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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윰 Aug 23. 2023

무수히 쓰고, 버려도 좋다 <치유의 글쓰기>

R아무렇게나 쓴다. 메모한다. 남은 시간은 대략 45분 남짓. 화장실을 다녀와서 나는 쓴다. 그냥 쓴다. 이제 30분 남짓으로 줄어 들었다. 지금 구상하고 있는 2편의 소설을 생각한다. 그와 그녀와 그녀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이내 깨닫는다. 오늘은 그와 그녀들, 그리고 그녀에 대한 것을 쓸 수 있는 날이 아니다. 아무렇게나 내가 쓰고 싶은대로 내지르고 싶은 날도 있는 거지. 규정하지 않고, 규획짓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날도 있는 거지.


나는 너에게 묻는다. 무얼하고 싶냐고. 너는 답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그럼 나는 다시 묻는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건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않는다는 거냐, 고독속에 침잠해 들어가고 싶다는 의미느냐고 그럼 너는 답하지. 아니라고.


1시간이든 30분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글에만 집중하는 시간이란, 쉽지 않다. 집중력이 오롯이 글에만 있어야 한다. 다른 어떠한 방해는 허용하지 않는다, 이게 내가 스스로에게 마련한 일종의 속박 아닌 속박, 굴레 아닌 굴레다- 죽고 싶다 말하면서도 결국엔 살고 싶어했던 네 혈귀와 저마다의 상처로 점철된 3명의 아이들을 그려내고 싶다- 단언컨대, 이번년도 안으로는 완성하고 싶다. 헌데 무르익지 않은 것인지 쉽지는 않다. 단숨에 써내려갈 수 있는 글들도 있나 하면 이처럼 조금 더 머물러야 하는 글도 있는 것일까. 혹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둘, 까지의 이야기는 가능하다. 실상 1명의 이야기다.


단편에서 담을 수 있는 이야기란 다만 1명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감정적인 단상이다. 여기까지는 가능하나, 여기에만 머무르고 싶지 않다. 솔직한 심경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싶다. 상호간의 이야기, 한 사람만이 아닌 여럿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것이 중편이고, 장편이며... 그것이 곧 <이야기>다. 내 생각에 단편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소설로 가기 위한 흐름. 무언가 시작되려 하는 기미, 무언가 깨달은 순간이다.


물론 장편도 기나긴 <깨달음>의 순간이나... 나는 장편은 <깨달음>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무언가 행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행위의 끝에서 또 다른 것을 찾게 되겠지. 즉, 단편이란 <찰나>를 담는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 혹은 나의 죽음 이후, 혹은 어느 한 몽상 이후, 꿈 이후, 어떠한 사건 직후 또는 사건을 만나는 <찰나> 그 순간에 내게 내리 꽂히는 감정 혹은 내가 내뱉는 숨, 울음, 웃음... 뭐 그런 것들.


무언가 맞닦뜨린다 > 부인하다가 감정에 녹아내린다 혹은 무언가 맞닦뜨린다, 전에 알지 못한 <진실> 혹은 <진상>의 일부를 목도하며 내 안의 뭔가가 변화한다, 혹은 변화하기 위한 '알'을 품는다.. 이거라고 해야할까. 스스로 생각하건대 나는 여기까지는 쓸 수 있다. 때로는 그리 오랜 생각을 하지 않고 흐름을 타듯이 주루룩 써내기도 한다. 단편은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강렬한 정서 그리고 사건들만 있어도 가능한 영역이다. 헌데, 이것 또한 일종의 편견이 아닐까. 장편이나 중편이 그렇게 써서는 안 될 것도 아니지 않나. <구의 증명>처ㅡ럼 경장편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다만, 중편, 장편으로 갈수록 인물이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형식과 구성이야 중요하나 인물만큼은 아니다. 인물에 몰입되어야 따라갈 수 있고, 인물에 온전히 몰두한 상태라면 나머지 어그러진 구석이야 눈 감고 넘어갈 수 있다. 나 역시 독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영역, 생각되는 영역이 아닐까.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그것을 나는 정미경 소설가의 유고작 <가수는 입을 다무네>를 읽으며 많이 느꼈다. 시공간이 오락가락하고 불친절하다. 따라갈 테면 따라갈 수야 있지만 흐름을 놓치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규정되거나 구획되지 않았다, 다만 그 인물이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이 그렇게 고단한지 느껴진다. 머리가 아니다, 마음으로 느껴지게 하는 구석이 있다. 파편화된 행동과 말과 툭 내뱉는 여러 말들이 쌓이면서, 장면이 모이면서 한 사람이 된다.


