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알레르기 비염과 감기 기운으로 아팠고 일주일 정도 아무 것도 못했다. 내가 세워둔 일상 루틴을 모두 망가트린 채 하루하루 집, 회사만 반복하며 살다 보니 컨디션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본 궤도로 돌아오진 못했다. 소설을 쓸 수 없는 컨디션이기 때문에 뭐라도 끄적거린다. 인간을 이루는 게 나는 <내일이 나아질 거란 기대 혹은 희망>이라 생각하는데 갈수록 그게 줄어든다. 참, 무엇에 기대야 하는 걸까?
기댈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어렸을 때 나는 <목표>에 기댔다. 해내야 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 바라보며 살았다. 좋은 성과를 냈으나 장기적인 플랜은 아니었기에 그때뿐이었고 이제 현재의 내가 되었다.
어릴 때처럼 돌진하여 목표를 이뤄내기엔 에너지가 없고, 또 그것이 나를 위한 게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며 결국 나는 부속품으로 갈리기만 한다는 걸 잘 알아서 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본래 노력을 하면 실망이나 서글픔도 크며, 노력하지 않으면 별다른 타격이 없다.
내게 지금 남은 게 뭔가... 하면 결국 글쓰는 거 밖에 없다. 달리 할 게 없다. 회사 일은 어차피 개인의 목표가 될 수 없고, 결국엔 회사 밖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어쨋거나 꾸준히 흥미를 잃지 않고 있으며 일말의 재능이 있는 게 글쓰기 쪽이다. 그러나, 글쓰기 만으로는 업이 되지 않는다.
기존에 내가 회사 일을 하면서 병행해 왔던 외주 알바들의 단가는 10년 전의 수준과 똑같다. 오히려 대우가 좋지 않아졌고, 회사 일을 하면서 병행하기엔 어려워 졌다. 대체로 영상 쪽 글쓰기 건이 많이 올라오는데 미팅이나 촬영장 투입 건 등 오프라인으로 시간 빼야 할 때가 많아서 회사 일을 하면서는 쉽지 않다. 본래 글만 써주는 포스팅 혹은 홍보영상 시나리오를 하곤 했는데 요즘 그런 일들은 내부에서 쳐내거나 단가 후려치기를 하는 거 같다.
결국 모든 글쓰는 사람들이 강좌를 개설하는 것처럼 글로 돈 벌어먹으려면 <강의팔이>를 할 수밖에 없다.
강의 팔이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믿을 만한 스펙이 있어야 한다. 출간한 책이 있거나 sns 채널이 크거나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출간한 책은 있지만 수상집 1권이며, sns 채널은 작다. 마이크로한 수준이어서 눈에 띄지도 않을 거다.
내가 쓰는 글은 마이너한 장르다. 호러, 오컬트이며 그중에서도 샤먼, 한을 다루는 글을 즐겨 쓴다. 언젠가 어느 날이 오면 안 쓰게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쪽이 끌린다. 최근엔 이런 글을 썼다. 무당으로 죽은 엄마와 딸의 화해에 관한 글이었는데 쓰고 난 뒤에 후련했다.
쓰겠다고 마음 먹고 구상 중이거나 발전 중인 스토리는 몇 개 된다. 그 중에 2개는 꽤나 구성, 얼개가 잡혔지만 쓰는 데는 오래 걸린다. 본래 목표는 이번달 안에 그 중 하나인 청소년 물 초안을 완성하는 것이다. 요번주 안에는 대략적인 스케줄과 구성을 짜야 이번달 말까지 어설프게나마 초고가 나올 것이다.
본래 중장편으로 구상했지만 현재로서는 중장편 아닌 단편이어도 좋다. 설득력 있게, 납득 가는 수준의 캐릭터로 스토리로 만들어지기만 해도 기분이 좀 나을 거 같다. 어쨋거나 이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돈이 되지 않는 무용한, 글이란 걸 쓰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이런 삶이란... 참, 갑갑하다. 살림살이는 늘 고만고만하고 일터에서는 '토사구팽' 이라는 말이 딱 맞는 처우를 받고 있는 중이라 이직을 찾아보고 있다. 취직 시장이 어렵다더니 이직 시장 역시 그렇다. 특히 나의 경우 신사업부를 전전하며 개고생을 해왔다 보니 이력은 많지만 하나만 죽어라 파 온 유형의 커리어는 아니다. 당연하게도 신사업부에서 좋아하고, 곧 개고생을 의미한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몇 장의 이력서로 평가 받는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 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입체적으로 봐줄 타인이 몇이나 될까. 결국 인간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이해받길 바라고, 막연하게 퍼부어지는 사랑을 받아보길 염원하지만 사실 그게 이뤄지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껏 선택해온 것들에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 그 순간의 <최선>을 생각했고, 내 몸을 불살랐고,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내 마음 안에 남은 찌꺼기의 찌꺼기까지 다 퍼다줘서 지쳤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나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일을 할 때도 정도껏 할 생각이다. 돌려 받지 못할 것들에 대해 갑갑해하고 억울해하며 한스러워하기 보다 그냥 안 하면 된다는 걸 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이렇게 될 걸 알아서 서른이 되기 전에 죽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십대까지는 그렇게 불같이, 부나방 같이 살아도 된다. 서른이 넘어서면 그렇게 살기만은 쉽지 않다. 체력적으로 뒤따라주지 않는다는 게 크며, 더 이상 희망이나 기대가 없다는 것도 참 크다.
