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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지 Oct 23. 2024

오늘 나에게 온 낱말 6

잠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일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은 10시간 정도이다. 실제 일하는 시간에 출퇴근하는 시간을 포함해야 하니까. 그리고 나머지 8시간 내외로 잠을 잔다. 그러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6시간 정도가 된다. 이 시간을 많이 갖기 위해서는 잠을 줄이는 것 밖에 없지만 잠이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잠을 자지 못했던 적이 많았다. 그저 공부만 하면 되던 시절에는 책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가끔 재미있는 책이 있어 잠 못 이루게 하면 잠을 안 자고도 그리 힘든지 몰랐다. 특히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책은 기숙사 생활하는 학생들 이야기였다. 여중과 여고를 나온 내게 남녀 공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얼굴이 빨개지던 시절이었다. 기숙사로 가는 길에서, 잠들지 못하는 밤 창가에서, 사감 선생님 몰래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 얼마나 좋았던지.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스쿨버스 시간을 못 맞춰서 버스를 타고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쉬는 시간 10분, 점심시간 20분 정도 자고 나면 거뜬했으니까.

매일 출근하는 시절에는 걱정이 많아 잠을 못 잤다. 하루를 보내고 만족한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늘 동료에게 했던 말이 실수인 것 같아 잠들지 못했다. 동료가 내게 한 말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다 화가 치밀면 잠을 못 잤다. 일이야 내가 미뤄둬서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손 치더라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던 때가 많았다. 


언제부터였나 생각해 보니 5년 정도 된 것 같다. 오늘 나에게 온 시간. 지금이라는 이 순간은 세상에 다시 없을 시간이지만 잠들면 그마저도 없다. 잠들기 전에 많은 것을 하고 싶다. 어제는 운동할 시간이 모자랐다. 운동을 모자라게 했지만 책을 들자 세 쪽을 넘기기 힘들었다. 눈꺼풀은 무거워지고 글자들은 점점 검은 안개 속에 갇혀버렸다. 고개가 땅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느끼면 잠을 자러 가야 한다. 가는 동안 잠이 깰지 모르니 스탠드에 불을 켜고 다시 책을 든다. 그래도 좀 전에 읽은 그 쪽수 그대로이다. 다음 날 아침에 보면.

이런 내 말에 b는 복이라고 했다. 잠을 그리 잘 잔다는 것은 복이 맞다. 새벽 두 시가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약을 먹어야 겨우 자는 사람들에게 나는 참 부러운 사람일 게다. 

집을 정리하기 위해 쓰는 시간, 운동을 하는 시간, 재미있는 드라마를 다 보고도 차를 마시는 시간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시고 드라마를 보며 운동을 한다. 그렇게 시간을 아껴 잠을 잔다. 그래야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잠에서 깨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으므로. 잠만 잘 자도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므로 잠자는 시간은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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