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윰 Aug 30. 2023

비가 오니까 나를 찾는 비명소리가 들리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그런 순간이 와요. 차창 밖으로 휘몰아치는 물결을 보는... 강변역이나 당산역, 뚝섬유원지역 철교를 지날 때면 나는 아이처럼 입을 벌리고 감탄합니다. 창에 바싹 붙어서 아래를 바라보면, 철교 아래로 떨어질 거 같아요. 넘실대는 물에 잠겨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이따금합니다. 그래요, 나는 이따금 비명 소리를 들어요. 누구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제부터 비가 왔어요.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한층 더 눅눅하고 축축해집니다. 나는 참, 생각이 많아요. 토로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오늘도... 역시나. 불안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고 있는 걸까 생각해요. 아마도 내가 생긴 모양대로 이 삶을 살아가는 게 벅찬 탓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갖고 있는 정 그대로, 사랑, 열정 그대로 살아간다는 게 나를 자꾸만 해치는 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쉽지 않네요, 인생이란.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 건지는 죽는 순간까지도 모른다 했으니 내버려두자구요. 언제나 생보다 사가 더 가까운 생이었습니다. 살아간다는 건 지옥도를 외따로 걸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공부든 일이든 사실 그리 어렵진 않았어요. 문제는 늘 사람입니다. 저뿐이겠어요. 세상 만사, 모두가 사람들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을요. 심지어, 저 치는 타인을 너무 많이 공격해서 상처 받을 일도 없겠다 생각되는 사람마저 사람이 힘들다고 합니다. 저마다 저마다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에요. 마치, 죄를 저지른 죄인들이 형을 살아가느라 모여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달까요.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어렸을 때 저는 어째서 착한 사람들은 빨리 가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정말 그랬거든요. 제 생각에 참, 저 사람 좋다, 저 사람 진짜 따스하다 싶은 사람들은 재빨리 떠났던 거 같아요.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젠 그래요, 그건 축복이었겠구나. 좋은 사람이라 빨리 떠나게 배려해준 거구나, 알 수 없는 미지의 신격이... 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존재하긴 하는 거 같거든요. 존재하되 관여하진 않는 거 같아요. 


망각이란, 인간에게 있어 축복이라고 하던가요. 저와 한때 가장 가까웠을, 너무 이르게 떠나가버린 그녀를 저는 사실 잘 모릅니다. 그녀가 제가 너무 어린 나이에 떠나간 탓인 것도 있을 겁니다. 어쨋거나 제가 좋아하는, 반짝거리던 이들은 정말 빠르게 떠났습니다. 마흔을 넘긴 이가 거의 없어요. 심지어 마흔을 넘기고도 살아 있는 사람은 한명 뿐이죠. 그래서 나는 내가 마흔을 준비하고 있는 게 너무도 실감 나지 않습니다. 


이십대에 죽었어야 했는데, 서른을 넘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 말을 우울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합니다. 이 생을 버티기 힘들 때 하는 말이에요. 살아 지금이 가장 힘겨운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사이클을 돌 듯 힘듦이 찾아왔습니다. 요즈음보다 더 격렬했던 때도 있어요. 우울해서 일어나지 못한 때도 있었고, 너무 주체할 수 없을 만치 신나서 방방거렸던 때도 있었습니다만 그때는 희망이란 게 있었던 거 같아요. 어딜가나 이런 사람들만 있진 않을 거라는, 인생이 나아질 거라는, 그게 아니면 어차피 곧 죽을 거라는 그런 희망이 사라져버린 폐허 같은 세상에 저는 서 있습니다. 


사주를 꽤 좋아하는데, 힘겨울 때마다 기대기 좋아서였어요. 그냥... 답을 알고 있으면서 답을 묻는 답정너처럼 그래도 뭐라도 내가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나 봅니다. 들은 이야기라곤 명줄이 길다는 거, 어떻게든 마흔 셋을 넘기라는 거였지만요. 모르겠습니다, 마흔 셋이 되면 무엇이 달라질지는. 그런데 사주쟁이 셋이나 힘줘서 마흔을 넘겨야 한다고 했다면, 한 명은 진짜 제 눈을 똑바로 보면서 "무슨 수를 써서든 마흔 셋까진 살아!"라고 했다면... 그거라도 붙들고 싶어지는 게 사람 아닐까요. 