나는 꽤나 순수한 사람이었다. 돈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없었고 인정 욕구도 크지 않았으며 욕심도 별로 없었다. 내가 부리는 욕심이란 건 단 하나였다. 내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내 일을 해내는 것! 그것이 일이 되었든, 글이 되었든, 나와 함께하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되었든... 옆에서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늘 들으며 살았다. 그것은 내 열심이 아니었다. 그냥, 그게 내 기본이었다. 나는 내 기준치에 만족하기 위하여 부단히 애썼고, 그것이 내 '열심'의 끝은 아니었기 때문에 매번 자책했다. 더 열심히 살지 못한 것에.
내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사랑해주지 않아서, 채찍질만 해대서 더 힘들었다는 걸 이제 나는 알지만 동시에 억울하기도 하다. 남들처럼 타인을 쉽게 욕하고, 좋은 건 내 덕이고 나쁜 건 남 탓이라고 넘겨버렸다면 인생 살이 지금만큼 고단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어차피 그렇게 못 산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갈 길이 어디인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이 글의 시리즈를 처음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문이다. 중간에 좀 무언가 된다 싶었던 때도 있지만 지금은 다시 원점이다. 딱히 바란 건 아니지만 이 세상에 눈을 떴고, 그다지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보다 낮은 조건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이보다 좋은 조건이 많다는 것도 안다. 딱히 비교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고단하다.
어려서는 그런 게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면 낫겠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면 낫겠지, 이 사람들만 그렇겠지,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럴 거야... 하는 기대였지만 지금은 없다.
이곳을 벗어나도 또 다른 고통이 있다.
이 사람들을 벗어나도 어차피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나와 말이 통하는 유형의 사람들은 사실상 별로 없다. 모두가 1인칭인 세상에서, 거의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매일매일 돈 벌이를 하고 있지만 월급은 쥐꼬리 만하고 나갈 돈은 정해져 있고 물가는 올라서 이대로라면 내 집 마련도 어려울 것이다. 월세 살이나 하면서 몇 십년 흘러가서 늙어 죽을 거라면 왜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언제나 전전긍긍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는데 딱히 타개책은 보이지 않는다.
글을 써서 잘 될 거라는, 떵떵 거릴 수 있을 거라는, 이 곳을 탈출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꿈꿔본 일도 있는데 글이란 게 그렇다. 돈 벌겠다고 글쓰려고 하면 또 잘 안 써진다. 결국 끝까지 내가 잡고 있으려면 그 장르에 대한, 인물에 대한, 스토리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써야 한다. 적어도 프로의 세계에 입문하는 초짜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완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내가 쓰는 장르는 마이너하다.
사실 메이저 장르라 칭해지는 로맨틱코미디, 코미디, 판타지, 휴먼 드라마, 가족극 장르로 가더라도 성공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영상 매체든 글이든 콘텐츠는 그렇다. 뚜껑을 열어보고 터져야만 그게 <대박>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시장이니까. 다만 영상 글쓰기 보다 소설이 좋은 건 혼자 해도 된다는 데 있다. 영상 글쓰기는 영상화되어야만 가치가 있지만 소설은 나의 오리지널 창작물로서 기능한다. 그래서 시나리오, 대본도 써왔지만 지금은 소설쓰기에 정착한 거다.
실상 소설쓰기는 업이 아닌 취미다. 업이 될 순 없다. 글로 돈 벌이가 된다고? 그건 꿈이다. 전업 작가는 거의 몇 없으며 그들도 전업이 되기 전까지는 업을 병행했다. 교수나 강의를 하면서, 어딘가에 패널로 출연하면서 글쓰기를 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즉, 입과 손으로 돈을 버는 셈이다. 나는 그 역시 하지 못하는 레벨이기 때문에 그들이 부럽지만... 뭐 어쨋거나, 현실은 현실이다.