장편과 중편에서 중요한 건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계속 내 나름의 방식대로의 초고쓰기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 이를테면 나는, 쓰면서 장면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머릿속에 그 사람에 대한 여러 단상을 떠올린다, 기억한다, 조립하는 것은 쓰면서 가능하다. 때때로 글을 쓰면서 순간적으로 떠올린 상징물을 기억했다가 마지막에 크게 써버리기도 한다. 허니 다 기획하고 구획하고 쓸 필요는 없는 것... 생각보다 빠르게 쓰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들을, 에피소드를, 장면을 버릴까봐 걱정한 적도 있는데 무수히 쓰고 무수히 버려도 좋다.

그래, 이 말 좋네. 무수히 쓰고, 버려도 좋다. 이런 식으로 이 글의 제목은 <무수히 쓰고 버려도 좋다>가 된다.




요즈음 나는 끝도 없이 걸어가는 기분이다. 본디 걷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목적 없이 걷는 걸 그리 즐기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다. 허나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자유했던 순간에 나는 목적 없이 걸었다. 예대 재수 시절에 마음이 답답하면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밖으로 나섰다. 굴다리 아래로 지나가는 다리를 건널 때도 있고, 굴다리 위로 걸어올라 목적 없이 걷다 보면 어쨋거나 길은 통해서 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곳을 매일 걸었다. 퇴락해버린 시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파리채를 힘없이 흔드는 상인이 있었던 거 같고, 먼지 쌓인 상자들이 보였던 거 같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은 무채색이었다. 이따금 상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 아닌 생기가 떠올랐을 따름이다. 완전히 살아난 얼굴빛이 아니라, 그저 사람을 마주함에 있어 잠깐 켜진 거 같은 등 같은 느낌이었다.


어쨋거나 산 사람들은 산 사람과 이야기할 때 '일종의' 가면을 쓰니까. 극도의 우울 속에서도 나는 가면을 썼다. 최대한 우울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억지로 웃음지을 때도 있었으나, 티가 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티가 난대도, 노력한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나는 그래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좋다. 누구나 좋은 상태일 순 없고 언제나 괜찮을 순 없다. 모지라게 태어날 수 있다, 그것이 어느 영역이든 간에. 사람은 어느 한 구석은 망가져 있다.


나는, 내가 망가졌다는 걸 인정한 순간 자유해졌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어린 날에 나는 완벽해야 했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1등을 거머쥐어야만 했다. 내가 해낸 것, 인정 받는 것들만이 나를 나로 있게 했다. 글을 쓰며 꽤 많이 치유되었다 생각했는데 도쿄로 떠난 지난 금요일, 공항버스 안에서 바다를 보며 나는 몹시 울었다. 순간순간 울었다. 시시때때로 눈물이 났다. 이유 없는 울음이었고 울분이었고 한이었고 서글픔이었다.


울증이란 건 참 곡절이 많다. 이제 좀 나아졌나 하면, 사이클을 돌듯 다시 돌아온다. 아마 근원적으로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근원적인 치유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게, 참 슬픈 일이기도 하다. 어제 3년만에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3년 전에 공황증세와 각종 불안, 울증의 폭발에 이어 두통과 귀울림을 겪으면서 동앗줄처럼 상담센터, 병원을 알아본 일이 있었다.


나 스스로 내가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했기 때문에 내게 있어선 큰 결심이었다. 11살, 12살 즈음에 처음으로 울증을 크게 느꼈었던 이후로 지금껏 약 20여년 간 나는 나 홀로 나를 지탱하며 살아왔다. 책을 읽었고, 영화를 봤고, 다큐를 봤고,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가급적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려고 애쓰면서 나는 사람 답게 살아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요즘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나는 단 한번도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준 일이 없었다. 고쳐야 하는, 뜯어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서글프게도 나는 단 한번도 나를 온전히 사랑하거나 품어준 적이 없다. 애석하게도 그것을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해본 적이 없어서, 내 편을 들어줄 수가 없다. 단 한번도 남 탓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의 측면에선 이해가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사람을 참 좋아했다. 사람을 보면 솔직히 동물적으로 알았다.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 그 사람이 어떠한 단점을 짊어지고 있고, 어떠한 위협을 갖고 있는지 알아채는 촉을 갖고 있었다. 다만, 그 이후에 나는 그 사람의 장점부터 찾았다.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던 간에 사람인 이상 하나 혹은 하나 이상의 장점은 갖기 마련이다. 그 장점이 단점으로 연결되곤 한다. 가장 아름다운 쾌락이 가장 뜨거운 비극을 초래하기도 하는 것처럼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의 단점은 장점과 연결된다- 바로 그래서 그 사람의 장점을 알고 있는 나는, 누구도 미워하기 어려웠다. 싫어하기도,  탓하기도 어려웠다.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해 못할 게 없는 게 사람이어서. 나는 외로웠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나의 기준은 훨씬 뒤에 그어져 있다. 사회적 통념보다 뒤쪽에 그어져 있기 때문에 웬만큼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수용해준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역시 참을 수 없는 때가 있다. 선을 세 번 이상 넘어서면 울분이 치밀어 오른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일상에서, 일터에서... 매 순간의 삶에서 나는 사람을 미워하지 못해서, 싫어하기 어려워서, 탓을 할 수가 없어서 그 모든 분노가 내게로 향했다. 내가 고작 이렇게 밖에 안 돼서, 이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람이어서, 내가 모질지 못해서, 내가 마음이 여려서,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아서, 내가 너무도 허튼 곳에 에너지를 쏟아서, 내가 답답한 사람이어서.... 그 모든 이유의 귀결은 '나'에게 향했고 응어리는 점차로 커졌다.