실은 살고 싶은 모양입니다. 정말 죽을 작정이, 결심이 섰다면 단칼에 해냈을 텐데 저는 그것도 못 한 채 투정만 부려대는 어린아이입니다. "이 꼬라지로는 살고 싶지 않아"가 강했던 거지요. 서른이 넘어서야, 작년부터 저는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그래요, 저는 기준치가 높은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이 정도는 해야지, 아니면 최악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기준에서는 전혀 열심히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더, 더, 더 해나가야 하는 거였습니다만... 제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대충하는 것이 어떤 이의 최선보다 더 열심히라는 걸 알고 작년부터 꽤 자주 좌절했습니다. 협업 관계에 있는 일을 아무 생각 없이 선택했던 탓도 있습니다. 그저... 홀로 싸우고 홀로 나아가는 일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차라리 지랄 맞은 성격을 내지를 수 있는 담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스트레스를 덜 받았을 텐데, 쓰잘데기 없이 정이 많고 인내와 이해심이 높습니다. 


그래요, 쓰잘데기 없이. 저는 이 생각을 정말 많이 합니다. 


쓰잘데기 없이 회사 일을 열심히 했고, 쓰잘데기 없이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쓰잘데기 없이 남탓은 못해서, 쓰잘데기 없이 이해의 폭이 넓어서, 쓰잘데기 없이 저를 갉아먹었습니다. 그런데 이 쓰잘데기 없다는 말이 참, 아픈 거 같습니다. 제가 뭔가 하려고 할 때마다 힘이 들어요. 사실 회사에 열성을 다 해봐야 팽 당할 뿐이고, 몸이 아플 따름이며, 어떠한 사람들에겐 잘해줄 필요가 없거든요. 


노력을 한 자들이 아파요. 노력하지 않으면 아플 일도, 화날 일도 없습니다. 단지... 제가 늘 노력하는 사람이었어요. 그게 절 힘들게 했습니다. 성실, 열심, 열정 그건 모르겠고 저는 그냥 노력하는 사람이었어요. 잘 해보려고, 잘 지내보려고, 잘 살아가려고, 잘 만들어가려고... 그런데 요 몇년간 그 노력이 이룬 성과들이 거지 발싸개 만도 못합니다. 이전의 삶에서는 힘들게 하면 그래도 뭔가 성취는 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게 안 되고 그래서 떠나려고 합니다. 2년 넘게 고통 받았어요. 일도 일이지만 사람 때문에요.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제 알거든요. 저는 본래 사람에 정이 참 많아요. 그건 지금도 그렇지만... 세상의 80% 이상은 저와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80% 이상의 사람들은 자기 객관화가 안 되어 있고 남 탓을 자주해요. 알아요, 자신의 이권만 챙기고 남 탓하고, 누군가를 타겟 잡아서 욕하고, 책임 소재를 찾고, 문제 해결의 여지는 전혀 없는 사람이 멍청하죠. 


배려는 감수성이 아니라 지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기가 할 몫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들 중에 예의 없는 사람을 저는 이제까지 본 일이 없습니다. 예의 없는 사람이 일 잘하는 것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기준치를 만족하는 이도 별로 없더라고요. 이제는 기대가 없어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너무 반갑고 동시에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그냥 느껴지잖아요. 얼마나 개고생하면서 살아왔을지.... 


저는 제가 여러모로 번 아웃이 왔다는 걸 인정햐기로 했습니다. 어떻게든 붙들고 버텼어요. 이 악물고 살아왔는데 남은 건 너덜너덜해진 가슴 밖에 없네요. 2주 전엔 여행을 갔었는데 여행지에서 서러움이 폭발해버렸습니다. 그럴 만한 일이었어요. 저는 기본 3번 정도는 생각하고 이게 너무 감정적인 건지 내가 서운할 만한 건지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강박적으로 제 감정을 통제해왔기 때문에 터지는 일도 극히 드물어요. 그저, 제가 믿을 만한 사람이 곁에 있어서 그랬던 거지만...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사실은 사람은 혼자라는 걸 더 절실하게 알게 된 여행이기도 했어요. 


참 많이 울었고 눈물이 그치지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쓰니까 또 눈물이 나네요. 그친 줄 알았던 눈물이... 울지 않으니까 몸이 아팠습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무기력증에서 회복되지 못하다가 뭐라도 해야겠다... 하고 눈물을 그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심각한 감기에 걸렸거든요. 거의 1주일 정도 온 몸에 힘이 없고 목과 코 감기가 심해서 비실거리다가 모든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물론... 취소 안 되는 것들도 있지만 최대한이요. 


