일지》는 독립운동가인 백범 김구 선생이 쓴 자서전이다. 1929년(상권)과 1943년(하권) 각각 집필된 두 권의 친필본은 1997년 6월 1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45호로 지정되어 현재 백범기념관에 보관 중이다.


  《백범일지》의 끝에는 <나의 소원>이라는 글이 있다. 그중에서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문장을 보면  김구 선생이 바라는 나라에 대해 쓰여 있다.


  자유와 평화가 허용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를 겪으셨기에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나라가 독립하기를 바라셨다. 아울러 독립을 이룬 후의 미래의 모습도 생각하셨는데,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는 나라를 원하셨다.


독립 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1876~1949)




  지난주에 아내와 둘이서 영화를 보았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애가 이제 어엿이 혼자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감개무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품 안의 자식이 떠날 때를 대비한 마음의 준비라고 해야 할지.  


영화 '파묘' 포스터


  그날 본 영화는 ‘장재현’ 감독의 『파묘(破墓)』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포(오컬트) 장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내뿜는 공포에 짓눌려 스멀스멀 올라오는 두려움도 불편하지만 그 후유증이 더 문제였다. 소름 끼치는 감정의 잔상이 계속 남아 꿈속으로까지 이어져 겁에 질려 깨곤 했다.


  특히, 2016년에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哭聲)』 은 보는 내내 너무 소스라치게 놀라 이야기 전개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날 난 영화 속에 갇히는 “가위”에 눌려 큰 곤욕을 치렀고 지금까지도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 이후론 공포영화는 절대 보지 않았다. 나는 외부의 감정적 침입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다. 그랬던 내가 이번에는 공포영화를 선택했다.


  먼저 본 지인들이  영화 '파묘'는  마니아들이 즐겨 보는 전형적인 공포영화가 아니라 우리 문화의 정서를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격려해 준 덕분이었다.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


  사람들의 입소문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영화를 다 보고 클로징 크레디트(closing credits)가 올라가는 스크린을 보면서 나는 벅차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가까스로 달래야 했다.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영화 ‘파묘’는 지난 2월 22일 개봉, 3월 24일 누적 관객 수 “천만 명” 돌파에 성공하여 올해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다. 이제 파묘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비상하고 있다.


  해외 133개 국에 판매되어 신선한 반향을 불러왔고 엄청난 흥행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각국의 배급사들은 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과 예상을 뛰어넘는 스토리 전개에 대해 높은 평가를 고 있다.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드라마와 대중음악이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신조어인 ‘한류(韓流,  Korean Wave, Hallyu)’는 이제 K팝, K푸드, K드라마·영화, K패션, K뷰티, K의료, K웹툰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K컬처>라는 지위로 격상되어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BTS" 라스베이거스 콘서트


"블랙핑크" 애틀란타 콘서트


  ‘BTS’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가 되었고, ‘블랙핑크’는 유튜브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자랑한다. 전 세계인이 시청하는 넷플릭스에서 ‘오징어게임’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시청 횟수를 기록하고 있고,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포스터


영화 '기생충'  포스터


  전 세계의 MZ 세대들에게 한글은 가장 배우고 싶은 언어가 되었고, 한국은 가장 방문하고 싶은 국가가 되고 있다. 이쯤 되니 서구의 언론에서 <K컬처>를 분석하는 글이 쏟아진다. 변두리의 모방이 아닌 현대 문명의 ‘주연’으로 다루고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한 세기 만에 변방의 후진국에서 세계의 중심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는 새로운 기술과 보편적인 주제라는 두 가지 영역의 융합을 들 수 있다.




  먼저, 인터넷 기술이 구현하는 플랫폼이 기존의 서구가 주도하는 문화 유통구조를 뛰어넘어 한국 문화 콘텐츠를 세계인의 눈앞으로 불러왔다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원더걸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했던 노력을 BTS는 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에 OTT 서비스의 활성화와 제작비 지원 환경이 날개를 달아줬다. 이전에 언어적 문제로 접근이 어려웠던 한국어 콘텐츠가, OTT의 활성화로 다국어 더빙이 지원됨으로써 세계인의 접근성이 현저히 낮아졌다.


전세계 OTT시장의 블루칩이 된 한국 콘텐츠


  대한민국의 문화 경쟁력을 나타내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즉,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정서가 세계에서도 잘 먹힌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적’ 이야기, 다시 말해 사랑, 가족, 타인에 대한 애정 등 사람 냄새가 물씬 나면서 악인과 의인이 만들어내는 서사구조가 매력적으로 비친다고 한다.


  또한, 한국에서 주로 다뤄지는 계층 간 격차 등의 사회 고발적 주제 역시 해외에서도 문제가 되는 내용이기에 많은 호응을 이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가장 ‘한국적인’ 주제의식이 가장 ‘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문화'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 온 의식주를 비롯해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등을 아우르는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모든 생활 자체가 문화라는 말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강조하셨다. 


  김구 선생은 현재 우리나라의 이런 위상을 과연 상상이나 하셨을까? 만약 하늘에서 우리나라를 내려다보실 수 있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연일 들려오는 영화 '파묘'에 대한 해외 반응을 비롯해 세계로 뻗어가는 <K컬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내가 <K컬처>의 주변인이 아니라 '주체'이기에 더욱 가슴 벅차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길 강렬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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