그 응어리가 너무 많이 커져서 목울대를 울리고 가슴 전체를 짓누를 때가 되면 나는 울었다. 최초로 발발했던 때가 열하나, 열둘이라고 기억하는 건 그 순간에 내가 겪어서다. 온 세상이, 날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흑백이 되었었다. 흑백으로 착 가라앉아버린 세상에서 어린 나는 생각했다.


-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겠구나

- 사람은 그냥 그런 것이구나

- 세상은 그저 그런 것이구나

- 그럼, 나도 무뎌져야 하겠다


그 이후로 나는 정말로 무딘 사람이 되었다. 예민하고 민감하며 내가 굳이 촉을 곤두세우려 하지 않아도 곤두세우게 되는....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먼저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느껴버려서 빨리 상처 받거나, 눈치를 살피고야 말던 애늙은이는 무딘 사람이 됐다.


누군가의 머리가 바뀌거나 옷, 가방이 바뀌어도 2주가 지나도록 알지 못했다. 나는 내 모든 마음과 신경을 공부에만 몰두했다. 온전히 공부만 하기에 그러나 나는 좀 더 창조적인 사람이고 싶었다. 그림을 그렸다가 한 차례 좌절했고, 재능 없는 내게 돈을 투자할 필요까지 없단 생각에 스스로 붓을 꺾었으면서도 글이란 걸 만나고 나서는 다시금 글로 내달렸다.


공부를 할 수 없는 때가 열여덟에 왔다. 그저 무딘 사람처럼 살아가던 와중에도, 나 스스로 무뎌졌다 믿던 와중에도 마음 안에 생채기는 커나가고 있었던지 열여덟에 세게 터졌다.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글을 빠르게 읽고 이해력도 빠른 나인데 교과서를 여러 번 읽어야 하는 때가 발생했다. 극도의 우울 속에서 매일 내일 죽게 될까 생각했다. 언제 죽어도 아깝지가 않은 생이었다.


도로로 그냥 걸어들어가고 싶었고, 뛰어내리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다. 자칫하면 병신이 되고 만다는 생각, 나의 빈 몸뚱이를 누군가가 치우게 둬야 한다는 게 민폐처럼 느껴져서였다. 그때 나는 살기 위해 글을 썼다. 글을 쓰는 동안 타다다닥 키보드 위를 비행하는 내 손가락이, 그 손가락이 내는 소리가 안정감을 줬다. 그냥 무언가 하고 있는 사람 같아서... 그래서 나는 그 순간, 엘리트로의 길을 내려놓았다.


나에게서 <공부 잘하는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떼어졌다. <글쓰는 사람> 꼬리표를 스스로 붙이고도 나는 일등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가장 좋다는 문창과에 가기 위해 미친 듯 내달렸다. 내가 가진 글을 모조리 버리고 입시에 맞췄다. 그렇게 내달려 좋은 성적으로 입학한 이후에 나는 알았다. 합격 통보를 받고서 버스 안에서, 흔들리는 차창을 바라보면서 나는 몹시 통곡했다.


