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현 Oct 07. 2024

무가지보(無價之寶)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사유의 방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우리나라의 국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한 공간이다.

어둡고 고요한 복도를 지나면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얹고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을 만나볼 수 있다.     

뛰어난 주조기술을 바탕으로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넘치고,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근엄한 반가사유상의 모습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고뇌와 깨달음을 상징한다.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사유의 방] 전시실 소개 인용 -   















  인간사! 삶의 변화와 불완전한 욕망과 어찌 될 수 없는 욕심이 고통의 뿌리라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사유의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좁고 긴 어두운 통로를 지나가야 한다.



  매일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어둡고 두려운 통로지나간다.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며, 이를 벗어날 방법에 골몰하는 사람들.

전시실로 들어가기 전 좌측 벽면에 <순환>, <등대>라는 두 개의 미디어아트 영상을 만난다.




  온갖 시름과 걱정의 사바(娑婆)를 벗어나 잠시 조용해지고 싶을 때 찾아보게 되는 곳.

갑자기 밝아진 시야와 넓어진 공간이 사유의 확장성을 일으킨다.





  이곳에는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공간이 있다. 바로 [사유의 방]이다.

서서히 드러나는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




  여기에 앉아계시는 미륵보살 두 분. 무얼 그리도 깊게 생각하고 계실까?

미륵보살 두 분의 나란히 앉아있는 자태가 사뭇 곱다.




  바라보면 볼수록 느껴지는 지긋한 미소는 감동에 가까울 정도로 전율이 일만큼 평온함을 머금고 있다. 살짝 다문 입술에서 강물 같은 평정심이 새어 나온다.

이렇게 가까이서 뵙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며 미술사학자인 최순우는 이 미소에 대해 "슬픈 얼굴인가 보면 그리 슬픈 것 같지 않고, 미소 짓고 있는가 하면 준엄한 기운이 누르는,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이라 했다고 한다.


  검붉은 우주가 담긴 사유의 방에서 두 점의 국보 반가사유상이 타원형 진영대 위에서 은은하게 빛난다. 더욱이 은은하게 퍼지는 고졸한 미소는 종교적 숭고미까지 느끼게 한다.




  이번이 두 번째인 국립중앙박물관 탐방은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표면적으로는 딸애의 체험학습을 위한다는 목적이었지만 실은 내가 가보고 싶어서였다. [사유의 방] 상설 전시를 최근에 알게 되면서 어떤 소명의식 같은 것이 날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유의 방]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인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대표작 <모나리자>처럼 두 반가사유상을 한국 문화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려는 기획 아래 조성됐다고 한다. 바로 그 점이 내 심기를 자극했다. 


  얼마 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세계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걸작' 1위에 꼽혔다는 기사를 보았다. <모나리자> 앞엔 늘 인파가 몰려있기 때문에 이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더라도 작품과 통제선 사이 간격으로 인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는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갤러리


  우연한 기회로 20여 년 전에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볼 수 있었는데 당시의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별도의 전시실도 아니고 인원 통제도 없어 무슨 '대형마트 마감시간 식품 할인코너'처럼 서로 밀치는 통에 작품 감상하기는커녕 기념사진 찍기도 어려운 아수라장이었다.   


  다행인 건지 [사유의 방]은 아직 그 정도의 인파가 몰리지 않는 모양이었고, 독립적인 넓은 전시실에 입구와 출구가 별도로 나뉘어 '두루 헤아리며 생각에 잠겨'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기울어진 벽과 바닥, 천장을 통한 초현실적인 공간 연출과, 벽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와 빛으로,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보며 사유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의도하여 조성되었다. 감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방 내부에는 별다른 설명문도 제공하지 않는다.


사유의 방은 360도 모든 면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한참을 사유의 방에서 보내고 나오니 아내와 딸애는 벌써 다른 전시실로 고고씽이었다. 내가 너무 오래 저 세상 시간에 골몰하느라 기다리다 지쳐버렸나 보다. 출구로 나오니 바로 [기증관] 입구이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현재의 용산에 자리 잡으면서부터 기증관은 있었으나 공간 구성이 다소 혼재되어 다른 전시실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던 게 사실이다. 지난 2여 년의 많은 고심과 논의 끝에 올해 초 재개관되었다고 한다.


  분류된 기증자의 수집과 기증 유형, 기증품의 성격들은 매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촘촘히 연결된 관계망 속에 존재한다. 기증의 발자취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와 긴밀한 관계 속에서 함께 흘러왔음을 깨달을 수 있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천장에 닿을 듯한 높은 선반에 기증품들이 가득 차 있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천장에 닿을 듯한 높은 선반에 기증품들이 가득 차 있어 그 위용에 압도당한다.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할지 당황하는 순간 어느 옆에 마련된 공간에서 기증자들의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 제작된 '기증, 기억을 나누다' 영상이 연신 흘러나왔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이 귀하고 소중한 문화재를 기증했을까 궁금해졌다. 간송 '전형필'의 우리 문화재 사랑 이야기야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증에 참여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증 문화재는 그 자체로도 소중하고 아름다운데, 이를 기증한 사람들의 사연들을 알고 나서 보니 더 설레고 감탄하게 되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너 자신을 알라!'


기증자들의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 제작된 '기증, 기억을 나누다' 영상 속 한 장면


  기증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다. 하물며 기증관에 전시되어 있는 들은 하나같이 그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고귀한 보물(무가지보, 無價之寶)들이다.


  언젠가부터 기증자가 정성껏 간직하게 되었고, 결국 기증이라는 행위를 거쳐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자리매김하는 이 과정을 보면서 기증은 나에게서 우리, 개인에서 사회로의 아름다운 진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기증의 뜻을 함께해 주신 분들

  





  한참을 서로 숨바꼭질 하듯 못 만나며 각자 관람하다 지치고 배고파지두가 식당에 모였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밥도 먹고 각자 취향의 간식과 함께한 세 식구의 성토(聲討)의 시간도 제법 흘러 이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차 백미러로 슬쩍 보니 아내는 두 발을 앞 좌석 등에 걸쳐 놓고 자고 있고, 딸애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엄마 몰래 조용히 인터넷 삼매경이다. 물론 딸애도 내 운전석 등에 다리를 걸치고서 말이다. 어쩜 저리도 하는 모양이 똑같은지.


  오늘따라 길도 막힘이 없어 운전하며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데, 서서히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면서 문득 내가 가진 최고의 무가지보(無價之寶)우리 가족의 건강, 같이 보내는 시간과 추억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무가지보는 아무리 위대하고 숭고한 장면에서도 기증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은 무가지보를 모으고 간직하여 나만의 공간에 가득가득 채울 것이다.


무가지보, 우리 가족이 같이 보내는 시간과 추억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