회사를 다녀야 하며, 글을 써야 한다. 회사 밖에서 글만 쓰고 강의 팔이하면서 밥벌이를 할 날을 꿈꾸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겐 그런 자본이 없고, 무자본 창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에 에너지를 쓰기엔 소설쓰기가 마음에 걸린다.
sns도 하지 않다가 다들 자기 PR하라고 난리쳐서 sns를 시작했지만 딱히 애정이 가진 않는다. 지금 내게 남은 애정이 있나... 햐면 그저 지친 것뿐이다. 지치고 또 지쳤으며 체념하고 막연하기만 한 바람이 텅 빈 몸 안을 맴맴 도는 기분이 든다. 너무도 지쳐버려셔...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기대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써왔는데 반대로 그러다 보니 누군가 기댈 만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독립적으로 살아왔지만 고독하고 외롭다. 하지만 동시에 안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독립적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결혼에 대한 문제를 생각할 만한 나이가 되어서 주기적으로 생각하지만... 결혼을 하려면 뭔가 내려놔야 한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이상형이 사실 그렇게 구체적인 편은 아니었다. 중간 정도 키가 되면 되고 자기 커리어가 확실한 사람, 피부가 멀끔하고 깔끔한 인상, 기본적인 운동으로 체력관리 하는 사람이었다. 근데 요즘 와서 보니까 이 정도 되는 사람도 별로 없더라. 웬만한 사람은 다 유부남이기 때문에.
눈이 깨어 있는 사람들은 결혼 할 사람을 만난다던 때에 나는 딱히 직업도, 재력도 보지 않았다. 오직 비흡연자라는 것과 성격을 봤는데... 어느 한 군데 치우쳐져 있지 않은 사람이 핵심이었다. 어떤 사안을 보던 중간에서 한번 더 생각해려고 하는 사람, 한쪽에만 치우쳐서 남을 섣불리 욕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연애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감정보다는 상황을 보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기분이 티가 날 수는 있겠지만 그 기분이 내 일이나 생활을 망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업무 환경에 있어서만은 단 한번의 펑크도 낸 적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물론, 내 생활에 있어서도 그러려고 애썼지만 대체로 이번처럼 몸에 병증으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가장 경계하며 자기 연민이 있는 사람도 별로다. 자기객관화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과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고, 한 사안을 갖고 입체적으로 보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친구나 회사동료의 관계라면 모르겠지만 배우자를 만난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가장 중요한 건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한 말은 반드시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이라 섣부른 약속을 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사람이어서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평생을 약속하기 어렵다. 그냥... 감정적으로 상처도 별로 안 받고, 내가 옳으니까 다 괜찮다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여리고 상처도 잘 받고 그 와중에 사람은 좋아하고 그러니까 미워하질 못하고 온갖 화는 나를 향한다.
이런 내가 불쌍하냐 하면 그렇진 않다. 뭐, 안 되어서 그렇게 살았는데 뭐라 할 말 없지 않나. 나도 그게 됐으면 그렇게 살았겠지. 그저 앞으로 남아 있는 생이 갑갑할 따름이다.
좋아하는 게 온기고 스킨십도 좋아하는 편이라 일평생 혼자 사는 건 어려울 텐데... 이대로라면 괜찮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어딘가 하자가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서 홀로 늙어갈 거 같단 생각이 든다. 나 역시 하자가 있으니까 뭐.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자가 있는데 그 하자를 잘 품어주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장점을 더 크게 봐줄 수 있는 사람과 만나면 결혼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 마음이 조급해서, 나이 탓에, 주위에 떠밀려서 결혼하게 된다면 결국 엔딩은 정해져 있다. 나는 그런 결말은 싫다.
고로, 요즈음 나는... 내가 혼자 살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지만 씁쓸하다. 혼자 살거면 <골드미스>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지금 환경으로는 쉽지 않다. 이공계로 진학했거나, 스펙을 잘 쌓아서(좋은 학교, 고스펙) 연봉이라도 빠방하게 받았거나 했다면 모르겠는데... 문학 전공자에 마케터로, 기획 작가로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에선 근근이 먹고 살 따름이다.
유일한 희망이라곤 내가 쓴 글이 대박나는 건데 이건 내가 알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같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요번 년도 내내 이 고민 속에 빠져 있다. 빌빌거리며 비렁뱅이로 늙기는 싫은데 지금 모든 조건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숨만 나오는 현실이다. 이 최악의 시나리오만 남겨두고 그렇게 몸을 갈아가면서 일해 왔다니 헛웃음이 나온다.