나는, 이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면 죽는 거라 생각했다. 죽을 각오로 썼다. 그 와중에 엄청나게 미친 듯이 열중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지만... 준비하던 시절엔 내 인생 대다수의 시간이 글에 머물렀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글을 빼고 생활을 기억해내기 어려울 만큼 머리 한 켠에는 언제나 글이 머물렀다. 나를, 내 글을 모조리 부정했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병신이라 생각했다. 나는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나를 갉아냈다. 이것도 쓰지 못하면 죽어야 마땅하다 생각했다. 어느 날엔가 칭찬을 받던 날에도 나는, 들뜨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저 이 한 편에 불과할 따름이니까- 그래... 만족이란 없는 시절을 통과하여 바라던 캠퍼스에 들어갔을 때 나는 내게 주어진 달콤한 수확이, 1등 입학생이라는 굴레가 가시관이 되었다는 걸 이미 알았다.


2년간 나는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더는 글쓰는 게 즐겁지가 않아서- 근데, 이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나는 그냥 학과 수업을 듣고 책을 읽었다. 온전히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기에 마음이 담겨 있는 글을 쓸 수도 없었다. 그 시절에 내가 많이 들었던 평은 <인물이 텅 비어있다>라는 것이었다. 흥미롭고 스피디하고 매력적인 묘사도 있다고 했지만, 너무 무겁다고 했다. 강약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담으려 하는 건 너무 많은데... 정작 인물은 비어 있다는 게... 꼭 내 이야기 같았다.


지금도 느끼지만 글이란 게 참 무섭다.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 상태와 가치관이, 신념이 그대로 비춰보이기 때문이다.


인물이 빈 상태로 나는 3학년이 되어서야 어떠한 글을 쓰고 싶은지 어렴풋이 짐작했고 앞길을 모르는 상태로 졸업했다. 그 시절에 나는 한번 더 발작하듯이 상태가 나빴었다. 22살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365일 중 360일 가량 가위에 눌렸다. 길을 걷다가 원인 모를 방울소리를 들었고, 멍한 상태로 걸어다니다가 버스에서 넘어져서 발을 크게 다쳤다. 버스에서 내리던 중이었는데 2칸을 1칸인 줄 알고 뛰어내리다가 아스팔트를 구른 탓이었다. 너무 급격히 살이 빠졌고, 심지어 수업 시간에 과호흡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가기 까지 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겨우, 그 시절을 통과해서 취직을 하고 또 미치게 살았지만 (무언가 그 일을 통해 이룬다 그게 아니라, 그냥 내가 기본값을 크게 세팅해놔서 그 정도 도달하지 않으면 살 가치가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나를 되게 열심히 사는 욕망적인 인물로 평했지만 실은 아니었다, 그냥 해야해서 한 거다,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한 거였다) 별로 나아진 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스물일곱에 또 한번 심각한 증세를 겪었다.


11살, 18살, 22살, 26살. 4번째로 크게 터져버린 건데... 이때 나는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서 일으키지 못했다. 한동안, 꽤 오래, 일주일 남짓 거의 누워서 지내다가 결국 죽지못하면 민폐라도 끼치지 말아야 겠다 싶어서 일어났고 일자리를 찾아서 일을 시작했다.


그 뒤로 27살, 5번째로 터졌다. 꽤나 안정적이라 말할 만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나는 당시에 내 상태가 좋지 않다고 인지하지 못했던 게 활력이 과하게 넘쳐서였다. 조증이라고 말하긴 애매한데 상태가 매우 안 좋긴 했다.


이전까지는 우울하게 침잠할 따름이었는데 과하게 들끓어 올랐다. 잠을 자지 않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 시절에 9 to 6로 살면서 퇴근하면 매일 무언가 했다. 거의 매일 11시는 다 되어서 들어갔고 주말에도 각종 배움을 이어갔다. 속옷이나 옷을 만들거나, 독서모임을 가거나 하는 등등.... 파워가 넘쳐났다.


들떠 있었고, 들끓었다. 그리고 몇개월이 지나 육체적으로 한계가 왔을 무렵 나는 푹, 꺼져버렸다. 너무도 밑바닥까지 내려앉아 버렸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이전까지와는 양상이 달랐다. 좀 더 심각했다. 길을 걷다 공황이 왔는데 지하철을 탈 수가 없었다. 집에 가야하는데 지하철을 탈 수가 없어서 나는 거리에서 아이처럼 엉엉대며 울었다. 어째서 갈 수 없는지 알 수 없었다. 극도의 불안 속에서 거리를 헤매다가 나는 갈급하게 사주팔자 집에 들어섰다. 이때까지 본 사주 중에 가장 별로였는데 근데 내가 오래 산다는 말을 들어서, 그 말 때문인지(나는 내가 오래산다는 것에 엄청나게 분노했고 우울했었는데 그래도 정신이 차려짐) 좀 안정돼서 집으로는 갈 수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상담센터를 찾아갔고, 몇번의 노력을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어차피 해답은 내가 찾아야 하는 싸움이라 생각하며 다시 원궤도를 찾아갔다, 고 생각했다.


