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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나무 Jun 08. 2023

마음을 흘려보냅니다


낯선 이에게서 편지가 왔다. “어, 누구지?" 궁금해하며 봉투를 뜯는다. Thank You 카드다. 카드를 여니 "Dear xx, Thank you for..."로 시작되는 짧지만 따듯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얼마 전 교회 옆집에 사는 Mrs. X의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분은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동료 교수였고 은퇴하신 분이다. 남편과 둘이 살던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었을 Mrs. X의 상실감을 생각하며 위로 카드를 보냈었다. 그것에 대한 감사 카드를 받은 것이다. 위로와 감사와 축하의 메시지를 카드에 담아 나누는 것은 미국인들에겐 일상이다. 소소한 나눔이지만 건네는 마음이 거대하면서도 따뜻함을 품은 호수 같아 좋다. 


Photo by Towfiqu barbhuiya on Unsplash


직장 동료이자 유학 준비를 함께 한 친구인 E와 함께 그녀로부터 작고 하얀 봉투를 건네받으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녀는 우리의 직장 상사이다. 유학 가기 전, 마지막 인사를 전하자 그녀는 환한 미소를 띠며 우리에게 용돈을 건넸다.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빼면 함께 일한 적도 없었고 오며 가며 반갑게 인사를 나눈 것 말고는 가깝다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뜻밖이었다. 그랬기에 더 감사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그분의 나이를 지나오니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잡은 첫 직장. 자신과 비슷한 길을 시작하려는 후배에게 그녀만의 방식으로 응원을 보내고 싶었던 게다. '잘하라' 그리고 '잘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 그것이 다였을 것이다. 그녀도 분명 누군가로부터 받았을 마음을 우리에게 흘려보낸 것임을 나이 들어 알게 되었다. 


선물을 한다는 건 그 사람과 소통하는 채널을 오픈하는 일일지 모른다. 김소연 시인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림책을 선물한단다.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이 되어서 만남을 시작한다"라며 의미 부여를 한다. 말이 최소화된 그림을 통해 정서를 공유한다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자리한 폭넓은 강에 다리를 놓는 일일지도 모른다. 선물이 가교가 되어 두 마음을 이어주고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촉진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 가지를 더해본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보내는 마음은 고여서 머물러있지 않다. 그것은 섬세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 다른 이에게 흘러넘친다. 스필오버 효과(Spillover Effect)다.


Photo by Ekaterina Shevchenko on Unsplash


스페인 여행 중에 배낭여행 중인 대학생을 만났다. 둘 다 혼자였으니 자연스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짧은 여행을 함께 했다. 중간중간 서로에게 인생 사진을 남겨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짤막짤막한 대화만을 나눴으니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없었다. 짧게 스쳐가는 인연일 뿐이었으니. 점심을 함께 했다. 흔쾌히 점심값을 내었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대학생 배낭여행객에게 전하는 나의 마음이었다. 그것이 가닿는다면 이 배낭객은 훗날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것이다. 그것에 따로 말이나 설명은 필요치 않다. 가닿으면 좋은 것이고 닿지 않았다 하면 그뿐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기만 하면 된다


학회에서 이따금 한국인을 만날 때가 있다. 발표 정리를 하고 있는 사이 살며시 다가온 낯선 얼굴. 어색한 미소지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한국인을 만난 기쁨은 어쩔 수 없다. 아내와 함께 참석했단다. 학회가 끝나고 차와 식사를 함께 나눴다. 차를 가지고 오신 그분들은 친절하게도 기차역까지 라이드를 해주었다. 집에 돌아와 Thank You 카드를 꺼냈다. 손쉽게 이메일 한 통을 쓰면 그뿐이었지만 손 편지에 꾹꾹 마음을 눌러 담아 감사의 메시지를 담고 빨간 작은 새가 그려진 우표 한 장을 붙인 후 우체통에 넣었다. 짧은 시간, 내 마음을 담은 작은 행동이 그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누군가가 흘려보낸 마음을 받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흘려보내며 일상을 산다. 소소한 것들이 순간순간 작은 행복을 더한다. 이처럼 반짝이는 작은 빛들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삭막할까. '마음이 닿기를.' 어느 가수의 앨범 타이틀이다. '음악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위로와 사랑 그 어떠한 감정들을 전달하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한다. 우리가 나누는 반짝이는 마음들이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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