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다-나를 지킨다는 것
퇴근 시간을 정확히 지킨다. 하지만 출근 시간은 지키지 않는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러고 싶어한다. 나도 그렇지만 이러기가 쉽지 않다. 출근 시간보다 먼저 도착한다. 그래야 하루가 여유 있으니까. 어제가 머문 책상을 정리하고 컴퓨터를 켜면 하루가 시작된다. 출근은 일찍 했지만 컴퓨터는 나중에 켠다. 그래야 이 시간에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나만 알 수 있다. 창문을 열고 오늘 하루 머물 공간을 정리하고 커피물을 데운다. 커피포트가 데워지는 소리를 들으며 오늘 아침을 함께 할 차를 고른다. 해야 할 일이 다섯 개 이상 적힌 날이면 커피믹스 두 개로 진하게. 두 개 정도 적힌 여유 있는 날이면 캡슐 커피로 정한다. 창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호사까지는 바라지 못한다. 아무리 일찍 출근해도 커피잔을 드는 순간 일이 시작되어 버린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면 하나둘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늘도 그녀는 오늘도 출근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 한 달 중에 하루 이틀을 지킬까 말까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녀가 출근 시간을 지키면 사람들이 놀라워한다는 거다. 매일 매일 지키는 것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한번 지키는 것에 놀란다. 당연한 것인데 지키지 않으면 지키는 것이 대단한 것이 되어버린다. 이 일을 어찌해야할꼬.
출근 시간은 30분 단위로 계산하는 그녀는 퇴근 시간을 초 단위로 계산한다. 퇴근 시간이 되는 다가오면 이미 부산하다. 1초, 1초를 세는 듯하다. 그러고는 출근 시간 전에 출근한 사람들보다 먼저 퇴근을 한다. 퇴근 시간보다 일찍 가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자리를 뜨고 혼자 남아 일을 한다. 배가 고파지는 것을 보니 나도 퇴근해야할 시간이 다가오나보다. 더 일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다. 자리를 정리하며 그녀의 자리를 바라본다. 내일은 출근 시간을 지키길 바라면서 컴퓨터를 끈다. 근무을 지켜달라는 메모를 어떻게 남겨야 할지 또 하나의 해야할 일을 메모하고 나도 퇴근한다. 나도 퇴근 시간을 지키고 싶다. 정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