요즈음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하고 매일의 루틴에만 나를 맡겼다. 어차피 나아질 거 없는 현실이라면 그냥 매일매일 나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소소한 행복이라도 누려볼까 하고, 잠깐은 먹혔지만 영원히 먹히진 않는 전략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몇 년전에 몇 번의 실패로 끝나고 난 뒤에 두번 다시 찾지 않았던 상담 예약을 잡았다. 그게 바로 오늘 저녁인데 별달리 기대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일말의 기대가 남아 있긴 하다. 기대가 낮다는 거지, 없는 건 아니다. 언젠가 내가 글이 대박날 거라는 기대를 낮게 하는 거지, 없진 않은 것처럼. 인간은 결국 기대로 사니까... 근데 기대는 줄고, 최선이 아닌 차악의 선택지만을 매만지고 있는 지금은 딱히 좋지 않다.
회사를 다니고 글을 쓰고 이따금 자기계발로 운동을 하고 영어를 하면서 살겠지. 월세나 기타 등등 나가는 돈이 많아서 돈을 모으기도 힘든 현실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더 나이가 들면 회사 안에서 버팅기기도 어려울 것이다. 회사 밖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뭐라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근데 잘 보이지가 않네.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대학원 공부를 해볼까 하는 계획을 세웠다. 삼십대 후반에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강단에 서고 싶다, 뭐 그런 거다. 옛날 만큼 그 꿈을 말하는 게 희망차거나 발랄하거나 그렇지 않다. 어차피 미래는 크게 좋거나 나쁘거나 할 건 없을 거다. 나쁘지 않다 정도만 해도 좋은 게 인생사니까.
대학원을 가려면 돈을 모아야 하고,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 대학원을 졸업한다고 쉽게 강단에 설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든 글을 쓰고 출간해서 나름의 커리어는 쌓아야 한다. 뭐라도 스펙이 있어야 취직 시켜주는 건 그 시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보따리 장사처럼 강사만 해서는 택도 없으니 정교수를 노려야 할 텐데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많이 듣기도 했고.
....인생살이가 참, 재미가 없다. 희망과 소망, 기대를 품으면 노력하게 되고 노력하면 아프다. 그걸 너무 잘 알아서 지금은 희망, 소망, 기대를 품지 않으려 한다. 그냥 하는 거다. 안 할 도리가 없으니까. 산 입에 거미줄 칠 수는 없고 내가 지금 나가서 일하지 않으면 이 몸뚱아리를 먹여 살릴 돈은 다른 사람에게서 나와야 한다. 그렇게 민폐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어쨋든 벌어야만 한다.
결론은 정해져 있고 만족스럽지 않아서 자꾸 되풀이하게 된다. 혼자의 삶, 월세 살이, 쥐꼬리만한 월급에 딱히 미래도 없는 회사원, 꾸준히 써서 내는 글쟁이, 병원비를 내지 않기 위해 운동하는 삶. 뭐 이정도가 되겠다. 월세를 벗어나기 위해선 막대한 돈이 필요하고, 병원비든 운동이든 다 돈이다. 돈 없이 산다는 건 어렵다. 결론은 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는 게 된다. 어쨋거나 내가 쓰고 싶은 종류의, 장르의 글을 쓰면서 초고 쓰는 법이든 나만의 작법이든 습관을 익히고 나면 나 역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수 있을 거다.
여러 책을 닥치는 대로 읽다 보면 대중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방법이라던지 욕망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겠지. 그러면 돈이 될 만한 글을 계속 써볼 수도 있을 거다. 그렇게 하다 보면 뭐 하나는 터지기도 하겠지. 결국, 이 인생사에서 기댈 만한 건 여기 밖에 없다. 설사 안 된다 하더라도 기댈 곳이 여기 밖에 없다. 남은 인생은 무료하며 덧 없고 무망하고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기대한다는 건 무의미하다. 타인에게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도 딱히 의미가 없다. 결국엔 나 홀로 지쳐버리고,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는 빈 몸뚱이일 뿐이다. 결국에는 나에게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근데 나에게 에너지를 쓴 적이 별로 없어서 그냥 채찍질 하는 게 편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나한테 에너지를 많이, 까지 써야 돼? 차라리 죽는 게 빠르겠다 하는 생각 말이다.
여전히 나는 돌고 돌고 돌림노래를 부른다. 이렇게 돌림노래나 부르기 위해서 이날 이때까지 살았나 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이었으면 좋겠는데, 딱히 기대는 없다. 기대하면 실망도 큰 법이다. 근데 기대가 없이는 삶에 딱히 이유가 없다. 어렵다, 인생이란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