여행 가기 전에 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영어공부, 운동을 하고 퇴근해서도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바쁘게 살았습니다. 실상 이렇게 저 스스로를 바쁘게 하고 이뤄야 하는 목표를 주는 거 말고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행을 갔다 오고 나서 올 스톱이 되어버리니 어제는 화가 나더라고요. 미친 게 아닌가 싶은 거죠... 이렇게 널부러져 있으면 도태될 뿐이고, 결국에는 비렁뱅이처럼 구차하게 명줄만 이어갈 따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비렁뱅이처럼 살아가는 게 정말 싫은 모양입니다. 이왕 살아 있으면 잘 살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 이미 좀 글렀습니다. 저는 스스로 생각해봐도 쉬었던 기간이 별로 없어요. 매일 무언가 했고, 한창 때는 투, 쓰리잡씩 했습니다만 그래서 살림살이가 나아졌냐 하면 아닙니다. 물론 이전에 아무것도 없던 시절보다는 나아졌지만... 참 실속 없이, 순수하게 열정을 바쳤던 거 같아요. 실속 없는 게, 열심히 사는 게, 뭐든 노력하는 게 나쁜 건 아닌데... 오히려 좋은 거라 배웠는데 사회에서는 약자가 되어버립니다. 너무 시달려서 지쳐버려서 이제는 좀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저는 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다닌다는 생각도 구체적으로 한 적이 없어요. 검사를 꿈꿔본 적은 있지만, 공부를 내려놓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저는 그냥 글만 생각했어요. 괜찮은 글 한 두 편 내고 일찍 죽어야지, 요절해야지... 생각했어요. 어쩌면 남들이 다 엘리트라 말하는, 나 스스로 성취감도 있었을 그 경로를 벗어나오면서 남은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여전히 그래요. 저는 공부로 끝까지 가지도 못했고, 글을 붙잡고 미쳐 살지도 못한 채 애매모호한 직장인이 되었으니까요. 직장에서 내 몫을, 그 이상을 해봤고 일종의 성취도 해봤지만 별 의미 없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승진하거나 임원을 달거나 내 회사를 차릴 생각이 없는, 그저 순간에 충실해서 할 몫을 다할 사람일 뿐이었으니까요. 


실은 예전 같으면 저한테 스스로 엄청 화를 냈을 겁니다. 


널부러져 있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해서 뭐든 하다가 나자빠지고 몇 번 반복하다가 다시 잊은 듯 미치게 1달 살고 1달 아프고 다시 1달 살고 1달 아프길 반복했겠죠. 그렇지만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낍니다. 이제는 2-3주만 그렇게 살아도 넋다운 되어요. 그렇다면 이건 제대로 사는 삶이 아닐 겁니다. 나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걸 알아요. 나 스스로 하고 싶은 길을 향해 나아가고 즐겨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때론 즐길 수 있기도 합니다만... 지속성은 떨어집니다. 이미 많이 깨어진 탓일까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없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기대 없이 어떻게 살아갈까요. 인간은 기대와 소망으로 하루씩 연명해가는 존재일 텐데요. 하지만 저는 요즈음 기대는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고,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합니다. 서글프게도 거의 97% 맞아요. 3%만이 의외성을 갖고 빛날 따름입니다. 3%에 기대 사는 건 너무 힘겨운 일입니다. 지쳐버린 일이기도 해요. 


이번 주는 가급적 루틴을 이행하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좀 쉬고, 다음주부터는 천천히 뭐든 시작해보고 다담주부터는 정상궤도에 오르는 걸 현재는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널브러져 유튜브를 봐봤자 딱히 즐겁지 않아요. 즐거운 일을 찾는 거란 어렵습니다. 그냥 하면서 즐거운 감정을 찾아가는 게 더 빨라요. 비관적인 와중에도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편입니다. 그 낙천성이 지금껏 살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지쳐버린 상태로 살아가는 건 정말... 쉽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내 미래에 뭔가 엄청난, 특별한 게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아요. 예전엔 그랬지요. 


글은 계속 쓸 겁니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이러한 에세이도 좋지만, 원래 쓰던 소설 말입니다. 잘되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쓰지 않을 순 없습니다. 글을 쓰면서 표현하게 되거든요. 저번에는 소설 한 편을 다 쓰고 꽤 울었습니다. 그렇게 쓴 글은 반응도 좋더라고요. 그런데 언제나 그 글을 쓸 순 없습니다. 뭔가... 쓰고 싶고, 의지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입니다. 단편이야 이럴 순 있지만 중장편은 그럴 수가 없고, 저는 중장편을 계속 조금씩 발전시켜가고 있습니다. 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할 겁니다. 아무리 고단해도 오늘의 닭고기는 삼켜야 하니, 밥벌이를 해야겠지요. 


밥벌이 하면서 취미로 글쓰는... 아무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하며 지리멸렬한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늘 그럴 것이고 그냥 세상은 그래요. 바뀔 리 없는 감옥에서, 나는 이따금 창 밖을 봅니다. 하늘을 향해 난 창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아요. 검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따금은 그곳에 환한 태양이 있다고 기대하고 이따금은 그것이 블랙홀과 같은 암흑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둘 중에 무엇도 정답은 없습니다. 볼 수 없으니까요. 


이 인생의 끝자락에 가서야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겁니다. 