열심히 일했고, 진짜 몸이 상해가도록 일만 거듭했다.


29살에 또 한번 터졌다. 여섯번째였다. 심각한 신체적 고통이 동반됐다. 업무적인 스트레스와 사람 스트레스가 겹쳐져 귀가 네번 정도 안 들렸다. 근데 날 괴롭히는 사람 탓에 내 커리어가 망가진다는 것, 내가 나약한 탓에 이것도 못 견디고 아파서 나동그라진다는 데 분노하여서 더 힘들었다. 결국 나는 잠시 쉬고 다시 일을 거듭했다. 분노의 에너지가 더 컸지만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극도의 불안, 강박에 시달렸고 손이 떨렸다. 그래도 할 일을 나 스스로 던져줘서 (갑작스러운 외주 일) 그 일을 하는 동안엔 내 상태를 잊었고, 아주 익숙하게 원 궤도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때쯤 나는 알고 있었다. 나 스스로를 치유하지 않으면 언제고 되풀이되는 일이라는 걸.


최근에 무수한 허망감과 앞날에 대한 불투명 앞에서 또 한번 더 터졌다. 이번에는 시시때때로 눈물이 나는 양상이다.


11살, 18살, 22살, 26살, 27살, 29살, 32살.


11살 때 외면한 뒤로 18살에 크게 터졌던 이후로 내 인생의 경로를 바꿔서인가, 내가 더 참을 수 없는 상태라는 걸 몸이 더 빨리 느껴서일까.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터울로 한계를 느낀다. 한계란, 내가 내 이성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정도의 상황에 도달한다는 건데... 그 와중에도 나는 남에게 민폐 끼치는 걸 극혐하고 내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게 내 상태를 드러내는 걸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외부인들은 내 상태를 모른다.


다만, 나만 고통스러울 따름이다. 어떻게든 살아갈라고 아웅다웅 애쓰고 있는데, 동시에 너무도 지친 상태로 나는 동앗줄 잡듯 다시 상담 예약을 잡았다. 별달리 기대는 없다.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들은 너무도 지치는 일이다. 타인을 향한 배려, 사랑의 절반은 커녕 반의 반도 내게 주지 못하는 것도 질렸다. 나에게 따스한 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 힘들기만 하다. 병원에 예약전화를 하면서도 나는 태연한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 어디가 불편하세요?


간호사의 질문에 나는 멈칫했다. 불편한가, 나는 스스로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허나 고쳐지지 않았다. 혹을 달고 있었을 뿐이다.


- 그냥, 시시때때로 울어요.


나의 답에 간호사는 잠시 침묵했다. 무언가 쓰고 있는 눈치였다.


- 얼마나 되셨어요?

- 3-4주 정도요.

- 언제부터 그러셨나요?

- 그냥, 이런 우울한 건 오래됐어요.


이게 끝이었다. 예약은 잡았고 그날에 나는 갈 거다. 휘몰아치고 난 뒤에는 잠잠해지듯 나는 지금은 조금 평온한 상태다. 들끓고는 있지만 통제는 가능하다. 울분이 이리도 넘쳐나는 건지, 뭐가 그렇게 서러운 건지 물어봤는데 솔직히 알고 있었다.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못한 탓이다. 만족한 적도 없고, 비난만 해댄 탓이다.


나를, 어떻게 안아줘야 할까. 언제나 숙제다. 나는, 나를 안아주는 법을, 사랑하는 법을 아니 그 이전에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이룩하지 않아도, 뭔가 해내지 않아도 그냥 숨쉬기만 해도 살아 있을 이유가 된다는 걸 알아줘야 한다. 그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참... 벅차다. 어렵기만 하다.


이전까진 떼어내야만 하는 혹이라고 생각했던 게, 그것 역시 나라는 걸... 정말 많이 상처 받은 채 죽어가는 나라는 걸 알고 있어서 더 어렵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언제나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지만, 대학 시절에 친구랑 허심탄회하게 했던 말처럼 생각한다.


- 매일 더 나아지는 거밖에 없겠지. 나아진다고 생각하기도 좀 우습다. 그냥, 언제나 사이클 돌듯이 돌겠지. 매일 울적하던 게 일주일에 한번 울적하고, 일년에 몇 번 울적하고 그 뒤에는 점점 줄어질 수는 있지 않을까.


그때에 비춰본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은 건강해졌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말을 싫어했는데 사실 인생이란 모르는 것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원점에 다시 돌아온 나는.... 좀 헛헛하고 웃기고 그렇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다면, 다만 나아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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