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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지 Nov 18. 2024

오늘 나에게 온 낱말 9

그립다-가을에 참 잘 어울리는 

 '그립다'라는 말 속에는 막내와 엄마, 내 사랑하는 친구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따뜻함이 들어있다. '몹시 보고 싶'은 사람들과 '몹시 필요한'이 들어 있다. 나무에 달린 단풍들을 바라보다 길에 누워 있는 잎들을 보면 더 그렇다. 나무에 달린 잎은 매일 봐도 보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바닥에 누운 잎들은 겨울을 맞은 내 모습처럼 시리다.

  나에게 '그립다'라는 말을 처음 알려준 것은 아들이다. 아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다. 이 말 속에는 부모가 어떤 일을 하느냐도 포함된 것이다. 평범한 회사원인 아빠를 선택할 수 없었듯 선생님인 엄마도 선택할 수 없었다. 아들은 잘해도 본전인 학교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선생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다. 안쓰러웠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전교생 열두명이 다니는 오평분교였다. 아침마다 등교하는 길은 너무 행복했다. 학교가는 길은 산을 넘어서 가야했는데 매일 아침 새로운 장면을 펼쳐주었다. 눈이 오면 운전해서 가기 힘든 곳이었지만 그마저도 눈길을 걸어서 학교에 가는 추억이 되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지역 만기가 되어 다른 곳으로 학교를 옮겨야 했다. 열 살이 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이곳에 계속 다니는 것은 힘들 것 같아. 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해줄래. 엄마를 따라 성주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 엄마랑 같이 다니지만 일찍 일어나야 해. 원래 아들이 다녀야 할 학교로 전학을 오면 엄마랑 떨어지게 되고 아들이 스스로 학교에 가야 해." 아들은 일주일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5일이 지났을 때 엄마랑 떨어지는 선택을 했다.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일어나 같이 밥을 먹고 내가 출근하고 나면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 학교로 갔다. 3월 중순이었던 것 같다. 학기초라 의자에 앉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지내다 털레털레 학교에서 돌아 온 내게 아들은 말했다. "오평이 그리워." 그립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냐고 물었던 것 같다. 아들은 오래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말했다. '계속 계속 생각나고 여기 있어도 그곳에 있는 것 같은 거'라고 했다. 사전에 있는 낱말 뜻을 이것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아들 마음 속에는 그립다는 말이 제대로 새겨졌다. 나에게도 계속 계속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이 있지 않지만 항상 같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촉촉해진다.

  '그립다'는 말에 '몹시 필요한'이 들어 있는 줄 몰랐다. 평소에 그렇게 쓰면서도 이렇게 구분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것과 필요한 것은 엄청 다르다. '몹시 보고 싶은'에는 마음이 들어가 있는데 '몹시 필요한'에는 물건이 떠오른다.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아들과 둘 밖에 없어 위험하다는 이유도, 주택은 일이 많는 이유도 별로 와닿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집에 가기 싫었다. 네모 반듯한 건물에 똑같은 모양으로 뚤린 창문이 너무 차가웠다. 말이 하기 싫었고 집에 오면 방에 처박혀 있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어 멍하니 있거나 책만 읽었다. 다행히 남편이 예민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이사 이야기를 꺼냈다. 집 보러 가보자고 하면 따라 나섰다. 이 집은 어떠냐고 물어보면 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렇게 두 달을 고민하다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주택으로 이사온 후에는 따뜻함이 자리잡았다. 나에게는 마당 있는 집이 '몸시 필요한'상태였나보다. 그리워하던 마당있는 집에 도착해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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