때론 후회할 것이고, 때론 후련할 것이고, 때론 미련이 남을 겁니다. 저는 지금껏 미련이 남는 선택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 선택에는 언제나 미련은 없었어요. 오래 고민한 탓도 있지만 그냥...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서였습니다. 그치만 인생은 참, 모를 일이네요. 끝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요. 인생살이에서 하는 선택에는 어느 정도의 끝을 알고 합니다. 물론, 그 사이에 많은 것들이 바뀌지만 그렇대도... 대충 보이긴 하잖아요? 인생은 아닙니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동굴 벽을 더듬으며 걸어가는데 심지어 눈마저 멀어버린 기분을 느낍니다. 막막하게 더듬더듬 걸어갈 따름입니다. 

가끔씩은 그렇게까지 우울해 할 컨디션이 아니라 생각하기도 해요. 상황상 나쁘지 않거든요. 결코 좋은 건 아니나 결코 나쁜 것도 아니에요. 좋게 마음 먹으면 편안할 만한 환경이기도 해요. 다만... 맞지 않는 게 있다는 건 생각해요.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싶진 않습니다. 저는 그냥,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와서 그들의 뒤처리를 해서, 일 수습반이었던 채로 오래 살아와서, 그럼에도 욕받이도 되었어서 힘든 거 같아요. 


사람들은 참, 최대한 좋게좋게 일을 풀어가려는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잖아요. 인간의 습성인 거 같습니다. 이제는 괜찮다 생각했는데 내상이 깊은 거 같습니다. 심지어 저조차도 절 품어주질 못했으니까요... 


쓰잘데기 없다라는 말을 참 많이 되내었는데, 이제 안 해보려고요. 어쩌겠습니까. 그렇다고 제가 저 사람들과 똑같아질 순 없는데요. 그저 할 도리만 해주고 말아야죠. 제가 할 도리를 해줄 만한 사람이나 일이 있을 때면 그렇게, 아니다 싶으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 노력의 10%가 어떤 사람의 100%라는 걸 이제 알겠어서...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내상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타인보다 저 스스로에게 상처 받으면서 생긴 생채기들은... 저는 늘 스스로와의 싸움으로 힘들었거든요. 


더 열심히, 더 제대로, 더 똑바로, 더 많은 것을, 더 빠르게 해내지 않으면 살 가치가 없다고 부르짖는 간수와 평생 살아본 적 있나요? 저는 그랬습니다.  지금은 그 간수에게 저항해요. "그렇게 달려서 지금 뭔가 나아졌나?"고요. 그러면 간수는 답하죠. "아파서, 우울해서, 불안해서 너가 진짜 미쳐본 적이 있긴 하냐고?" 맞습니다. 이따금 이렇게 터졌거든요. 맞는 말이어서 뭐라 할 수가 없네요... 내일은 모르겠습니다. 오늘 일도 모르겠는데, 이번 년도나 이 생의 끝을 알 리가 있나요.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흘러가는 대로 둘까.. 하는 생각도 해요. 그런데 흘러가는 대로 두면 글을 쓰긴 할까요. 이렇게 뭐라도 끼적이는 걸 보면 할 거 같기도 하고. 그래요, 저는 저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부족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는 거에요. 단 한번도 절 사랑해준 적이 없어서 어렵습니다. 질타했지 칭찬했던 적도 별로 없는 거 같아요. 너무 오랜 세월 객관화시키려고 노력해와서 이젠 제가 제가 아닌 거 같아요. 자아로서 살아보기보다 타자의 시선이 늘 공존했습니다. 대체로 저 스스로를 질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즘 말로 메타인지라고 하는 걸 꾸준히 길러왔습니다. 부작용인 내 편을 들어주는 걸 잘 못한다는 거네요. 


요근래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아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저 자신이 납득되지 않아서... 또 공격하려고 시동을 걸기에 기나긴 글을 한번 써봤습니다. 또 눈물이 나네요. 멍충이처럼... 이란 말이 떠오르는데, 이다지도 익숙합니다. 스스로를 공격하는 건, 그런데 사랑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사놨는데 많이 읽지를 못했어요. 결국에 문제는 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뿐, 타인이 도움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저 하소연할 따름이겠지만 본래 좋은 소리도 아닌 나쁜 소리를 계속 들어봐야 좋을 일이 없습니다. 


고독한 시절입니다, 참. 


이 글을 쓰고 보는데 뭐가 이렇게 한스럽고 억울한 모양입니다. 사실 다 본인의 선택이면서...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저라도 토닥여줘야죠... 저라도... 어떻게 토닥여야 하는지, 좀.. 익숙해져가야 하겠습니다. 너무 어렵네요. 저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품어주고 아껴주는 일이라는 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나뿐이란 걸 너무도 잘 알아서 서글프고 여러모로 복잡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무수히 쓰고, 버려도 좋다 <치유의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